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 명품은 삶을 바꾸지 못했지만, 금리는 사람을 바꿨다.”
모두가 치료라도 받은듯
세무조사가 물러가자 회사는 금세 소음의 볼륨을 다시 올렸다.
신입들은 의자에, 부서는 각자의 핑계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세무조사? 그게 뭐였지?”라는 집단기억상실 치료라도 받은 듯.
세탁...그리고 아무리 해도 되지 않는것들
진고동 사장은 열 살 연상 론나사와 결혼했다.
론사나는 대부업계 ‘사나사나 좋은’의 두 번째 부인이자, 이미지 세탁소의 단골 고객이었다.
회사는 간판을 ‘사나사나 좋은 대부’로 갈아 달았다. ‘좋은’이라는 단어를 네온사인으로 깜빡이면
고금리도 세제에 헹궈져 ‘따뜻한 금융’이 되는 기적—그들이 믿는 종교였다.
론사나는 ‘정신적 부인’이라는 이상야릇한 직함으로 3년을 보냈다.
하객들은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 샴페인을 마셨다.
회장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회장 자리에 앉았다. 놀랍게도—혹은 당연하게도—그 자리는
그녀의 타고난 감각과 정확히 맞았다.
돈 냄새에 민감하고, 포장에 능하며, 책임은 얇게 펴 바르는 재능. 대부계는 그녀에게 박수를,
광고주는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건넸다.
하지만 사람의 입맛은 명품 카드로 긁어 지울 수 없다.
밤이면 론사나는 몰래 소주 한 병에 튀김·떡볶이·순대를 찾았다.
인생의 진짜 소스는 트러플이 아니라 고추장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명품백은 들었지만, 손은 여전히 종이컵을 잡고 있었다.
진고동은 오래 외항선을 타며 웬만한 기업 간부만큼 벌었다.
육지에 닻을 내리자마자 주식에 손댔다. ‘옆 사람의 귀가 얇으면 내 계좌도 얇아진다’는
진리를 몸으로 익혔다. 잃은 퇴직금을 만회하겠다며 배에서 배운 도박을 다시 손댓고, 이혼과 함께
결국 집까지 태워버렸다. 남은 건 손맛뿐. 그는 저녁마다 작은 포장마차를 펼쳤다.
기름은 바삭했고 국물은 붉었다. 메뉴는 서민적이되, 인생은 매출표처럼 냉정했다.
그리고 바로 그 붉은 국물의 수증기 사이로 론사나가 걸어왔다.
네온사인 ‘좋은’이 깜빡이고, 알루미늄 그릇이 달그락거리던 밤.
하나는 세탁된 이미지를 팔았고, 다른 하나는 튀김을 팔았다.
둘은 곧 ‘팔아본 사람들’끼리 통했다. 이미지 세탁과 기름 튀김, 이상하리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