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법정 발언 중심으로
<칼의 노래>, <현의 노래>에서 역사 속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현재를 사는 우리와 대면할 수 있게 해 준 소설가 김훈이 이번에는 안중근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고 받은 나의 느낌은,
- 왜 이리 짧지?
본문이 280 페이지로 끝나고 후기와 주석을 합쳐 307페이지다. 풍부한 어휘와 묘사로 지루하지 않을 만큼 글을 길게 쓰기를 즐기는 김훈답지 않은 분량이다. 나중에 알릴레오 북's에서 내용을 보강해 개정판을 내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건강 악화로 완성된 출간이 영원히 안될까 두려워 서둘러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소재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사는 고뇌하는 영웅들이다 보니 밝고 유쾌한 마음이 아닌 다소 무거운 심정으로 쓸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특히 2022년을 사는 우리의 독자의 마음도 무겁다.
책머리에 아래 같은 지도를 삽입해 두어, 안중근과 이토가 부딪히는 공간과 시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둘의 동선만으로도 영화적 시퀀스가 떠오르며 긴장감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이 소설의 내용이 실제 사실을 중심으로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는 효과도 있다.
묘사된 주요 인물은 안중근과 이토,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천주교 신부 빌렘, 안중근의 동료 우덕순이다. 주변 인물로는 황세자(영친왕) 이은, 일왕 메이지, 천주교 주교 뮈텔, 안중근을 신문한 검찰관 미조부치 타카오, 재판장 마나베 등이 있다. 110년 전의 일이라 기록이 풍부해서 소설가의 상상력이 크게 개입할 부분은 없었고 김훈도 처음부터 기록에 충실해서 쓰려는 의도였다고 했다. 그래서 읽으면서 소설이라기보다 쉽게 잘 쓰인 역사책을 읽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역사책과 다른 점은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가 이토 저격이 아닌 재판 과정에서 안중근의 말이라는 것이다. 하얼빈에서 이토를 저격하는 순간은 소설의 중간에 나오며 묘사도 절정의 장면의 것은 아니었다. 가장 많은 분량으로 세세하게 그려진 것은 검찰관의 취조와 재판, 그리고 종교적 고해성사 부분이다. 이것이 역사와 역사소설의 차이이다. 이밖에도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중요도와 필요성에서 둘의 차이는 크다. 오히려 사실이냐 허구냐를 따지는 것은 덜 중요하다.
안중근이 옥리의 부탁으로 써 줬다는 유묵 중,
약육강식 풍진시대 (弱肉强食 風塵時代)
이것이 안중근이 이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의 핵심이다. 이토의 대동아 전략이 동양을 전장으로 만들고 수많은 죽음을 만들고 있으므로 그것을 멈추겠다는 것. 그래서 동양평화론을 펼치는 것. 그것을 위해 이토의 저격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동양의 평화를 위해 자신이 가진 권총 한 자루와 뛰어난 포수로서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그의 아름다운 정신을 우리 민족을 위해 써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 소설을 통해 전혀 몰랐거나 반대로 착각했던 것들을 알거나 바로잡을 수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1939년 무렵, 일제가 안중근의 자녀 안현생(장녀)과 안중생(차남)을 변절시켜 이토의 아들에게 사과하고 자신의 아버지의 일을 비난하게 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안중근의 남은 가족은 김구 등 민족 운동가들과도 멀어져 해방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거나 귀국해서도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된다.
다음은 천주교 교구가 일제와 손잡고 민족운동가를 밀고하거나 탄압하는데 앞장섰다는 것. 그의 일환으로 안중근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죄인'으로 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이 '정당방위'라고 하기까지 해방 후에도 그 과오를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안중근이 독립군 장교로 있을 때 포로로 잡힌 일본군을 총까지 주며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고 한다. 후에 이것이 화근이 되어 자신의 부대가 해체되기까지 하는데,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도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독일군 포로를 풀어 줬다가 영화 마지막 그 독일군에게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장면이다. 이때도 독일군에게는 연민을 느끼면서 자기 동료에게는 총을 겨누며 "네가 더 나빠. 차라리 저 독일군이 나아!"라는 말까지 한다. 적보다 동료를 더 미워하게 되는 아이러니, 살면서 의외로 자주 보고 겪게 되는 일이다. 이 일화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게 다뤄졌다. 개정판에서 추가되길 기대한다.
끝으로 다소 아쉬운 점은 인물 간의 대화체가 좀 어색한 것, 안중근과 우덕순, 그리고 빌렘 신부와의 대화가 비슷해 인물의 입체감이 다소 떨어진다. 진술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또 하나는 이야기를 31개의 장으로 나누면서 번호만 붙이고 소재목을 넣지 않은 것이다. 작가 특유의 정제된 언어감각으로 뽑아낸 소제목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고, 나중에 다시 되돌아 읽을 때 이야기의 위치를 확인하는데도 도움이 되는데 이것을 하지 않은 것은 항의를 하고 싶을 만큼 아쉽다. 김훈 작가의 건강이 걱정되는데 잘 회복해서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기대한다.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이 살면서 연필과 원고지로만 글을 쓰는 작가가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