곁에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한 사람

by 다감

「도화지 인간」 :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여백을 가진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선을 그어갑니다.

말을 조심하고,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감정 표현도 줄어듭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원래 그런거지.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

“그 나이 먹고 왜 그래?”

하지만 도화지 인간은 다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와… 그랬겠다” 하고 진심으로 반응하고, 그때 상황이, 그 사람이 느낀 감정이 사실인지 따지기보다, 그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는 사실 자체에 귀를 기울입니다. 스스로 색을 칠하지 않기에, 다른 사람의 말과 감정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새하얀 도화지 같은 사람이죠. 겉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사실 그건 꽤 용기 있는 태도입니다. 의심하고 거리를 두는 게 익숙해진 세상에서 판단을 잠시 멈추고, 누군가의 말을 들어준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세상을 덧칠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도화지 인간’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1. 정의

도화지 인간 (Homo Canvasensis)

1) 세상이 정해 놓은 당연함에 길들지 않고, 늘 초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2)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2. 페르소나


- 이름: 다온

- 나이: 26세

- 직업: 간호사

- MBTI: INFP

- 취미: 심리학 도서 읽기














Scene#1 그 말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어


조용한 분식집 한쪽,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떡볶이를 앞에 두고 앉았다.

나는 젓가락을 굴리다, 말을 꺼냈다.

“나, 디자이너로 취업했어.”

다온이 젓가락을 멈추더니 눈이 커졌다.

“뭐? 진짜? 야, 대박! 축하한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떡볶이를 집었다.

“근데… 생각보다 피곤하더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어.”

다온이 피식 웃으며 말았다.

“야, 벌써 배부른 소리하는거야?”

둘 다 웃었다.

웃음이 조금 잦아들자, 내가 하려던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근데 있잖아.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다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 너 결혼해? 그걸 떡볶이 집에서 말할 건 아닌 거 같은데?”

둘 다 다시 한번 웃었다.

웃고 난 뒤, 나는 살짝 진지해졌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고맙다고 말하려고.”

다온이 눈을 깜빡였다.

“내가 뭘?”

나는 그때를 떠올렸다.

“그때 내가 보여준 그림 기억나?

그거 진짜 열심히 그린 거였어. 그릴 때마다 너무 좋은데…

주변에서 ‘그림 그려서 어떻게 먹고 살겠냐’는 말이 계속 들리니까, 아예 꿈으로 삼을 생각도 못 했거든.

근데 네가 그랬잖아.

‘너 이거 그릴 때 표정이 완전 다르다, 눈이 반짝거린다.’

그 말 듣는 순간 알겠더라.

아, 내가 진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구나.

누가 뭐래도 이걸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

다온이 피식 웃었다.

“아… 그랬네. 그냥 진짜 그렇게 보여서 말한 거야.”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근데 그 말이 말이지… 나도 그냥 흘려 들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계속 기억나더라.”

다온은 그냥 조용히 내 얘기를 다 들어주었다.

“넌 내가 좋아하는 걸 좋다고 해줬잖아. 그게 나한텐 되게 컸어.”



Scene#2 “미안하단 말, 네가 없었으면 못 했을 거야.”


“솔직히, 내가 뭘 잘 못했는지 모르겠어.”

카페에 앉자마자 꺼낸 말이었다.

다온은 말없이 나를 바라봤고,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쏟아냈다.

“발표 준비 진짜 내가 다 했잖아. 걘 계속 바쁘다 그러고, 자료도 안 읽고 와서

막판에 내가 파일까지 수정했는데… 끝나고 나니까 그냥 ‘수고했어~’ 이 한마디로 끝이야.”

"응.”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렇게 미안하지도 않은 거 같네?’ 그랬더니,

걔가 갑자기 ‘왜 이렇게 예민하냐’면서 나가버리는 거야.”

말하다 보니 속이 답답해져서 컵을 한 번 힘주어 내려놓았다.

“내가 너무한 거야?”

나현은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상황이면… 나라도 서운했을 것 같아.”

“그치? 그냥…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그 말 한마디만 있었으면 됐는데…”

한참 말하다 보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걸 느꼈다.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지금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걔가 나한테 너무했다는 생각보단…

나도 좀 세게 말했나? 그 생각이 든다는 거야.”

다온은 가볍게 웃었다.

“그게, 네가 마음 좀 풀렸다는 신호일걸.”

“그런가 봐. 보통 사람들은 누가 잘못했네, 네가 참았어야 했네 이런 말부터 하잖아.

근데 넌 그냥 내가 느낀 대로 ‘그럴 수 있었겠다’고 해주더라.

그게 신기했어.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훨씬 빨리 풀렸어.”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니까 다행이다.”

내가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단 말, 네가 없었으면 못 했을 거야.”



3. '도화지 인간'은 이런 사람입니다.

도화지 인간은 단순히 감성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이들은 세상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바라볼 줄 안다는 것입니다. 좋은 걸 보면 이유 없이 좋다고 말할 수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땐 그게 맞는 말인지 따지기보다 먼저 마음을 헤아립니다. 이걸 보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색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도화지가 색이 없어서 무가치한 게 아니듯, 그 비워 있음 덕분에 누군가의 마음이 편히 머물 수 있는 거죠. 판단이 습관이 된 시대에, 도화지인간은 자신의 선을 그어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누가 보면 뭘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세상의 기준에 덜 물들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의심이 미덕이 된 시대에, 이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말에 먼저 고개를 끄덕이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건 세상을 모르는 순진함이 아니라, 의심보다 수용하는 ‘용기’에서 비롯된 태도입니다. 그래서 더 고맙습니다. 온전히 받아들여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도 조금은 더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요.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