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말은, 왜 이렇게 아플까

by 다감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


이 말엔 묘한 감정이 섞여 있다. 논리적으로는 수긍하지만, 마음 한편이 살짝 상처받았을 때 나오는 말. 누군가의 조언이나 충고가 정곡을 찌를수록, 우리는 그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맞아”라고는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게 된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


겉으론 동의 같지만, 사실 그 안엔 “지금 나한테 그 말을 해야 했을까”라는 서운함이 섞여 있다. 그 말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기엔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때 나오는 말이다.


그 친구는 밝은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더없이 솔직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심보다 마음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나 진짜 이번엔 내가 더 좋아해.” 연애를 시작할 때, 그 친구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정말 그래 보였다. 늘 먼저 연락했고, 상대가 피곤하다고 하면 이해해주고, 약속도 그 사람 스케줄에 맞춰서 조율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얼굴에 그늘이 져있었다. 처음엔 그냥 바빠서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그게 계속됐다.


하루는 술도 안 마시는 사람이, 먼저 술을 먹자고 연락이 왔다. 그날, 친구는 잔을 들고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나 그냥... 너무 힘들어. 근데 그 사람은 내가 뭘 힘들어하는지도 모를걸?”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단단히 어긋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여자친구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괜히 말 걸기가 조심스럽고, 약속 시간도 늘 그 사람 스케줄에 맞춰야 했다고 했다. 서운한 일이 있어도, 말 한 번 꺼냈다가 “그 정도도 이해 못 해줘?”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그냥 참는 게 편해졌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걱정했고, 솔직히 좀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말했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너만 그 사람한테 계속 맞추려고 하잖아. 근데 그 사람은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고. 이건 그냥 너 혼자 애쓰는 관계야. 솔직히 정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널 위해 하는 말이야.”

침묵이 흘렀다. 그 친구는 내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


그리고 그날 이후, 연락은 더 뜸해졌다. 처음엔 억울했다. 난 진심으로 도운 거고, 틀린 말 한 것도 없었다. 왜 상처받은 건지, 왜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문득, 그 친구가 내게 어떤 표정으로 그 말을 했는지가 떠올랐다.


지금 당장 울 것 같은 얼굴. ‘정답’보다 ‘위로’가 필요했던 얼굴. 나는 그 친구의 상황을 정확히 봤지만, 그 친구의 마음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는 맞는 말을 했지만, 그 말이 그 순간 그 사람에게는 너무 차가웠던 것이다. 그날 이후, ‘맞는 말’이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나는 확실히 틀린 말을 하진 않았다. 그 친구는 그 관계에서 지쳐 있었고, 나는 그걸 정확히 짚어냈다.


그런데 맞는 말을 했는데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졌다. ‘맞는 말’이 왜 ‘상처’가 되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그 순간, 정답이 아니라 위로를 원했던 건 아닐까? 그 사람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정리하라’는 말을 듣는 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외면당한 느낌이었겠구나. 논리보다 먼저 도착해야 할 건 마음이었다. 관계 속에서 맞는 말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 말을 누가, 언제, 어떤 표정으로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그날 이후, ‘맞는 말’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걸까 생각하게 됐다. 논리적으로는 옳았고, 상황 판단도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말은 친구에게 아무런 위로도 위안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멀어지는 계기가 됐다. 말은, 받아들여질 때에만 살아남는다는 것. 아무리 정답이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이 닫혀 있다면 그 말은 그냥 공기 중에 흩어지고 만다.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상자 안에 고양이가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뚜껑을 열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맞는 말’도 그렇다. 내가 아무리 정확하게 전달했다 해도, 상대가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그 말은 그 사람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 된다.

결국 맞는 말이라는 것도, 관계 안에서만 살아 있는 것이다.


맞는 말이 ‘존재’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하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만져줄 수 있는 말투. 이 두 가지가 갖춰지지 않으면, 맞는 말은 그냥 ‘논리적 진실’일 뿐,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소리 없는 외침에 그치고 만다.


이제는 누가 힘들다고 할 때, 쉽게 맞는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한다. 말이 맞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말이 지금, 이 사람에게 맞는 말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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