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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쓰는명랑 May 16. 2023

쿰쿰이 오빠

소중한 인연, 마음으로 보는 눈

오빠를 소개하지.


나이 열세 살.

나보다는 11개월 먼저 태어났어. 우리 집 어른들은 왜 11개월 차이라는 걸 강조하시나 몰라.


이름 박세 후.

세상의 임금이 되라고 지어진 이름이래. 멋있지.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세우라고 부르고는 해. 오빠네반 애들은 새우깡이라고 부를 때도 있고.

나 같으면 화가 날 법도 한데, 오빤 화를 내지 않아. 누가 ‘새우깡’하고 웃으면서 부르면 오빠도 히죽댄다는 거야. 꼭 바보 같이 말이야.

그래 맞아. 오빠는 바보야. 우리 학교 도움반에 다니는 바보.


“엄마! 전학시켜 줘”

3학년 어린이날 행사 때던가? 도움반 없는 학교로 전학시켜 달라고 얼마나 울었나 몰라.

그 후로도 몇 번 더 오빠하고 같은 학교 안 다니는 걸 소원으로 해봤는데 아직까지 이뤄지지는 않았어. 착한 애 소원은 들어준다는데. 치, 그렇다면 내가 뭐 착하지 않다는 건가. 잘은 몰라도 오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다행히 오빠가 6학년이 되었고 몇 달만 참으면 졸업이니까 드디어 해방이야. 야호!


‘착한 아이 아니라고? 내가? 오빠한테 왜 그러냐고?’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오빠는 냄새 맡는 걸 좋아해. 그것도 꼭 정수리 냄새. 대신 아무한테나 들이대는 건 아니니까 너무 겁먹지는 말고.

5학년이 되면서는 우리 반 하고 오빠반 교실이 딱 붙어 있어서 화장실에 가는 것도 조심스럽다니까. 쉬는 시간엔 오빠가 꼭 복도로 나와서 어슬렁 거리거든.  

때문에 잘못 걸렸다가는 정수리를 내줘야 한다니까. 지난주 목요일이었나...... 옷에 오줌을 싸겠어서 쉬는 시간이 끝나갈 때쯤 화장실을 갔거든. 웬걸. 하이에나 같은 오빠, 아직도 복도에 있더라고. 내 머리에 무슨 초콜릿이라도 묻은 건지 유독 내 정수리를 그렇게 좋아한다니까.


“박쎄후! 수업 시작 됐다. 교실로 들어가야지!”

역시 지킴이 할아버지였어. 자꾸 아저씨라고 부르라는데, 말이 아저씨지. 머리카락이 반은 없고, 코 끝에 걸친 안경하며 누가 봐도 딱 할아버지가 어울려.

번쩍거리는 빨간 봉을 흔들면서 꾹 눌러쓴 모자와 한 몸이 되어서 뛰어오셨지. 그제야 오빠는 내 머리카락 냄새 맡기를 그만뒀어. 우리 학교에서 오빠가 정수리 냄새를 맡는 또 다른 분이 바로 지킴이 할아버지거든. 그러니 모자하고 한 몸이 될 수밖에……. 그런데도 지킴이 할아버지는 말이야, 세후 오빠에게 참 친절하게 대해주신다는 거야. 급하게 부르느라 늘 ‘쎄후 쎄후’ 센 발음이 나오지만 다른 사람처럼 새우나 새우깡이라고는 단 한 번도 부른 적이 없어.

그렇다면 오빠가 좋은 사람 안 좋은 사람을 구별할 줄 안다는 건가? 아무튼 세후 오빤 정수리 냄새를 사랑해. 누가 다음 주인공이 될지 모르니까 조심할 필요는 있겠어. 그렇다고 피해 다닐 것 까지야 뭐.


“세미야! 이 거 지킴이 할아버지께 갖다 드려.”

어쩌다 한 번씩 엄마는 검정 봉지를 지킴이 할아버지께 갖다 드리라며 건네.

“엄마, 미쳤어?”

처음 몇 번은 난리를 쳤는데 내가 안 가져가면 엄마가 따라나설 기세여서 그냥 알았다고 해버렸어. 엄마까지 학교에 오는 건 말도 안 돼. 쿰쿰 거리는 오빠를 보기라도 해 봐. 부끄러움은 내 몫이라고. 아휴! 생각만 해도 소름이다 정말.


엄마가 뭘 갖다 드려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킴이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인 건 확실해.


“세미야! 얼른 다녀와.”

“고마워요. 할아버지!”

