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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쓰는명랑 May 16. 2023

루꾸아줌마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을 키우는 법

나는 우리나라 지도 맨 끝에 있는 탄광촌에서 태어났어요.


이젠 폐광촌이라고 해야겠군요. 광산을 부숴 대형 관광단지를 만들 거라고 했어요. 퀴퀴한 냄새가 나지만 나는 여기가 꼭 고향 같아 좋아요.  


 나는 엄마가 누구고 아빠가 어떤 이인지도 몰라요. 정말 나와 같은 고양이가 맞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쭉 난 혼자였어요. 아, 아니에요. 있었어요. 딱 한 명. 루꾸 아줌마요. 고향이란 말도 루꾸아줌마가 알려줬어요.


 “너도 이제 고향이라도 찾아가 봐”라고 언뜻 말했거든요.


아줌마도 어디론가 떠나야 한대요. 위험해질지도 모르니 같이 데려갈 수는 없다고 했어요.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하고 기분도 이상해졌어요.


루꾸 아줌마는 탄광촌에서 제일 부잣집 미진이네 마당 안에서 살았어요.


미진이 아빠가 새로 생기는 대형 광센터 안내원으로 일하게 됐대요.


시내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고 했어요. 당연히 루꾸 아줌마도 데려가는 줄 알았대요.


“당신은? 원래 길 고양이었는데 뭐하러 데려가요? 고양이는 이런 데가 낫다니까”


이삿짐을 싸는 날 미진이 엄마는 자기가 고양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양 이렇게 말했대요.


루꾸 아줌마도 아파트 생활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우리 강아지 불쌍해서 어쩌누!”


루꾸 아줌마는 맨날 나를 강아지라고 부르지만 그건 상관없어요. 생선대가리 한쪽을 꼭 남겨주는 고마운 분이니까요. 툭 던져주고 눈만 꿈뻑거리다가 사라져 버려요. 내가 허겁지겁 먹어치운 다음에야  나타나서 내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는 다시 사라지죠. 꼭 아기를 돌보는 엄마처럼 말이에요.


 


 미진이네까지 이사 가고 나면 이 동네엔 딱 세 집만 남게 돼요.


루꾸 아줌마에게 음식 찌꺼기를 주시는 부황 할머니네,


할아버지가 심한 기침감기에 걸린 수천이네,


그리고 탄광촌 관리팀장 아저씨네가 전부예요.


 


 부황 할머닌 탄광촌에서 광부 아저씨들에게 밥 해주는 일을 했었대요. 하루에 한 시간도 허리를 펴보지 못할 만큼 바빴다고 했어요.


 “이젠 하루도 부황을 뜨지 않으면 못 버티는 몸뚱이가 됐어!”


할머니 등 주변엔 동그란 모양들이 포도처럼 박혀 있어요. 그래서 부황할머니가 됐다고 해요.


지금도 부황할머닌 옥수수나 찐 감자를 동네 사람들에게 간식으로 나눠줄 수 있어서 신난다고 했어요. 수천이 할아버지가 감기에 걸린 건 광산 일을 시작하고 십 년쯤 후부터 시작되었대요. 젊음을 바친 곳이라고 했으니까 정말 오래된 일 같아요.


 가로등이 고장 나도 고치지도 않았고 시끄러웠던 동네가 조용해졌어요. 고칠 이유도 없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며칠 전엔 깜깜해져서 루꾸 아줌마를 기다리다가 발을 헛디뎌 하수구로 떨어졌잖아요. 다행히 루꾸 아줌마가 허우적대는 나를 발견해서 구해줬어요.


안 그랬으면 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아줌마! 그냥 저랑 같이 살면 안돼요?”


 “놀랐지! 우리 강아지!”


루꾸아줌마는 내 꼬리를 한동안 만지작만지작 쓰담 거렸어요. 내 소리가 너무 작았는지 내가 한 말엔 대답하지 않았고요.


 


 다음날, 그다음 날도 루꾸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어요.


어쩌면 아줌마를 영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무서워서 나는 소리를 막 질러요. 한참동안이나요.


 “우리 강아지! 바람 많이 부는 날엔 함부로 나가면 안 돼!”


 “그리고 밤엔 번쩍이는 눈 때문에 욕을 얻어먹을 때도 많단다!”


 “혼자 다니는 사람은 우리 눈을 보면 놀랄 때가 꽤 있거든!”


