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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Oct 28. 2023

이과 사람에게 'I am신뢰에요~'처럼 들리는 말

아는 것 많아서 덕 본 경험

난 어려서부터 맥가이버 마니아다. 

그래서 과학과 공학을 복수 전공했으며,

소위 맥가이버칼을 두 종류 가지고 있으며,

맥가이버 시계(빅토리아 녹스 나이트 비전)도 있고,

맥가이버 가죽점퍼도 있고,

차종도 SUV를 절대 선호한다. 머리 모양 빼고 다 닮으려 했던 것 같다.


새 SUV 차를 구입하고 2년 반 정도 된 겨울, 배터리 방전으로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비상출동 서비스를 받고 충분한 시간을 운전했음에도 다시 방전이 돼서 공식 수리 센터에 배터리 교체를 위해 내 차를 입고시켰다. 내가 센터에 들어가면 접수는 카운터의 여직원이 하고, 담당 어드바이저가 배정되고, 수리는 엔지니어가 하는 방식이어서 정비에 관한 이야기는 어드바이저와만 하면 되었다. 


서류와 엔지니어의 소견을 듣고 어드바이저는, 아직 무상수리기간 중이어서 무상 교체가 가능한데, 출고 후 차에 설치된 블랙박스가 상시 전원 공급 모드로 연결되어 있다면 사용자 과실이라 무상 수리가 안되기에, 점검에 시간이 걸리므로 다음 날 결과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블랙박스는 딜러가 서비스로 설치한 것이라 내가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주차 중에도 작동하도록 상시 전원 공급 모드였을 것이고, 배터리 같은 소모품이 무상수리에 들어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기대하지 않고 다음 날 어드바이저의 전화를 받았다.


일하는 중이라 다른 일을 하면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드바이저의 상황 설명을 건성으로 듣고 있는데, 한 문장이 귀에 딱 걸렸다. 


"xx 전류값이 ooo볼트이기 때문에..." 


전류의 단위는 암페어고, 볼트는 전압의 단위다. 이것을 헷갈리기란 쉽지 않다. 과학에 흥미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치를 떠는 수준의 문과, 아니 안티 이과 사람만이 범하는 오류다. 


'I am신뢰에요~' 

라는 말은 단순이 영어가 좀 짧은 정도가 아니라 외국어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못 갖춘 것이다. 비슷한 예로 어떤 택시 기사에게 스파(spa)가 온천이란 뜻의 말이라고 알려주니, "아하, 영어로 '스'가 '온'이고, '파'가 '천'이군요."라고 했다는 그 수준.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어드바이저를 수리 센터에서 봤을 때 복장이 엔지니어 작업복이라서 정비사도 겸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 것을 단번에 알았다. 아마도 전기나 기계에 대해서 까막눈이겠다 싶어서 이 일에 급 관심이 생겨서, '네~, 네~'만 하다가 질문을 시작했다.


"전류값이 왜 볼트로 측정되죠? 어드바이저님은 배터리와 블랙박스에 대해 전혀 모르실 것 같으니, 오늘 내 차를 출고하지 않고 하루 더 줄 테니, 정비사에게 '블랙박스가 배터리의 수명을 단축시킨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라고 요구했다. 어드바이저는 움찔하면서도 알았다고 했다.


다음날 어드바이저는 그래프가 그려진 점검표 같은 것을 두어 장 보여 주면서, '사장님 차 배터리가 블랙박스에 상시 전원 공급 모드에서 기준치보다 낮은 전압에서 작동하였으므로... 어쩌고 저쩌고'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나는 블랙박스가 배터리에 나쁜 영향을 줬음을 '증명'해 달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실험군과 대조군 데이터를 비교해서 보여줘야 하지 않나. 상시 전원 공급 모드가 아닌 차의 배터리에 관한 데이터도 보여줘야 하지 않나요?" 


라고 했더니, 어드바이저는 당황해했다. 여기에 나는 한 방을 더 날렸다. 

"제조물책임법(PL법)상 이런 문제에 대해 소비자 과실을 물으려면, 제조자는 소비자에게 그 내용을 고지했어야 한다. 나에게 블랙박스의 전원 공급 상태가 무상수리 거부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고지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나에게 유상 교체를 요구할 수 있다."


여기까지 하고, 어드바이저의 항복을 받고 전액 무상 처리됐다. 어드바이저가 자백하길, 블랙박스 장착이 유행하면서 몇 년이 지나 배터리 수명 단축 문제가 발생하면서 내 차와 같은 일이 자주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배터리 무상 교체 불가 안내서에 서명을 받고 블랙박스를 설치하고 있는데, 나처럼 그 이전의 구매자는 대부분 어드바이저의 설명에 유상 교체를 받아들였단다. 내가 좀 특별한 경우고 회사가 반박할 수 없도록 해서 무상 교체를 해 주는데, 소문은 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가 이 부탁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지만, 딱히 나서고 싶지도 않았고 방법도 몰랐기에 개인적 승리로 만족했다.


이공계 지식은 물론 법지식까지 아는 것이 많아 덕을 본 경험이다. 이 맛에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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