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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Nov 24. 2023

[영화 리뷰] 서울의 봄

어딜 봐도 훌륭한 육각형 영화

한 줄 평


다큐 같으면서도, 배우 연기, 대사, 몰입도, 플롯, 조명, 음악... 어딜 봐도 훌륭한 육각형 영화


잘 짜인 구성이 영화적 긴장감을 살렸다.


전두환이 죽기 전에 나왔어야 할 작품이었는데, 전두환 1년 후에 나온 것이 아쉽다. <서울의 봄>에서 가장 잘된 점은, 141분을 순삭하는 긴박감 넘치는 구성이다. 역사적 시간은 1979년 12월 12일 저녁 6시부터 다음날 3시 정도까지, 대략 9시간. 이 시간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지루할 틈이 없이 꽉 차게 잘 채워 넣었다. 이해가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을 자막으로 설명한 것도 적절했다. 


하나 불만인 부분이 있다면 제목이다. '서울의 봄'은 60년 5월 전후 민주화 열망이 충만한 시기에 적절한데, 그보다 한참 전의 이야기만 담은 영화의 제목으로는 맞지 않은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다룬 이야기 다음부터 5.18로 이어지는 시기를 다루는 영화가 나온다면 거기에 '서울의 봄'이란 타이틀을 붙여야 하는데, 이 영화가 제목을 선점해 버린 것 같다.


이태신이란 이름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의 이름에, '이순신'의 이름을 섞어서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실제 인물과 비슷해야 하면 성을 그대로 쓰면서 그 인물과 비슷한 이름을 썼는데 (전두광, 노태건 등), 실제 장태완 소장이 하지 않은 일(부대 출동 등)을 해야 하는 배역이라 가운데 '태'자 하나만 가져온 것 같다. 참고로, 영화 속 전두광과 이태신 사이의 구원(오래된 원한)은, 이태신의 부하였던 전두환의 손아래 동서를 영창 보낸 일로 실제 사건이다. 김상구라는 인물로 이순자의 동생의 배우자고 하나회 일원이었다. 장태완과 전두환과 실제 악연도 흥미롭다.



전두환의 정권 찬탈 시도를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다 안다고 생각할 이야기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범죄자나 그것을 막지 못한 사람들이나 그날의 진실을 그대로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니 잘 모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 아마,



전두환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았단 말이야. 전두환의 하나회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네.



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박정희 사망 후 권력 공백을 전두환이 가져가는 것이 어쩔 수 없거나 당연했던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막지 못한 죄책감, 무능감을 덮고 싶었던 사람들의 변명이었던 것이다.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국정 책임자인 양 보고를 받고 기자 브리핑을 하는 장면

또라이 부하에게는 쩔쩔매고 원칙을 지키는 정의로운 부하에게는 함부로 하는 상관


영화를 보며 가장 답답하고 화가 날 부분이, 4성, 3성 장군들이 소장 투스타 전두광에게 놀아나는 모습을 볼 때일 것이다. 국방장관에 국무총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들이 이태신과 헌병감(김성균 배우)에게는 단호하게 명령하고 함부로 한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일을 만들지 말라.", 

"내가 말로 잘 설득해 볼 테니 넌 가만히 있어." 등


이들은 자기가 가진 결정권을 감당할 깜냥이 안 되는 겁쟁이고 비겁한 자들이다. 그래서 선을 제멋대로 넘는 또라이를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맨다. 하지만 원칙을 따르는 사람은 그들이 선을 넘지 않을 것이란 확신으로 함부로 대하고 위해를 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또라이는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선은 가로막힌다.




이런 쫄보들이 많기에 전두환이 이 말을 한다.

사람이 명령하는 것 좋아하는 것 같제? 아니다.
이 인간이라는 동물은 아인나(안있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기를 바란다니까.

전두광의 대사

이런 자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다. 그래서 광주에서 국민을 학살하고, 학생과 시민운동가를 고문하고 죽였다. 영화에서도 구경 나온 시민들의 안전을 걱정하기보다 방패막으로 쓰려고 한다. 이런 자를 리더로 모시는 자들은 공범이다.

이태신의 대사 중에서

우리나라 군대가 12.12 당시 왜 이리 못났으며, 이태신 같은 군인이 왜 드물었을까? 그것은 충성할 대상이 허접해서다. 6.25 때 북한의 침략에 속절없이 밀렸던 것도 이승만이라는 사기꾼이 대통령이고, 지휘관도 독립군을 때려잡던 일본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휘하에서 그리 용맹했던 임진왜란 초기의 조선 수군이, 원균 휘하에서 칠천량의 오합지졸이 된 것을 생각하면 된다. 박정희 수준에 맞는 국방장관 노재현과 국무총리 최규하였으니 용맹한 군인이 드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반란군에게 희생된 김오랑 소령, 정선엽 병장, 박윤관 일병을 기억해야 한다.

전두환 반란군에 맞서다 스러져간 군인 김오랑 뉴스내용©시사IN
전두환 반란군에 맞서다 스러져간 군인 김오랑 뉴스내용©시사IN

         이야기의 중심은, 전두환의 승리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을 왜 막지 못했나'이다. 

 <서울의 봄>은 악마화는 하지 않고도 분명한 선악 구도를 그렸다. 전두환의 승리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을 막지 못하고 실패한 이야기로 그렸기 때문이다. 전두광 역의 황정민에 맞서는 이태신 역의 정우성이 그 역할을 잘했다. 

당시의 못난 군인들을 탓하기 전에, 군인이 목숨 걸고 충성할 만한 국가 지도자를 잘 뽑을 생각을 해야 한다. 국민들은 87년 항쟁으로 선거권을 얻고도 노태우를 뽑았고, 아직도 전두환 추종 세력이 우리나라를 접수한 상태다. 23일에 서울에 전두환 분향소를 버젓이 세우고 기념식도 하고 있다. 이런 영화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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