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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Oct 27. 2023

뻔뻔함의 기원

매품팔이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매를 대신 맞고 돈을 버는 '매품팔이'


사회의 특권을 누리는 자는 더 큰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반대말은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이다. 특권은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인데, 우리의 역사에는 비슷한 예로 조선시대의 매품팔이가 있다. 죄지은 양반을 대신해 매를 맞고 돈을 받는 일로, 판소리 <흥부가>에도 나올 만큼 당시에는 흔한 일로 추정된다.

'권한과 책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말은 이상에 지나지 않고 현실은 따로 따로다. 그런 면에서 '내 탓이오!'라는 태도도 좋지 않다. 선한 마음에서 하는 말이지만, 무책임한 사람이 더 편하게 뻔뻔해질 수 있게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비가 와도, 비가 오지 않아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라고 말한 대통령(고 노무현)이 있는가 하면, '잘못된 일은 모두 전 정부 탓'으로 돌리는 대통령도 있다. 분명 자기 책임이 아닌데 미안함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있고, 명백히 자기 책임인데 그것을 전혀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 본성이다.


인간 행동의 동기를 하고자 해서 하는 '접근 동기'와 싫은 것을 피하기 위해 하는 '회피 동기'로 나눈다. 이를 생물학적으로 구분하면, 접근 동기는 전두엽의 능동적 행복 호르몬(도파민, 엔도르핀,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이 분비되도록 행동하려는 의지이다. 반면에 회피 동기는 편도체의 피동적 반응으로 스트레스 물질(아드레날린 등)이 생성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지이다. 


그래서 접근 동기로 한 일은 잘못돼도 뻔뻔하게 나오기 쉽다. '다 잘되자고 한 일인데', '먹고살자고 한 일인데'라며 책임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여기에 사회적, 제도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감 중이면서도 반성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죄의식 없는 사람은 이래서 위험하며 개선되기 어렵다. 자기 잘못을,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못 느끼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생물학적 해석이다.


반면, 책임감이 과한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에게 책임을 다 떠 넘겨, 책임 소재의 모호함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하려 든다. 욕받이 만들기다.

뻔뻔한 사람과 욕받이.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은 뇌를 쓰기 싫어한다. '인지적 구두쇠'라서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책임을 다 떠넘기는 뻔뻔함, 아무 생각 없이 비난을 뒤집어쓰는 욕받이. 생각할 여유가 없다며 '쉽게 쉽게 가자.'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도둑의 잘못 보다 도둑을 막지 못한 경찰의 잘못을 더 큰 것으로, 불을 낸 방화범보다 불을 못 끈 소방관의 잘못이 더 큰 것으로, 학폭 가해자보다 피해자 잘못이 더 큰 것으로 여기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극복하려면 '사고의 근력'을 키워, 어렵고 복잡해도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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