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조직의 사용설명서

관계가 아니라 방치

by 한그루

론사나는 처음부터
또또와 진고동 사이를 못마땅해했다.

정확히 말하면,
진고동이 또또를 대하는 방식을 신뢰하지 않았다.
선을 넘는 행동을 문제 삼지 않고, 매번 “뭐, 그럴 수도 있지”로 덮어두는 태도.
그걸 그는 관계 관리라고 불렀지만, 론사나의 사전에는 그런 단어가 없었다.

“저건 관계가 아니라 방치야.”

론사나는 예전에 그렇게 말했다.
대부회사에서 오래 일한 사람답게 사람을 보는 눈이 빠르고, 정확했다.

겉보기엔 살짝 푼수끼 있는 동네 언니 타입이라 농담은 늘 뜬금없고
타이밍은 한 박자씩 어긋나 있었지만, 말보다 행동을 보고
한 번의 실수보다‘계속 허용되는 실수’를 더 문제 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번 사택 문제로 회사가 소란스러워졌을 때도 론사나는 유독 불편해 보였다.
집이 비싸서도, 계약 방식이 복잡해서도 아니었다.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대부계에서 수없이 봐왔던,“일 키우는 인간형” 말이다.

그날은 정말 우연이었다.
나와 H ,김 과장은 퇴근시간에 회사에 잠깐 들렀던 론사나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화려한 차림새였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늘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기서 보네.”

가벼운 인사였지만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각자 머릿속에 떠 있는 이름이 같다는 걸.

근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택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김 과장은 최대한 사실만 말했다.
대출이 안 됐던 과정, 매매로 급선회한 이유, 집을 보러 갔던 날의 묘한 공기까지.

론사나는 한참을 듣더니 마치 계산기 두드리다 말듯 툭 던졌다.

“이건 또또 문제도 아니고, 사택 문제도 아니야.”

잠깐의 정적. 그리고 결정타.

“진고동 문제야.
자기가 키운 문제를 항상 남의 일처럼 만드는 사람.”

설명도 없고, 부연도 없었다.
그냥 결론.

김 과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순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해졌다.

웃으면서도 “아… 맞네.”그동안 애써 풀어쓰던 문장을 단 한 줄로 정리당한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계속 이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 정의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론사나는 그걸 너무 쉽게 해냈다.

H의 표정은 역시 론사나군 하는 표정이었다

그날 이후로 사택 문제는 더 이상 복잡하지 않았다.
집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론사나가 어느 날 갑자기 늙은 대부계 회장을 만나 졸부가 되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진고동보다는 훨씬 나은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다.
전혀 다른 세계관, 그리고 그걸 끝까지 유지하는 능력.

어쩌면 회사가 여기까지 온 이유도 비전이 아니라 사람 하나 잘 골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론사나 vs 진고동

같은 공간, 전혀 다른 인간형

1. 사람을 보는 기준

론사나는 사람을‘반복되는 선택’으로 본다.
말이 아니라 행동, 사과가 아니라 그다음 행동.
한 번의 예외보다 예외가 상시가 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진고동은 사람을 ‘지금 당장 편한지’로 본다.
오늘 불편하지 않으면 문제는 내일의 일이 된다.
선을 넘는 행동도 그때그때 웃고 넘기면 관계는 유지된다고 믿는다.

2. 책임에 대한 태도

론사나에게 책임은 “허용한 사람이 지는 것”이다.
자기가 열어준 문으로 어떤 일이 들어왔는지까지 자기 몫이라고 생각한다.

진고동에게 책임은 “커졌을 때 생기는 것”이다.
작을 땐 넘어가고, 커지면 이미 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문제는 늘 “왜 이렇게까지 커졌지?”가 된다.

론사나는 겉보기엔 조금 맹해 보인다. 농담은 엇박자고,
대부회사 출신 회장보다는 동네 언니에 가깝다.

나보다 열두 살이 많았지만
나를 늘 “이사 언니”라고 불렀고, H는 이유도 모른 채 “탐정 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 과장은 늘 착한 범생이 라 했다

맹해 보였던 건 아마 페이크였을 것이다.

다들 방심하는 순간 론사나는 꼭 한 방을 날렸다.

“이건 진고동 문제야.”

그땨 그 튀김이 맛이 조금만 맛이 없었어도...

하면서 크게 호탕하게 웃으며

언니들은 진고동의 튀김 못 먹어 봤지...?

웃고 있지만 정확히 아픈 데만 찌르는 사람.

그게 론사나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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