하수구에 빠졌던 날 아줌마는 내 꼬리털을 만지작 거리면서 여러 가지를 말해줬어요. 사람들을 조심하란 말이 대부분 었던 것 같기는해요. 나는 오래 듣고 싶었지만 루꾸 아줌마 품이 너무 따뜻해서 끝까지 못 듣고  잠이 들어버렸어요.


 


 그날이 루꾸 아줌마와 보낸 마지막 밤이었어요.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땐 라면 박스 집 안에 나 혼자였으까요.


혹시 먹을 걸 구하러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네를 몇 바퀴 돌아다녀봤어요. 다리가 후들거려 잘 걸을 수 없을 만큼요.


 “어미는 어디 가고 혼자 다니누? 이거 먹고 가거라!”


빼곡하게 박혔던 옥수수가 모두 빠져나간 뼈다귀였어요. 찌꺼기 하나 없이 냄새만 풍겼어요.

모르는 게 없다던 부황 할머니도 다 알고 있진 않나 봐요.


루꾸 아줌마가 떠났다는 것도 모르고, 루꾸 아줌마가 친엄마가 아니란 것도요.


 


 배도 고프고 무섭기도 했어요. 루꾸 아줌마가 더 보고 싶어졌어요.


 “아줌마, 아줌마!”


나는 두 번쯤 루꾸아줌마를 불러봤어요. 그러다가 쓰러진 건지 잠이 든 건지 잘 생각나지가 않아요.


 


 하늘만큼 높게 있던 가로등이 힘없이 옆으로 누웠어요. 왕 집게가 달린 기계차가 전봇대 한 개를 쑥 뽑아 쓰러뜨렸거든요. 동네에 이렇게 많은 굴삭기가 들어온 건 처음 보는 일이에요.


아쿠아월드랑  테마파크가 생길 거라는데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어요. 빨랫줄 같았던 전선을 땅 속으로 묻는 작업을 할 거래요. 답답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한숨이 나왔어요.


루꾸 아줌마가 선물로 준 박스집도 커다란 집게에 물려 날아가 버렸어요.


누런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붙어있는 수천이네 집 지붕을 굴삭기가 막 먹어치우려는 순간 부황할머니가 소리쳤어요.


“기다려! 이놈들아”


굴삭기는 멈추지 않았어요.


“이 호로새끼들아!”


부황 할머니가 굴삭기 앞을 가로막았어요. 구부정하게 서 있는 할머니는 오늘따라 더 작아 보였어요. 그러다가 바람 빠진 키다리 인형처럼 털썩 주저앉으며 개미 소리로 말했어요.


“그러면 며칠만……아픈 양반 죽이지는 말아야지.”


 


 괴물 소리를 내던 기계들이 멈췄어요.


“어르신! 약속이 다르잖습니까? 며칠 며칠이 벌써 몇 번쨉니까?”


아저씨가 높은 트럭에서 껑충 내려와 물 한 병을 단숨에 벌컥대며 말했어요. 그러다가 퉤 뱉어버렸어요. 부황 할머니 신발이 젖었어요. 깜짝 놀라 물러서긴 했지만 내 꼬리도 젖어버렸고요. 우산 없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수천이 생각이 났어요.


“며칠 후라고 뾰족한 수가 있습니까?”


 모자에 초록색으로 더하기 표시가 그려진 아저씨가 끼어들었어요.


“아들 올 때까진 기다려줘야지! 반장 양반아!”


“우리도 공정 맞춰야 해서 힘들어요! 어르신”


잘은 모르지만 며칠만 하던 수천이 아빠가 못 온 지 꽤 됐나 봐요.


수천이 아빠는 하얀 가루약을 들고 한 달에 두 번 정도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고는 해요. 서울 병원에서 가져오는 약을 먹으면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수천이를 마중 나올 수 있을만큼 기운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날이 며칠 후인 모양이에요.


루꾸 아줌마가 있었다면 ‘아이고, 내 강아지!’ 해가며 쯧쯧 거렸겠지만 나 따위한텐 누구도 관심이 없었어요.


 온 세상이 시커먼 검은색이에요. 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유일하게 남았던 가로등까지 뽑힌  누워있으니까 동네는 시커먼 동굴 같았어요.


길거리를 어슬렁 거리던 덩치 큰 개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어요.


‘나도 떠나야 하나 보다’ 생각이 든 건 그날 밤이었던 것 같아요.

