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9단, 김은숙의 고수가 두는 바둑 같은 복수극
폭력은 사람의 표정을 어둡게 한다.
드라마의 주된 소재는 '학교폭력'이다. 하지만 사회 어디에나 '착취적이고 피상적인 관계를 원하고 이에 익숙한 자'들은 폭력적 관계를 만들기 마련이다. 교사의 폭력, 가정 폭력, 직장 내 폭력까지. 폭력이 만연한 사회.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는 더 심했다. 정권부터 쿠데타라는 폭력으로 정권을 강탈한 자들이라 폭력은 위에서부터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표정이 대체로 어두워요.
2001년. 원어민 강사가 나에게 했던 말
당시 20대 중반의 금발 미국 여자였는데, 길을 지나는 한국 사람들 표정이 유달리 어두워 보인다고 했다. 이때부터 내가 해외를 가면 그 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표정을 관찰하게 됐는데, 결과는 국가별 사람들 표정의 밝기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경제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 어렵게 사는 사람도 밝았고, 일본과 남부 이탈리아는 약간 어두운 편이다. 같은 나라라도 대도시는 조금 어둡고 한적한 시골은 밝았다. 사람들 표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치안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훨씬 밝아졌다. 결국 사람들 표정의 밝고 어두움의 평균값은 폭력이 그 사회에 얼마나 만연한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작가 9단, 김은숙의 고수가 두는 바둑 같은 복수극
학교폭력 가해자 5명이 바둑판에 놓여있다. 좌상귀에 이사라(김히어라), 우상귀에 전재준(박성훈), 좌하귀에 최혜정(차주영), 우하귀에 손명오(김건우), 그리고 중앙에 마지막으로 잡을 대마 박연진(임지연). 문동은(송혜교)의 복수는 바둑에서 상대의 집을 무너뜨리고 대마를 잡아내듯 진행된다. 다섯 위치의 싸움을 적절히 관리하여 최종 승리를 얻어내는 바둑 고수의 자세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한판의 바둑처럼 끝까지 보게 되는 매력 있는 드라마다.
시간과 사건을 번갈아 보여주는 것이 마치 바둑에서 하나의 싸움을 끝내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 것같이 표현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이것은 호불호가 있을 듯하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가 가장 부족한 점은 남자 인물이 비현실적이고 어색한 것인데, 드라마 소비자는 주로 여성이라 논외로 하자.
등장인물 소개
같은 수증기지만 지표면에 있으면 안개,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 비슷한 나팔꽃이지만 땅을 향해 있으면 '천사의 나팔꽃', 하늘을 향해 있으면 '악마의 나팔꽃'.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부서진 삶에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왜 나만 죽어야 해? 그들은 잘만 사는데."라며 사적 복수를 택한다. 그 어떤 영광도 없을지라도 바둑에서 상대편 대마를 몰아서 잡아내듯 치밀한 복수를 결심한다.
"죽어서 꼭 천국에 가라. 사는 동안은 지옥일 테니까."
"용서는 없어, 그래서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
"왜 괴롭히냐고? 나는 뭘 해도 괜찮고, 넌 뭘 당해도 괜찮으니까!"
"난, 꿈을 가질 필요가 없어. 꿈을 가진 너희가 열심히 날 위해 일할 거니까."
백야(white night)와 같이 어둠이 없는 삶을 살다, 성인이 된 문동은을 만나며 극야(polar night)가 찾아왔다. 한쪽 극에서 백야를 보낼 때 반대쪽 극에서는 극야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르는 모습이 기대된다.
부유한 부모에게 골프장과 사업체를 물려받아 그저 즐기면서 살면 되니,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매사가 무심하다. 그런 그가 가장 불같이 반응하는 것은 색을 구분 못하는 그의 '눈깔'.
"결혼 같은 것 별로 관심 없었는데, 이제 꼭 가지고 싶은 것이 생겼어. 예솔이 아빠 되게 해 줘."
난생처럼 가지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대형 교회 목사 딸로 마약류에 의존해 현재의 시간을 지우며 산다. 어차피 죽으면 갈 곳은 천국이라 현생은 막살며 보내도 된다.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다 구원받았어."
종교적 활동은 물론 현실 세계에 애착이 없고 귀찮다. 마약이 주는 달콤함을 마음껏 즐기다 천국에 가면 그뿐이라 여기는 삶. 우영우의 탈북자에 이어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김히어라 배우
계급사회의 착취 구조에 순응해 '세탁소집 딸'로서 자기가 복종해야 할 대상과 착취해도 되는 대상을 철저히 구분하고 산다.
