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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Oct 10. 2023

[항저우 아시안 게임] 최고의 장면

정치 체제가 개인의 표정에 미치는 영향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선수들만 보여줄 수 있는 장면


이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이다. 

장우진(95년생) 선수는 전지희(92년생) 선수의 메달과 옷깃이 엉킨 것을 풀어준다. 그러다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나오자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던 중 경기장 내 전광판 화면에 자기들이 나오고 있으며 지금의 일로 관중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멋쩍어한다. 이 둘이 한참 주목을 받을 때, 다음 수상자로 신유빈(04년생) 선수와 임종훈(97년생) 선수의 시상이 시작된다.

아마도 신유빈 선수의 강요(?)로 볼 하트 포즈를 취하며 단상에 오른 듯 임종훈 선수는 쑥스러워하고, 신유빈 선수는 그를 격려한다. 이후 메달을 목에 걸고 하이파이브를 한 다음 앞서 있었던 옷매무새 다듬어 주기 퍼포먼스를 따라 해 본다.

그러자 다시 한번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앞선 여자 복식 시상식에서도 이번 대회 북한 선수들이 우리와 거리 두려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몸을 맞대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도 신유빈이었다.

이렇게 밝고 유쾌한 어린 선수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시아권 국가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어리고 젊은 한국인들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이것이 한류가 존재할 수 있는 원천이다. 이런 모습은 다른 아시아 국가의 (늘 주눅 들어 있고 위축된 얼굴을 한) 선수들의 부러움이면서 한국의 기성세대들에게도 뿌듯함이면서 동시에 부러움이다.

아시아에 국민 주권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는 우리가 거의 유일


아시아 국가 중에, 국민이 자신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확고하여 자기의 기쁨을 표현하는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거리낌이 없이 표현하는 국민은 우리를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 싱가포르처럼 국민이 부유한 나라도 있고, 중국과 일본처럼 국가가 강대국인 경우도 있지만, 정치 체제가 국민의 의사에 의해 정권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 나라는 드물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가 된 것은 최근 일이다. 태어나서부터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잔재를 거의 경험하지 않은 것은 신유빈(04년생)부터 일 것이다. 태릉선수촌만 해도 구타와 가혹행위가 판을 치던 시대를 상징했다. 지금의 진천선수촌이 개장한 2017년부터 과거 악습이 그나마 줄어들지 않았을까. 코치 성폭행 피해자였던 심석희가 선수들 간 불화의 가해자로 징계받은 일이 몇 년 전이다. 아마도 선후배 사이에 군기 잡기가 줄었겠지만, 완전히 없지는 않았을 것.

우리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밝기는 하지만, 신유빈만큼 밝지는 않다. 옆에 중국 선수들의 굳은 표정은 예전 우리 선수들의 표정과 다르지 않다. 현정화 선수는 현역 시절이나 지금이나,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도 완전히 마음 편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일본 선수들 표정도 굳고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축구 은메달을 딴 일본 선수들은 사과 인터뷰를 한 후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정치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

침팬지(좌), 보노보(우)
침팬지(좌), 보노보(우)

선수들 표정이 자신의 국가 정치 체제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정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권위주의 정치체제냐 아니냐. 인류와 침팬지는 600만 년 전 같은 종이었다가 갈라졌고, 200만 년 전 침팬지와 보노보가 갈라졌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서열을 중시하느냐 아니냐. 서열과 경쟁을 중시하는 침팬지의 얼굴은 엄근진(엄숙, 근엄, 진지)이고, 협력과 평화를 지향하는 보노보의 얼굴은 밝다. 정치 체제는 이렇듯 종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것이 정치다. 지금의 북한 선수들과 다를 바 없었던 우리나라 선수들이 지금처럼 밝아진 것은, 우리 정치 발전에 이바지한 분들의 업적이다.


한 사람의 인생의 결정하는데, 국가가 50~ 70%, 부모가 10~ 30%, 나머지를 개인이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6년 겨울에 '이게 나라냐'라며 부끄러워했었는데 불과 10년도 안되어 세계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 나라로 만들어준 사람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너무 빨리 퇴보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

배드민턴의 안세영(02년생) 선수의 소감도 인상적이다. 무릎 부상에도 포기하지 않고 경기에 임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옛날 선수들처럼 '국가를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 등의 말은 없다. 자기 자신의 목표 달성, 자아실현을 위했다는 말 뿐이다. 그래서 더 듣기 좋다. 수영에서도 김우민(01년생), 지유찬(02년생), 황선우(03년생) 등 어린 선수들의 약진을 보면서, 그들이 우리나라 스포츠를 밝고 유쾌하게 만들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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