 이사라고 해봤자 챙겨갈 알루미늄 밥그릇도 하나 없는걸요.

짐이라곤 부황 할머니가 던져준 옥수수뼈다귀가 전부였는데 그것조차 박스집이랑 날아가버렸으니까요. 배가 고파지니까 모든 게 옥수수뼈다귀처럼 보였어요.

공사장 근처를 몇 바퀴나 킁킁거리며 어슬렁거렸게요.



‘어, 이 냄새는 수천이가 좋아하는 라면이 분명한데…….’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냈어요. 아저씨들이 간식을 먹고 있나 봐요. 조금 더 기다리면 수천이처럼 라면 줄기 몇 가닥을 던져줄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저만큼 서서 후후 불며 라면을 먹어대는 아저씨들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뭐라고 한 것도 아니에요.


“ 아, 재수 없는 고양이 새끼. 저리 가”


아저씨가 돌멩이 하나를 나를 향해 던지는거에요. 하마터면 정말 맞을 뻔했다니까요. 배가 고프면 기다리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더 힘들다는 것도 그날 알았어요.



 루꾸 아줌마가 그랬어요.

‘우리 강아지! 배고프다고 덥석 달려들면 절대 안 돼! 꼭 사람이 먹는 걸 보고 먹어야 한다!’

사람이 못 먹는 건 양이들도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알려줬어요. 아저씨들이 후루룩 쩝쩝 소리는 오랫동안 계속 됐어요. 관리팀장 아저씨가 그릇을 막 치우려고 할 때였어요.

참, 관리팀장 아저씨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공사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기로 했대요.

부황할머니네, 수천이네는 옆 마을에 새로 생긴 장기임대주택 인가하는 곳으이사하는 게  결정됐고요.

“고양이집만 한 곳 주면서 생색은 요란하네!”

이삿짐을 싸던 부황 할머니가 투덜거리는 걸 들었거든요.


관리팀장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어요. 난 용감하게 한마디 했죠!


“아저씨! 버리지 마세요!”


다행히 아저씨는 치우다 만 라면 그릇 한 개를 남겨줬어요.


쉬지 않고 마구 핥아댔나 봐요. 국물이 보이지 않을 쯤에야 꼬리부터 머리끝까지 불이 난 듯 뜨거워지는 걸 알았어요.


'이게 매운맛이구나' 처음으로 느껴봤어요.


부리나케 달렸어요. 물을 마셔야 했어요. 목이 잘려 나갈 것 같았으니까요.


루꾸 아줌마가 없으니까 모든 게 위험하고 무섭고 불안해졌어요.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이사를 오게 된 곳이 바로 이곳 탄광굴 안이에요.


동굴 안으로 막 뛰어들어왔을 때 뭔가 질퍽한 게 느껴졌어요. 물이 있을게 분명해요.


킁킁 냄새를 맡으며 열심히 뛰었어요. 미끌, 휘청하면서 넘어지고 말았어요. 발바닥을 들어 냄새를 맡았어요.


나쁜 향은 아니었어요. 멀리 가지 않아도 물이 있을 것 같아 다시 힘을 내봤어요. 발바닥이 얼얼한 게 힘들었어요.


탄광굴 안은 석탄처럼 캄캄했어요. 얼마를 걸었을까요? 목이 타는 것도 잊어버릴 때쯤 반짝하는 게 보였어요.


누군가 있는 게 분명했어요. 누굴까요?


‘먹을 것을 구하고 돌아오는 루꾸 아줌마 눈빛도 반짝했었는데…….’


“루꾸 아줌마, 아줌마?”


루꾸아줌마 일리가 없겠지만 루꾸아줌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건 사실이에요.


탄광굴은 끝도 없이 이어졌어요. 걷고 걸어도 뛰고 뛰어도 캄캄한 밤은 계속됐어요.


반짝하던 빛을 찾아 나는 뛰고 뛰고 또 뛰었어요. 어쩌면 루꾸아줌마일ㅈ도 모르잖아요.


다리가 후들거리고 하수구에 빠진 날처럼 온몸이 땀으로 젖었어요. 목구멍은 아직도 따가웠고 넘어진 다리도 아팠어요.


 ‘ 더 이상 못 걷겠다.’


내가 쓰러졌나 봐요. 어, 분명히 물 흐르는 소리였어요!


