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더 안 주는데,
왜 또 가겠다고 했을까.
그때 나는 처음으로
너를 다시 보게 됐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건, 통역 알바를 함께 한 이후였다.
그날은 사람들이 귀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물품을 구매하는 일정이었는데,
시간은 빠듯했고 인원은 스무 명에 가까웠다.
게다가 다들 높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말을 정말 안 들었다.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어느새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요청은 계속 바뀌었고,
거기에 추가까지 붙었다.
솔직히 말하면, 쉽지 않은 알바였다.
한정된 시간 안에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의 모든 요구를 맞추며
물건 구매를 도와주는 건
생각보다 훨씬 버거운 일이었다.
아이들이었다면 웃으며 조금 덜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어른이었고,
그만큼 더 고집도 셌다.
그런데도 너는
다음 날, 추가 알바비도 없는 일정임에도
또 그 사람들을 도와주러 가겠다고 했다.
나라면 바로 말했을 것이다.
“오, 나는 안 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의 그 이타심이
잠자고 있던 내 호기심을 툭 건드렸다.
그래서 결국
“나도 갈래.”
가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연이은 통역 알바 아닌 알바를 하게 되었다.
너를 따라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영어를 쓰니
내 뇌도 건강한 자극을 받은 건지
도파민이 천천히 퍼져 나왔다.
내가 물품 구매를 도와줬던 한 여성은
본인이 요청한 노트북뿐 아니라
딸을 위한 귀여운 인형까지 대신 사다 준 것에
연신 고맙다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오랜만에 느꼈다.
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고양감을.
알바가 끝나고 우리는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식사를 함께 했다.
배고픔을 잘 참다가도
임계점을 넘기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너는
앞에 보이는 버거킹을 가자고 했고,
나 역시 버거킹을 좋아했기에
망설임 없이 콜을 외쳤다.
밥을 게눈 감추듯 먹고
우리는 밤 산책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종로의 조계사에 들어갔는데,
곧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시기라
붉은 등이 절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보통 붉은 등이 많으면 눈이 아픈데
그날은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마
내 마음속 너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 느슨해졌던 걸까.
동물원 미어캣이
온열등 아래에서 몸을 녹이듯,
나 역시 그 장면의 따사로움에
잠시 녹아버렸다.
고요하지만 따사로운 절,
붉게 타오르는 등들,
황금빛으로 빛나는 석가모니,
의자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던 너.
그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