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거짓된 행동
겸손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인가?
겸손(謙遜) :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
내가 겸손이 미덕이 아닌 악덕이라 여기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진심을 감춘 거짓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둘째, 겸손을 행하는 사람이나 그 주변의 사람이나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셋째, 미덕이라며 부당하게 강요된다는 것이다.
겸손은 거짓이라 공허하다.
겸손한 말은 알맹이가 없다. 본질을 비켜서 가식적인 하나 마나 한 말이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을 뿐이고요...", "저는 한 것이 없고 다른 분들이 다 하셨고..."
성취한 사람의 진실한 경험담을 들을 기회가 박탈된다. 이렇게 뻔한 말이 아닌 진실한 말을 하려면 코미디가 되거나, 건방지고 오만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겸손이 본받을 만한 정보와 노하우, 경험이 공유될 좋은 기회를 가로막은 것이다.
누구를 위한 겸손인가?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적이 되는 것을 막고, 나중에 닥칠 실패의 순간 받게 될 비아냥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이익이 있다. 또, 경쟁자의 경우, 그 성취로 받게 되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위협을 다소 덜 받게 될 수 있다. 주변인들도 기존 질서가 계속 유지되는 편안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적 이익이 될 수 없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타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 행동은 언젠가, 또는 다른 것에서 보상받으려는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람직할 리 없다. 경쟁자도 마찬가지다. 위기감이나 시기심이 적절히 조절되어야 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에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다. 거짓으로부터 얻는 이익은 궁극적일 수 없다.
겸손을 요구하는 것이 온당한가?
사람에 따라 자신의 성취를 어떻게 평가하는 가는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다. 스스로 한 평가가 일반적 기준으로 봤을 때 적당하지 않고 과장, 또는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면 이에 맞게 생각하면 될 일이지 "과소평가하는 것이 미덕이다."라 하며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가? 우리 사회가 '겸손은 미덕',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며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 과장해서 허세를 떤다면 비난할 수 있지만,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한 것도 겸손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물건이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불편해 줄을 맞춰 놓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 부정확하게 쓰이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이 불편해 위, 아랫사람 가리지 않고 지적을 한다. 건방지거나 오만해서가 아니다. 상대를 얕잡아봐서도 아니다. 그냥 거짓이고 틀린 것을 바로잡고 싶어서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느 친척분이 나에게 "너, 공부 잘한다면서, 늘 일등만 한다고, 똑똑하구나."라고 했다. 분명 큰 의미 없이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지만 난 '늘 일등만 한다.'라는 말이 걸렸다. 그래서 '가끔 일등도 한다.'로 고쳐 줬다. 당연히 분위기는 어색해졌고, 한동안 '가끔 일등도 하는 아이'로 불렸다.
겸손은 눈치의 산물
결국 겸손은 눈치 보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남의 눈치 살필 시간에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살피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다. 눈치가 거짓이 오히려 당당한 세상을 만든다.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정치인, 언론인, 학자, 다들 거짓말을 하면서 서로 눈치를 본다. 이들에게 진실은 불편하고 거짓은 익숙하고 편하다.
거짓은 악이다. 미덕이 될 수 없다. 솔직하게 살아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다 같이 유쾌하게 살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