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개인의 성장, 독일은 올바른 이데올로기의 정립
프랑스는 왕의 목을 단두대로 날려버리고 민주제를 이룬 나라다. 왕과 귀족이라는 지배 계급을 없애고 개개인이 국가의 주권자가 된 나라라서 그 개개인이 원하는 교육을 한다. 권력자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는 그들은 자신의 지적 성숙을 통한 성장을 위해 교육을 받는다. 그들 눈에 한국의 학생은 지식은 많아도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애 같아 보인다고 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가 주인공을 보는 것처럼.
이거 여자도 좋아할 줄 알고, 다 컸어. 잘 컸어
영화 <건축학개론> 중에서 납득이(조정석)의 대사
독일은 나치를 경험하면서 개인의 사상이 굳건히 정립되지 못하면 언제든 독재자에게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집단화된 악에 맞설 수 있는 자아를 갖춘 사람을 키우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었다.
대체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육의 목적,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서 자아실현을 하고 소속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는 것에 부합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의 교육 목적은 체제에 순응하는 얌전한 피지배자를 기르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에도 없는 것이다. 일본에 의해 이식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성균관 유생들은 왕권을 견제했다. 뛰어난 유학자들은 국가 대소사에 왕과 논쟁을 벌였다. 조선 때에도 학문을 통해 비판적 태도를 갖고 지도자로서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학자로서 덕목이었는데 일제에 의해 자기 생각 없는 피지배자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무사의 나라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분이 명확해서다.
중국의 경우도 문화혁명기에 지식인을 죽이고 탄압하면서 권력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인도나 기타 개인의 생존이 불안정한 나라, 권력이 불안정한 나라는 모두 지식인에 의한 체제 전복을 막기 위해 유약한 국민을 원한다. 3S 정책 등이 그것이다. 세계를 호령하던 포르투갈이 지금처럼 몰락한 것도 살라자르의 3F 정책 때문이다. (3F : Football, Fatima, Fado, 우민화 정책)
결국 교과과정을 충실히 따른 사람은 '멍청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실상 배움이 없는 김건희가 윤석열 같은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 잘 나타나 있다. 윤석열이 스승이라 칭하며 유승민에게 귀담아들어보길 권했던 천공의 경우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글도 읽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다. 윤석열뿐만 아니라 그녀를 거처 간 산부인과 의사, 양재택 검사, 김범수 아나운서 등도 같다. 모두 서울대를 나왔으니 말 잘 듣는 멍청이로 다루기 편했을 것이다. 김건희와 최은순이 특이한 경우가 아니다. 최태민과 최순실이 박근혜를 조종한 것도 같은 이치다.
이런 일이 정치인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자.
애 교육이야 마누라 몫이니까, 돈만 벌어다 주면 남편 노릇, 아비 노릇 다하는 거라고 믿었으니까!
드라마 <스카이캐슬> 중에서
극 중 남편들의 직업은 로스쿨 교수나 의사들이다. 아마도 어려서 성적이 좋았고 명문대를 나왔을 것이다. 그에 반해 아내들은 이렇다 할 공부를 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자식들 교육은 마누라 몫이다. 공부를 했던 남편들 의견은 없거나 무시된다. '말 잘 듣는 멍청이'가 남편의 역할이다. 드라마도 그 끝이 파국이고 현실도 그렇다. 박근혜가 그랬고 윤석열도 언젠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다.
자식을 망가뜨리고 가족을 파괴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 부모들입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중 김 선생의 말
실제 입시 교육 현장도 드라마와 다르지 않다. 명문대 출신의 강사라고 해도 이렇다 할 학력이 없는 상담 실장이 교육과정을 설계한다. 학부모들도 그들의 말을 신뢰한다. 명문대를 나온 사람은 명문대 들어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 취급받고, 그 근처도 못 간 상담 실장, 입시 코디네이터가 그 방법을 일러주는 아이러니. 이런 모순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참고로, 프랑스인과 한국인의 태도의 차이를 보여주는 영화로 <I am here!>가 있다. 배두나가 출연하고 인천공항과 서울에서 상당 부분 촬영된 영화인데, 주제가 '눈치'다. 한국어에만 있는 단어 '눈치'라는 말을 발음 그대로 사용한다. 이 말이 프랑스인에게는 생소하다. 두 나라의 차이를 이야기하다가 생각난 영화인데, 프랑스 영화 특유의 지루함 주의!
표준화 시험은 학생들의 학습에 강한 동기부여를 하고, 선별 과정의 효율과 공정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게다가 '구성원 간 신뢰'라고 하는 사회적 자산이 부족한 우리나라 교육계는 수능과 같은 표준화 시험 이외에 다른 대안이 부족하다는 면에서 불가피한 면도 있다. 하지만 부작용 또한 큰 것이 사실이기에 보완해 가야 한다.
공부의 목적은 이상적으로는 지혜로운 사람, 문제해결력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명문대에 진학해 고수익의 직업을 가지기 유리한 조건을 갖추기 위함이다. Wag the Dog(꼬리가 개를 흔드는 것) 상황이다.
능력을 기르기 위한 도구인 시험이 목적이 되어 있다. 그리고 시험의 결과가 인생에 너무나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공부의 본질은 무시되고 시험 점수만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배자에게 순응하는 '멍청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이 된다. 이것을 깨려면 성적의 가치가 낮아져야 한다. '80년대 대학생에게 평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졸업도 하기 전에 장학금을 주며 채용해 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는 고등학교까지 성적의 노예였을 망정 대학생이 되면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생은 계속 성적의 노예로 살다가, 직장인이 되면 연봉의 노예로 살게 된다. 기득권 세력이 일제 고사와 같은 표준화 시험을 확대, 강화하려는 이유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것이 공정하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기득권 층, 부유층에 유리하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SAT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실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Test Wiseness(본질적 능력과 상관없지만 점수에 영향을 주는 것)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표준화 시험 거부 운동이 확산되는 근거다.
지혜로운 인간은 질문하는(Ask) 인간이지 정해진 답을 하는(Answer)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유독 우리 사회에서 교육 개혁이 어렵고 보수 편향으로 기우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부역해서 형성한 친일 세력의 자본이 사학 재단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인적으로도 물적으로도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 그중 재산은 사학 재단과 종교 재단으로 흘러 들어가 보존되고 있다. 종교 재단 역시 학교를 운영하기에 그들에 의해 학생들은 지배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학 개혁을 하고자 했을 때 박근혜가 결사적으로 막아낸 이유다.
그래서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