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도 설명되는 심리학적 설명
직장에서 명백한 잘못으로 여러 사람의 피해를 준 사람(굳이 따지면 후배 정도)에게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물은 적이 있다. 드라이하게 말해, 나쁜 일을 저지른 자에게 내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고 사적 응징도 했던 것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나와 그는 사는 곳도 바뀌고 하는 일도 바뀌어서 그자와는 전혀 관련 없는 위치에 있을 때였다. 옛날 그 직장에 같이 있었던 나와 친했던 동생으로부터 한참 자고 있을 시간에 전화가 왔다. 몇 년간 왕래가 없던 동생이 이 시간에 전화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반갑게 받았다. 자다가 받아서 침대에서 비몽사몽 이야기를 했는데, 전화를 건 용건은, 내가 잘못에 책임을 지워 쫓겨났던 그자와 지금 같이 술 마시고 있는데, 내 이야기가 나와서 자기가 내 사과를 받아주겠다며 호기를 부려 전화했던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그 자식에 대한 분이 아직 덜 풀었으니, 나에게 또 걸리면 내가 진짜로 죽여버릴 것이라 말해줘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후배가 나의 반응에 놀라고 당황해서 하는 말이,
"형은 늘 사람을 존중하고 약자를 위하는 사람 아니었어?"
내가 선한 사람이라 사람이면 아무나 불쌍히 여긴다고 해서 만만하게 본 것이다. 그자에게 내가 준 고통은 그자의 잘못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았기에 나는 분이 덜 풀렸다. 10배 100배의 고통을 더 주어도 부족할 잘못을 하고도, 그자는 내가 미안해할 것이라 착각했던 것이다. 이유는 내가 선한 사람이라 만만해서.
선한 사람은 응징하지 않을 것이므로 만만할 것이라는 생각
영화 <킬복순>에, '김구, 안중근, 윤봉길은 사람을 죽였다.'라는 대사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죽여야 할 사람을 죽인 것이 선한 행동이 아닐 이유는 없다. 잘못에 책임을 지우는 수단이 사적복수밖에 남지 않은 세상이라면 사적복수는 합리적이고 정당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적 제제 시스템을 못 갖추게 하면서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의 세상이 된다. 이것을 [시민 불복종 : civil disobedienc]라고 한다. 근본이 있는 개념이고 태도다. 나는 일찍이 적당한(?) 사적복수가 부조리를 줄이는데 도움 된다고 봤다. 나는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일반화해 보다. 왜 그자는 일을 저지르는 자이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을까? 왜 나에게는 책임을 지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길까?
심리학에서 동물의 행동을 하는 요인, 즉, 동기에는,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접근동기'와 두려운 무엇인가를 피하려는 '회피동기'가 있다. 얼핏 명확히 반대일 수도 애매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는데 배가 고프지 않아도 더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접근동기, 굶으면 괴로우니까 먹는 것은 회피동기다.
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시작하는 접근동기, 피하고자 하는 두려움에서 시작하는 회피동기.
욕구의 시작점은 명확하지만 도착점은 모호하다. 식욕, 색욕, 수면욕 어느 것도 얼마큼 해야 만족할지 모호하다. 그에 반해 두려움은 경계가 비교적 분명하다. 불편함을 덜 느낄수록 성공이다. 축구 경기에 적용하면 승리하려는 자의 욕구는 끝이 없다. 골의 수는 다다익선. 그래서 승리 요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골을 넣은 사람뿐만 아니라 골을 막은 사람 등. 그래서 공과 상을 주는 공론행상은 늘 어렵다. 하지만 진 팀의 패배요인은 비교적 심플하다. 책임 지우기는 쉽다.
먹고살고자 하는 일에는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 반면, 무엇을 피하고자 하는 일에는 책임 지우기 쉽다.
'다 먹고살고자 한 일인데, 봐주자.'
큰 피해를 입힌 잘못된 일에도 이따위 말을 쉽게 한다. 먹고살려고 하는 행동은 접근동기에서 시작하기에 경계가 모호해 책임 지우기가 어려워서다. 인간의 뇌가 게으른 '인지적 구두쇠'라서다. 그런데 무언가는 막겠다는 말에는 쉽게 책임을 지운다. 쉽기 때문이다.
'별도 달도 따줄게' vs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게'
별도 달도 따준다는 말을 지키지 못했다고 책망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 노력 중이고 나중에 따 줄 거라고 하면 그만이다. 반면에 손에 물을 안 묻히게 하는 것은 쉽게 책망 가능하다. 물 묻은 손을 보이면 된다.
책임을 진다는 말, 멋진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호구 잡히기 쉬운 말이다. 한심한 작자들에게 놀아나지 않을 방도가 없을 때 해서는 안될 말이다.
'내로남불'이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는 것은 접근동기라서 로맨스지만, 남이 하는 것은 지켜야 할 정조, 그것을 어기면 불륜이라서 회피동기다. 나의 로맨스에 대한 접근동기는 책임을 묻기 어렵지만, 남의 회피동기 불륜은 책임을 묻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