"비행기 안은 좌석 등급으로 철저히 구분되어 비닐 커튼 밖에 안되지만 아무도 못 넘어가. 하지만 나는 넘어갈 거야."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고, 옳고 그르고는 상관없이 현재 자신의 목줄을 쥔 사람의 편이 되어 사는 영혼 없는 인간.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가장 약한 보육원 출신이 강자의 부하가 되어 다른 약자들 앞에서 센척하며 현재의 삶을 즐긴다.
"메멘토 모리, Momento Mori"
죽음(mori)이 있음을 알고 한 번뿐인 인생을 값지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것 하면서 즐기며 막사는 인생을 사는, 폭력의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그저 SD카드 같은 소모품.
대형병원 원장 부부의 외아들로 태어나, 태어나자마자, '목적지에 도착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유년 시절.
"당신의 복수를 위해 칼춤을 추는 망나니가 될게요."
병든 사회에서 나와 가족만 안전하게 산다는 것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고, 개인의 안정, 가족의 편안, 사회 구조적 개선까지 확장이 가능할지를 가름해 볼 수 있는 인물.
폭력이 체화되어 가장 어두운 표정을 했지만, 명랑함을 담당하는 캐릭터
"난 맞고 살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가정 폭력으로 얼굴에 늘 멍을 달고 살고, 남편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로 절박하지만, 명랑하고 따뜻한 본성을 가진 사람이다. 문동은의 강력한 지원군이지만, 파트 2에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신도 모른 체 가해자 편에 있게 됐지만 문동은의 복수를 위해 날갯짓을 하게 될 사람.
"재미로도 미학적으로도"
'태어나면서부터 흑돌을 양보받고 시작하는 인생', 겉으론 젠틀하지만 남을 부리는 데 익숙한 차가운 영혼의 남자. 자기 인생의 포장지가 벗겨지고 알맹이 없는 공허함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좋은 극본이 좋은 연기를 만든다.
송혜교는 유년 시절 폭력에 쩌든 어두운 표정을 완벽히 살렸다. 극 중 한두 번 잠깐 웃는 장면에서도 그 폼을 유지했다. 임지연의 연기도 악역이 처음이라 하는데, 서툴지 않았고 오히려 처음 만들어진 캐릭터라 좋았다. 아역들의 연기도 걸리는 부분이 없이 매끄러웠다. 그래서 학교 폭력의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이 보기 꺼려한다는 것이 이해된다. 작가가 인물을 잘 살려 극본을 써 주니 배우가 캐릭터 만들기가 편했던 것 같다. 이름 있는 배우를 많이 기용하지 않았는데도 걸작이 되었다.
폭력의 가해자들은 늘 책임을 전가한다.
박연진의 말, "가난한 것들은 최대 가해자가 가족이야."라던가, 담임 선생님의 말, "넌 아무 잘못이 없어?" 등. 가해자는 죄책감이 없고 피해자를 오히려 더 몰아세운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할 사회는 가해자의 편일 때가 많다. 폭력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호소할 곳, 사법기관도 피해자 돕기에 부족하고,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아도 솜방망이인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억울함을 풀 방법이 없으면 폭력에서 벗어나도 피해자는 계속해서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더 글로리>는 물론 <D.P.>, <돼지의 왕> 등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1980년 광주의 당사자도 5.18의 영상물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반면 가해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전두환도 편하게 살다가 갔다. 왜 이럴까?
폭력 피해자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말, "넌 아무 잘못도 없어?"
이럴 때 '쿨 한 척', '선비인 척'하느라, 적당히 "모두 조금씩 잘못했고, 조금씩 양보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더 글로리>를 통해
그래, 난 아무 잘못이 없어!
라고 말해라고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니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도 <더 글로리>는 좀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국가의 제도와 사법제도에 의한 공적 복수로 개인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이 모두 막혔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극단적 선택, 아니면 사적 복수
초선 의원이던 노무현이 1988년 7월 국회에서 말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생각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랬던 그의 선택은 우리가 아는 것과 같다. 작가가 사적 복수를 옹호하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억울한 감정이 자꾸 생기는 것은 불안의 에너지가 쌓이는 것이다. 모인 에너지는 어떻게든 해소될 방향을 찾는다. 이것을 통쾌한 사적 복수를 작품으로 그려내 준다면 부정적 에너지를 조금은 누그러뜨려 주지 않을까 생각으로 이 작품을 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계 3대 복수극은, '존 윅', '테이큰', 그리고 '더 글로리'입니다!
작가 김은숙의 자신 있는 이 말에서 더 기대가 된다. 남은 Part 2에서 그려질 통쾌한 복수의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