‘졸 졸 졸 ’


탄광굴 안에서 물이 흐른다고요?


반갑기도 했다가 겁이 나면서 어쩌면 나는 오늘까지만 살게 될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돌아 나 갈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도 힘든 건 마찬가지니까요. 나는 탄광 굴 안으로 너무 많이 왔는걸요. 어차피 루꾸 아줌마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닌 걸요.


 


아까 반짝했던 것이 어쩌면 정말로 루꾸아줌마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라에 힘을 주고 한 발 겨우 한 발자국씩 움직여봤어요. 걷는 건지, 끄는 건지 모를만큼 나는 너무 지쳐 있어요.


 얼마를 더 걸었을까요? 물을 만났어요. 그것도 몇 날 며칠을 먹어도 될 만큼 많은 물이었어요. 나는 동네를 철거할 때 봤던 아저씨처럼 벌컥벌컥 물을 마셨어요. 배가 풍선처럼 빵빵해질 때까지 계속요. 배고픈 것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서운 마음도 조금은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루꾸 아줌마가 그랬거든요.


‘먹을 게 없을 때는 흐르는 물을 마시는 거야.’


‘흐르는 물은 먹어도 괜찮은 게 대부분이야.’


물만 마셔도 괜찮아진다는 루꾸 아줌마 말이 맞았어요. 풍선처럼 뚱뚱해진 배안에서 물소리가 찰랑 거렸어요.


 


 강아지라고 불러주던 엄마 같은 루꾸 아줌마


탄광굴 안은 아침도 밤도 없이 그냥 캄캄함 뿐이었어요. 밤인지 아침인지 모르는 날을 얼마나 보냈을까요? 아직 루꾸아줌마를 찾지는 못했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흐르는 물이 있어서 나는 잠깐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한 거예요.


 


 물을 마시고 풍선처럼 배가 빵빵해지면 기분 좋게 잘 수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루꾸 아줌마를 꿈속에서 만나요.


 


 나는 또 물을 마시고 풍선 같은 뚱뚱한 배를 만들어요.


그래야 잠이 오거든요.


그리고 꿈을 꿔요.


루꾸 아줌마는 아직도 나를 강아지라고 부르는 거 있죠!

나는 우리나라 지도 맨 끝에 있는 탄광촌에서 태어났어요.


이젠 폐광촌이라고 해야겠군요. 광산을 부숴 대형 관광단지를 만들 거라고 했어요. 퀘퀘한 냄새가 나지만 나는 여기가 꼭 고향 같아 좋아요.  


 나는 엄마가 누구고 아빠가 어떤 이인지도 몰라요. 정말 나와 같은 고양이가 맞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쭉 난 혼자였어요. 아, 아니에요. 있었어요. 딱 한 명. 루꾸 아줌마요. 고향이란 말도 루꾸아줌마가 알려줬어요.


 “너도 이제 고향이라도 찾아가 봐”라고 언뜻 말했거든요.


아줌마도 어디론가 떠나야 한대요. 위험해질지도 모르니 같이 데려갈 수는 없다고 했어요.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하고 기분도 이상해졌어요.


루꾸 아줌마는 탄광촌에서 제일 부잣집 미진이네 마당 안에서 살았어요.


미진이 아빠가 새로 생기는 대형 광광센터 안내원으로 일하게 됐대요.


시내 아파트로 이사를 했어요. 당연히 루꾸 아줌마도 데려가는 줄 알았대요.


“당신은? 원래 길 고양이었는데 뭐하러 데려가요? 고양이는 이런 데가 낫다니까”


이삿짐을 싸는 날 미진이 엄마는 자기가 고양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양 이렇게 말했대요.


루꾸 아줌마도 아파트 생활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예요.


 


 “우리 강아지 불쌍해서 어쩌누!”


루꾸 아줌마는 맨날 나를 강아지라고 부르지만 그건 상관 없어요. 생선대가리 한쪽을 꼭 남겨주는 고마운 분이니까요. 툭 던져주고 눈만 꿈뻑거리다가 사라져 버려요. 내가 허겁지겁 먹어치운 다음 나타나서 내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는 다시 사라지죠. 꼭 아기를 돌보는 엄마처럼 말이예요.


 


 미진이네까지 이사 가고나면 이 동네엔 딱 세 집만 남게 돼요.


