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부' 이야기
대체 왜 울었을까. 영화 한 편을 보고,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이창호(유아인)가, 스승에게 인정받고 싶어 애쓰던 그의 모습이 자꾸만 나와 겹쳐 보였다. 이창호에게 조훈현(이병헌)은 전설같은 스승이었다. 승부 앞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사람. 칼처럼 날카로운 수를 두며, 상대를 몰아붙이는 전형적인 승부사 기질.
스승의 바둑은 단순했다. 먼저 찔러야 산다. 그게 그의 철학이었고, 평생을 걸쳐 증명해온 방식이었다. 이창호는 어릴 적부터 조훈현 밑에서 자랐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의 바둑을 따라했다. 날카롭게 찌르고, 빈틈을 노리며, 공격적인 수를 두려고 애썼다. 그게 옳다고 믿었다. 그래야 스승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설픈 공격은 스스로를 무너뜨릴 뿐이었다. 점차 자신을 잃어갔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런 바둑을 두는 사람이 아니다.’
이창호는 비로소 자신의 바둑을 두기 시작한다. 상대의 칼을 맞고, 또 맞으며 버티는 바둑. 흐름을 기다렸다가, 마침내 자기 쪽으로 승기를 가져오는 바둑. 조용하고 끈질기며, 쉽게 무너지지 않는 바둑. 공격보다는 수비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스승은 그런 바둑을 바둑이라 인정해 주지 않았다.
창호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바둑을 밀고 나가기엔 아직 어렸고, 스승의 바둑을 따라 하기엔 맞지 않았다. 기풍을 찾지 못한 채, 바둑을 그만두려 했다. 그때서야 조훈현이 입을 열었다.
“답이 없는 것인데, 너에게 답을 강요했다. 너의 바둑을 둬라.”
처음으로, 자기 방식이 “괜찮다”는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그제야 그는 진짜 자신의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누구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닌, 조용히 받아내며, 흐름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는 이창호다운 바둑.
그렇게 이창호는 결승전에서 스승 조훈현과 마주 앉는다. 스승과 제자가 아닌, 한 명의 기사로서. 둘은 적으로 마주했다. 이창호는 조훈현의 휘몰아치는 공격을 받아내며 버텼고, 끝내 흐름을 자기 쪽으로 돌려놓았다. “10년은 이르다”고 했던 제자가 스승을 넘었다. 대국이 끝난 뒤, 이창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스승은 애써 괜찮은 척했다.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이기는 게 프로라고 했지.”
하지만 스승은 복기에서도 끝내 자신의 패착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는 축하의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떠났고, 이후 열린 다음 대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조용한 침묵이 둘 사이에 깃들었다. 사제 관계는 이전처럼 돌아가지 못했다. 말을 잃은 스승, 조심스러운 제자. 어색함은 길어졌고, 시간만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이 제자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처음으로 속마음을 꺼냈다.
“이제 독립해라. 더 이상 가르쳐줄 것도 없다. 같이 살면서, 칭찬 한 마디 제대로 해준 기억이 없구나.”
"선생으로서 네가 항상 자랑스러웠다. 넌 늘 내 자부심이었어."
나는 그 장면에서 울었다.
‘아, 나도 이런 순간을 원했구나.’
누군가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걸 인정해주는 순간.
“그렇게 해도 괜찮다”, “그게 너답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거였다.
그게 내가 울었던 이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떠오른 얼굴은 이창호가 아니라, 조훈현이었다.
먼저 찔러야 한다. 상대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기세를 눌러야 한다. 조훈현은 그렇게 배웠고, 그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였다. 내가 무너지기 전에, 먼저 흔드는 것.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날카롭게 내지르는 것. 그렇게 단단해 보이기 위해, 내면의 불안을 이기기 위해, 수없이 자신을 단련했다. 돌 하나를 놓을 때까지 수십 수를 내다보며, 단 한 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그런 방식은 그를 최고 자리에 올려놓았고, 그 자리에서 오래 살아남게 했다. 그래서 더욱더, 자신이 만든 세상을 부정당하는 일만큼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의 곁에, 이창호라는 아이가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조용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바둑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진지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설픈 공격은 상대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그리고, 조훈현과는 전혀 다른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상대의 칼을 맞고, 또 맞으며 버티는 바둑. 조훈현은 그 바둑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그건 바둑이 아니라는 깊은 부정.
조훈현은 본인이 내린 답으로 정상에 올랐고, 세계 최고가 되었고, 그 자리를 수년간 지켜온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바둑이 ‘옳다’고 말한 적은 없어도, ‘맞았다’는 걸 결과로 증명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자기 방식과 다른 무언가를 인정하는 일은 '허용'이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해야 산다.”
“이렇게 살아야 버틸 수 있다.”
그 신념 하나로 버텨온 사람에게,
‘그렇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건 곧 자신의 생존 방식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창호가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그 순간이, 조훈현에겐 처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비틀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한 순간이었다.
“답이 없는 것인데, 너에게 답을 강요했다. 너의 바둑을 둬라.”
그 말은 이창호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조훈현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얼마 뒤, 그는 결승전에서 제자와 마주 앉게된다. 한 수 한 수 밀릴수록, 바둑판이 아닌 마음속에서 자신이 세운 성이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이창호의 수를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조훈현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대국이 끝나고 제자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괜찮다’는 말은 너무 약해 보일 것 같았다. ‘축하한다’는 말은 도무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더 세게 말했다. 마치 질책하듯, 아무렇지 않은 척.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이기는 게 프로라고 했지.”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억울함인지, 민망함인지 모를 감정이 섞인 말투였다.
그 순간, 그도 알고 있었다. 그 말이 제자에게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서툰 감정 표현일 뿐이었다는 걸.
그 뒤로 그는 무너졌다. 술에 기대었고, 다음 대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침묵의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본인 제자잖아.”
“졌으면 깨끗이 인정하지.”
“속이 좁은 거 아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들이 이해됐다. 그의 침묵, 세상을 향한 발버둥이 낯설지 않았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버텨왔기 때문이다. 지기 싫어했고, 먼저 공격했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먼저 흔드는 사람이었다. 단단한 척, 여유로운 척하면서 속으로는 불안을 감추기에 바빴다. 그래서 조훈현이 끝내 아무 말도 못하던 그 시간이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 ‘믿어온 방식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는 시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건 나랑 안 맞아.”
“그래도 난 내 방식이 더 맞다고 생각해.”
인정하는 순간, 내가 구식이 될까봐. 내 방식이 틀린 게 되어버릴까봐. 그래서 조훈현이 “선생으로서 네가 항상 자랑스러웠다. 넌 늘 내 자부심이었어.”라고 했을 때, 그건 제자에게 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래, 너처럼 살아도 괜찮아.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도 틀리지 않았어.’
그 말이 나를 울렸다. 누가 맞고 틀리냐가 아니라, 다른 방식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 그게 가장 큰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