나를 살려준 할아버지께 최대한 환하게 웃어드렸어. 너희 같으면 안 그러겠어.


 나 살려주신다고 그렇게 뛰어오는 걸 교감 선생님한테 안 걸린 게 다행이지. 그렇게 뛰었다간 아마 내일부터 우리 학교 못 오셨을 걸.

우리 교감 선생님? 어휴 말도 마. 유별이 하늘을 찌른다고. 발바닥을 바닥에 붙이래. 그러면 움직이지 말라는 소리잖아. 특히 복도에서 뛰었다간 아마 300시간 설교는 각오해야 될걸.

우리 학교 안 다니는 걸 행운인 줄 알아야 해.


“선생님도 젊은 선생님이던 때가 있었단다.”

누가 모르나, 젊었다가 늙어가는 건 지나가는 고양이도 알텐테…….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꼭 너희만 한 아이들이었어. 세상을 다 줘도 바꿀 수가 없을 만큼 소중했지.”

휴, 어쩌면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같이 들려주시냐. 암기력과 기억력은 아주 최고인 분인 것 같아. 하기야 그러니까 선생님이 되셨겠지만 말이야.

“복도에서 뛰고 싶겠지? 운동장이 넓을까, 복도가 넓을까?”

- 복도요.

대답할 때까지 기다리기 때문에 얼른 대답하고 이야기를 끝내게 하는 게 상책이야.

“좁은 복도에서 신나게 뛰다가 두 친구가 쿵! 하고 부딪혔지. 어떻게 되었을까?”

- 다쳤겠죠. (바보같이 피하면 되는데.)

“어디가 다쳤을까?”

- 아, 교감쌤! 영구치가 부러져서 금니 박았잖아요.

수업 때마다 반짝이는 그 아이 이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드셨대. 트라우마라고 하시더라고.

그 뒤부터 복도에서 뛰는 일은 절대로 없게 하시겠다는 목표가 생겼다는 거야. 그 후로 지금까지 우리 학교 교감선생님이 되실 때까지 계속 쭉.


나는 운동장에서 오빠를 기다려. 내가 돌봄을 하지 않는 중학년이 된 걸 제일 좋아한 사람은 바로 엄마였어. 아마, 나보다 더 좋아하는 눈치였어.

“엄마! 나 지민이랑 플롯 배울래.”

지민이는 1학년 때부터 쭉 같은 반이었던 친군데 플롯학원에 다닌다는 거야. 나도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지. 꼭 플루트를 배우고 싶다기보다는 친구가 한다니까 같이 하고 싶었어. 대부분 학원 다니는 이유가 그렇지 않아? 자아실현을 하겠다거나 대학 가기 위함이라는 둥 엄청난 꿈을 가지고 학원을 다니는 애들이 몇이나 되냐고?

“세미야! 토요일, 일요일만 하는 특강반도 있대. 소수정예라 더 잘 가르쳐 주신대.”

엄마가 벌써 학원 스케줄까지 다 알아보셨더라고.

“왜? 난 월화수목금요일이 좋은데.”

솔직한 대답이었어.

“그래? 그럼 자율이용권은 세후나 줘야겠다. 어머나, 오른쪽 눈썹 떨리는 거 좀 봐. 박세미 화났네.”

자율이용권? 얼마 전에 우리 집에 최신형 컴퓨터가 생겼어. 웹툰을 그리는 오빠를 위한 건데 (오빠를 만나는 미술치료 선생님이 만화 그리는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해 주셨대.)

오빠는 쓱쓱 그리기를 걸 잘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어. 모둠 활동 숙제를 부탁한 적도 몇 번 있고……. 아무튼 최신형 컴퓨터 주인은 박세후 오빠야. 우리 집 물건마다에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그 컴퓨터엔 바로 <박세후>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지. 번쩍번쩍 불빛도 난다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오빠와 학교 끝나면 함께 집에 가기’ 그거면 컴퓨터 1시간 이용권에 주말자율이용권까지 덤으로 붙는데 누가 그걸 마다하겠냐고.

‘백만 스물둘 백만 스물셋’하면서 끝도 없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건전지 광고 생각나지.

5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조금만 더 참자.’하면서 오빠와 함께 집에 가는 착한 동생이 되었어.


“세미야! 오빠하고 너는 11개월 차이야. 1년 차이도 안 되는.”

엄마가 이렇게 말할 땐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의미야.

“엄마! 보통 한 살이라고 하지. 누가 11개월이 차이 난다고 해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엄마에게 말했어.

“세후오빠 중학교 입학. 1년 유예하기로 결정했어.”