루꾸 아줌마에게 음식 찌꺼기를 주시는 부황 할머니네,


할아버지가 심한 기침 감기에 걸린 수천이네,


그리고 탄광촌 관리팀장 아저씨네가 전부예요.


 


 부황 할머닌 탄광촌에서 광부 아저씨들에게 밥 해주는 일을 했었대요. 하루에 한 시간도 허리를 펴보지 못할만큼 바빴다고 했어요.


 “이젠 하루도 부황을 뜨지 않으면 못 버티는 몸둥이가 됐어!”


할머니 등 주변엔 동그란 모양들이 포도처럼 박혀 있어요. 그래서 부황할머니가 됐다고 해요.


지금도 부황할머닌 옥수수나 찐감자를 동네 사람들에게 간식으로 나눠줄 수 있어서 신난다고 했어요. 수천이 할아버지가 감기에 걸린 건 광산 일을 시작하고 십년쯤 후부터 시작되었대요. 젊음을 바친 곳이라고 했으니까 정말 오래 된 일 같아요.


 가로등이 고장나도 고치지도 않았고 시끄러웠던 동네가 조용해졌어요. 고칠 이유도 없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몇일 전엔 깜깜해서 루꾸 아줌마를 기다리다가 발을 헛디뎌 하수구로 떨어졌잖아요. 다행히 루꾸 아줌마가 허우적대는 나를 발견해서 구해줬어요.


안그랬으면 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아줌마! 그냥 저랑 같이 살면 안돼요?”


 “놀랐지! 우리 강아지!”


루꾸아줌마는 내 꼬리를 한동안 만지작만지작 쓰담 거렸어요. 내 소리가 너무 작았는지 내가 한 말엔 대답하지 않았고요.


 


 다음날, 그 다음날도 루꾸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어요.


어쩌면 아줌마를 영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무서워서 나는 소리를 막 질러요. 한참동안이나요.


 “우리 강아지! 바람 많이 부는 날엔 함부로 나가면 안돼!”


 “그리고 밤엔 번쩍이는 눈 때문에 욕을 얻어 먹을 때도 많단다!”


 “혼자 다니는 사람은 우리 눈을 보면 놀랄 때가 꽤 있거든!”


하수구에 빠졌던 날 아줌마는 내 꼬리털을 만지작 거리면서 여러 가지를 말해줬어요. 사람들을 조심하란 말이 대부분었던 것 같아요. 나는 오래 듣고 싶었지만 루꾸 아줌마 품이 너무 따뜻해서 끝까지 못 듣고  잠이 들어버렸어요.


 


 그 날이 루꾸 아줌마와 보낸 마지막 밤이었어요.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땐라면 박스 집 안에 나 혼자였으까요.


혹시 먹을 걸 구하러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네를 몇바퀴 돌아다녀봤어요. 다리가 후들거려 잘 걸을 수 없을만큼요.


 “어미는 어디 가고 혼자 다니누? 이거 먹고 가거라!”


빼곡하게 박혔던 옥수수가 모두 빠져나간 뼈다귀였어요. 찌꺼기 하나 없이 냄새만 풍겼어요.

모르는게 없다던 부황 할머니도 다 알고 있진 않나봐요.


루꾸 아줌마가 떠났다는 것도 모르고, 루꾸 아줌마가 친 엄마가 아니란 것도요.


 


 배도 고프고 무섭기도 했어요. 루꾸 아줌마가 더 보고 싶어졌어요.


 “아줌마, 아줌마!”


나는 두 번 쯤 루꾸아줌마를 불렀나봐요. 그러다가 쓰러진건지 잠이 든건지 잘 생각나지 않아요.


 


 하늘만큼 높게 있던 가로등이 힘없이 옆으로 누웠어요. 왕 집게 기계차가 전봇대 한 개를 쑥 뽑아 쓰러뜨렸거든요. 동네에 이렇게 많은 굴삭기가 들어온 건 처음 보는 일이예요.


아쿠아월드 하고 테마파크가 생길 거라는데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어요. 빨랫줄 같았던 전선을 땅 속으로 묻는 작업을 할거래요. 답답할 것 같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어요.


루꾸 아줌마가 선물로 준 박스집도 커다란 집게에 물려 날아가 버렸어요.


누런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붙어있는 수천이네 집 지붕을 굴삭기가 막 먹어치우려는 순간 부황할머니가 소리쳤어요.


“기다려! 이놈들아”


굴삭기는 멈추지 않았어요.


“이 호로 새끼들아!”


부황 할머니가 굴삭기 앞을 가로 막았어요. 구부정하게 서 있는 할머니는 오늘따라 더 작아 보였어요. 그러다가 바람 빠진 키다리 인형처럼 털썩 주저 앉으며 개미 소리로 말했어요.


“그러면 몇일만……아픈 양반 죽이지는 말아야지.”


 


 괴물 소리를 내던 기계들이 멈췄어요.


“어르신! 약속이 다르잖습니까? 몇일 몇일이 벌써 몇 번쨉니까?”


아저씨가 높은 트럭에서 껑충 내려와 물 한병을 단숨에 벌컥대며 말했어요. 그러다가 퉤 뱉어버렸어요. 부황 할머니 신발이 젖었어요. 깜짝 놀라 물러서긴 했지만 내 꼬리도 젖어버렸구요. 우산 없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수천이 생각이 났어요.


“몇 일 후라고 뾰족한 수가 있습니까?”


 모자에 초록색으로 더하기 표시가 그려진 아저씨가 끼어들었어요.


“아들 올 때까진 기다려줘야지! 반장 양반아!”


“우리도 공정 맞춰야해서 힘들어요! 어르신”


잘은 모르지만 몇일만 하던 수천이 아빠가 못 온지 꽤 됐나봐요.


수천이 아빠는 하얀 가루약을 들고 한달에 두 번 정도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고는 해요. 서울 병원에서 가져오는 약을 먹으면 할아버지는 수천이를 데리러 올 수 있을 만큼 기운이 생기기도 했거든요.


 그날이 몇일 후인 모양이예요.


루꾸 아줌마가 있었다면 ‘아이구, 내 강아지!’ 하며 쯧쯧 거렸겠지만 나 따위한텐 누구도 관심이 없었어요.


 온 세상이 시커먼 검은색이예요. 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어요.


딱 한 개 남았던 가로등까지 뽑힌 체 누워있으니까 동네가 시커먼 동굴 같았어요.


길거리를 어슬렁 거리던 덩치 큰 개도 보이지 않았어요.


‘나도 어디론가 떠나야 하나 보다’ 생각이 든 건 그날 밤이었던 것 같아요.

 이사라고 해봤자 챙겨갈 알루미늄 밥그릇도 하나 없는걸요.

짐이라곤 부황 할머니가 던져준 옥수수뼈다귀가 전부였는데 그것조차 박스집과 함께 날아가버렸으니까요. 배가 고파지니까 모든게 옥수수뼈다귀처럼 보였어요.

공사장 근처를 몇바퀴나 킁킁거리며 어슬렁거렸어요.



‘어, 이 냄새는 수천이가 좋아하는 라면이 분명한데…….’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냈어요. 아저씨들이 참을 먹고 있나봐요. 조금 더 기다리면 수천이처럼 라면 줄기 몇 가닥을 던져줄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저만큼 서서 라면을 먹는 아저씨들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뭐라고 한 것도 아니예요.


“ 아, 재수 없는 고양이 새끼. 저리 가”


아저씨가 돌멩이 하나를 나를 향해 던졌어요. 하마터면 정말 맞을 뻔 했다니까요. 배가 고프면 기다리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더 힘들다는 것도 그 날 알았어요.



 루꾸 아줌마가 그랬어요.

‘우리 강아지! 배고프다고 덥석 달려들면 절대 안돼! 꼭 사람이 먹는 걸 보고 먹어야한다!’

사람이 못 먹는건 양이들도 절대 먹으면 안된다고 알려줬어요. 아저씨들이 후루룩 쩝쩝 소리는 오랫동안 계속 됐어요. 관리팀장 아저씨가 그릇을 막 치우려고 할 때였어요.

참, 관리팀장 아저씨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공사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기로 했대요.

부황할머니네, 수천이네는 옆 마을에 새로 생긴 장기임대주택인가로 이사하기로 결정됐구요.

“고양이집만한 곳 주면서 생색은 요란허네!”

이삿짐을 챙기며 부황 할머니가 투덜거리는걸 들었거든요.


관리팀장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어요. 난 용감하게 한마디 했죠!


“아저씨! 버리지 마세요!”


다행히 아저씨는 치우다 만 라면 그릇 한 개를 남겨줬어요.