“그게 뭐예요? 나쁜 건가? 아니면 좋은 건가?”

솔직히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나는 엄마한테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고.

“우리 세미가 오빠를 이렇게 잘 챙겨주니까. 6학년을 한 번 더 보내고 중학교에 입학시킬 참이야.”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너희는 기억하지. 내가 오빠 졸업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래서 쿰쿰 거리는 것도 참았고, 새우, 새우깡 거리는 놈들도 참아냈다고, 운동장 제일 구석진 나무 의자에서 오빠를 기다리다가 집에 가는 일도 웃으면서 해낸 거라고. 오빠가 곧 졸업을 하니까. 백만 스물을 넘게 세어가면서 말이야. 그런데 뭐라고? 세후 오빠가 7학년이 된다고? 그것도 우리 학교에서?, 또 나하고 함께?

툭하면 ‘11개월 차이네, 누나 답네, 동생 같은 오빠라고 생각해라’ 했던 이유가 있었네. 있었어.

 세후오빠 7학년 결정은 우리 학교 원팀에서 결정되었대.

원팀은 또 뭐냐고? 엄마와 아빠, 오빠네반 선생님, 도움반 선생님, 교감선생님과 지킴이 할아버지, 그리고 복지관 특수선생님까지 열 명이 넘는 팀이 있나 봐. 오빠와 관계된 중요한 회의를 할 때는 다 같이 모여서 의논을 한 대. 왜 거거에 중요한 나는 뺀 걸까?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 회의를 하면서 결정이 된 사항이래. 무엇 보다 세후오빠가 원했다는 데 그건 믿을 수 없고. 어쨌거나 오빠는 우리 학교를 사랑하는 7학년이 되었어. 기막힌 것 한 가지 더 알려줄까? 세후 오빠와 내가 바로 같은 반이라는 거야. 놀랍지도 않아. 화도 나지 않는 걸 보면 내가 달인이 되었나 봐.


 7학년이 된 오빠는 좋아하는 사람 정수리 냄새 맡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 오빠가 특별히 좋아하던 정수리가 몇 있었는데 오빠를 피하거나 복도에서 뛰지 않아도 되었어. 지킴이 할아버지도 가끔 모자를 벗을 때도 있을 정도니까.


 오빠는 점점 많이 많이 변해갔어. 바보에서 그냥 오빠 같은 말이야. 무엇보다 웹툰 그리기로 바쁜 시간을 보냈어. 대회에도 몇 번이나 출전했고 교문 앞에 큰 상 받았다는 현수막이 두 달 넘게 붙여 있던 적도 있어. 우리 반 친구들 얼굴을 만화로 그려주는 일도 기분 좋게 했어. 어떤 애는 자기 여자 친구를 그려달라고 해서 내가 단칼에 잘랐어.

“야! 우리 오빠 엄청 바쁘거든, 1인당 한 장씩만이야.”

전교생이 다 모인 앞에서 오빠가 표창장을 받고 금메달을 목에 걸고 웃던 오빠를 잊을 수가 없어.

 한 뼘 정도 작았던 내 키는 2학기가 되면서 오빠를 따라잡아버렸어. 3센티쯤 키가 커진 이유 때문일까? 엄마가 말하는 것처럼 꼭 내가 쿰쿰이 오빠 누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니까. 그냥 오빠를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 엄마는 오빠가 이렇게 변한 데는 내 공이 제일 크다고 하지만 그 건 아니고 오빠를 위한 원팀 힘이었던 건 분명해.


 참, 지난번 글짓기 대회에서 쿰쿰이 오빠 세 줄 글쓰기로 장원했다는 말 했던가?

엄마는 지금도 지킴이 할아버지께 드리라며 밑반찬이 들어있는 검정봉지를 건네. 지킴이 할아버지는 ‘김영란법’ 어쩌고 하시면서 안 받는다는데 우리 엄마 성질 알지.

 “얘네들 곧 졸업인데 선생님 뵐 날도 몇 번 안 돼요.”

 참, 우리 교감선생님. 이번에 다른 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승진되셨어. 우리하고 같이 졸업하시지.

그리고 비밀인데, 오빠는 미술 특성화 중학교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여중으로 중학교 입학이 결정됐어. 오빠 때문에 매일매일 머리 감고 다녔는데 이제 내 정수리 냄새 누가 맡아주지?


쿰쿰이 오빠 (6학년 7반 박세미)


7학년이 된 우리 오빠

8학년, 9학년이 되더라도

내 정수리 백번이라도 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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