쉬지 않고 마구 핥아댔나봐요. 국물이 보이지 않을 쯤에야 꼬리부터 머리끝까지 불이 난듯 뜨거워지는 걸 알았어요.


'이게 매운 맛이구나' 처음으로 느껴봤어요.


부리나케 달렸어요. 물을 마셔야 했어요. 목이 잘려 나갈 것 같았으니까요.


루꾸 아줌마가 없으니까 모든게 위험하고 무섭고 불안해졌어요.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이사를 오게 된 곳이 바로 이곳 탄광굴 안이에요.


동굴 안으로 막 뛰어들어왔을 때 질퍽한게 느껴졌어요. 물이 있을게 분명해요.


킁킁 냄새를 맡으며 열심히 뛰었어요. 미끌, 휘청하면서 넘어지고 말았어요. 발바닥을 들어 냄새를 맡았어요.


나쁜 향은 아니었어요. 멀리 가지 않아도 물이 있을 것 같아 다시 힘을 내봤어요. 발바닥이 얼얼한 게 그때야 느껴졌어요.


탄광굴 안은 석탄처럼 캄캄했어요. 얼마를 걸었을까요? 목이 타는 것도 잊어버릴 쯤 반짝하는 게 보였어요.


누군가 있는게 분명했어요. 누굴까요?


‘먹을 것을 구하고 돌아오는 루꾸 아줌마 눈빛도 반짝했었는데…….’


“루꾸 아줌마, 아줌마?”


루꾸아줌마 일리가 없겠지만 루꾸아줌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건 사실이에요.


탄광굴은 끝도 없이 이어졌어요. 걷고 걸어도 뛰고 뒤어도 캄캄한 밤은 계속됐어요.


반짝하던 빛을 찾아 나는 뛰고 뛰고 또 뛰었어요. 어쩌면 루꾸아줌마일ㅈ도 모르잖아요.


다리가 후들거리고 하수구에 빠진 날처럼 온 몸이 땀으로 젖었어요. 목구멍은 아직도 따가웠고 넘어진 다리도 아팠어요.


 ‘ 더 이상 못 걷겠다.’


내가 쓰러졌나 봐요. 어, 분명히 물 흐르는 소리였어요!


‘졸 졸 졸 ’


탄광굴 안에서 물이 흐른다고요?


반갑기도 했다가 겁이 나면서 어쩌면 나는 오늘까지만 살게 될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돌아 나갈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도 힘든 건 마찬가지니까요. 나는 탄광 굴 안으로 너무 많이 왔는 걸요. 어차피 루꾸 아줌마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닌 걸요.


 


아까 반짝했던 것이 어쩌면 정말로 루꾸아줌마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라에 힘을 주고 한 발 겨우 한 발자국씩 움직여봤어요. 걷는 건지, 끄는 건지 모를만큼 나는 너무 지쳐 있어요.


 얼마를 더 걸었을까요? 물을 만났어요. 그것도 몇날 며칠을 먹어도 될만큼 많은 물이었어요. 나는 동네를 철거할 때 봤던 아저씨처럼 벌컥벌컥 물을 마셨어요. 배가 풍선처럼 빵빵해질때까지 계속요. 배고픈 것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서운 마음도 조금은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루꾸 아줌마가 그랬거든요.


‘먹을 게 없을 때는 흐르는 물을 마시는 거야.’


‘흐르는 물은 먹어도 괜찮은 게 대부분이야.’


물만 마셔도 괜찮아진다는 루꾸 아줌마 말이 맞았어요. 풍선처럼 뚱뚱해진 배안에서 물 소리가 찰랑 거렸어요.

배가 풍선처럼 뚱뚱해졌어요.

 


 강아지라고 불러주던 엄마 같은 루꾸 아줌마


탄광굴 안은 아침도 밤도 없이 그냥 캄캄함 뿐이었어요. 밤인지 아침인지 모르는 날을 얼마나 보냈을까요? 아직 루꾸아줌마를 찾지는 못했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흐르는 물이 있어서 나는 잠깐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한거예요.


 


 물을 마시고 풍선처럼 배가 빵빵해지면 기분 좋게 잘 수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루꾸 아줌마를 꿈 속에서 만나요.


 


 나는 또 물을 마시고 풍선 같은 뚱뚱한 배를 만들어요.


그래야 잠이 오거든요.


그리고 꿈을 꿔요.


루꾸 아줌마는 아직도 나를 강아지라고 부르는거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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