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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명 Oct 25. 2024

도토리속에 도토리나무가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우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실과 진짜를 추구합니다. 거짓과 가짜를 혐오합니다. 눈부신 진보를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짓과 가짜가 가득하고 진실과 진짜는 찾기 어려운 세상인 듯 합니다. 진보야말로 환상이거나 가짜일 수도 있겠습니다.


플라톤도 진리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진리는 완전하고 불변하고 영원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계 또는 현실은 불완전하고 변화무쌍하고 일시적입니다. 그리하여 현실과 다른 세계, 이데아를 상상합니다. 이데아와 현실의 관계는? 현실은 이데아를 모방, 복사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이데아는 진짜, 현실은 가짜입니다. 존재론적 이원론의 탄생입니다. 이원론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린 쉽게 이원론에 빠져듭니다.


이상과 현실! 현실의 고통과 고단함은 이상을 꿈꾸게 합니다. 삶의 지혜일 수도 있고 역사의 원동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에 대한 맹목적 추구가 낳은 비극을 기억해야 합니다.


1994년 서태지가 꿈꿨던 <교실 이데아>가 떠오릅니다.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바꾸지 않고 남을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

18세 학생들의 수업장면입니다.


도토리 속에 뭐가 있을까? 도토리~ 개밥~ 알맹이~ 상상력을 발휘해봐. 도토리나무? 와우. 도토리 속에 도토리나무가 있다!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작은 알맹이에 불과한 도토리가 세월이 가고 잘 성장하면 수백 배, 수천 배로 자라 엄청난 도토리나무가 됩니다. 언빌리버블! (모든 도토리가 나무가 되는 건 아닙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성장이 필요합니다.) 당연한 상식인가요. 세상에는 이와 유사한 일이 가득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하나의 인간이 탄생하는 것은 어떤가요.


내겐 놀랍고 기적적인 일로 보입니다. 그 조그만 도토리 속에 도토리나무가 될 엄청난 잠재적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게 놀랍지 않나요.(도토리나무는 공식적으로는 상수리나무라고 합니다.)


“도토리 속에 도토리나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입니다. 스승인 플라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이데아가 현실과 별도의 세계라는 이데아론을 부정하고 도토리라는 현실 안에 잠재태로서 이상적인 모습을 상정합니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학당>이라는 프레스코 벽화가 있습니다.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땅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오는데 이상론과 현실론의 대비입니다.


“도토리 키재기”란 속담이 있습니다. 고만고만한 도토리들이 서로 잘났다고 비교하는 걸 말합니다. 바로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도토리라고 실망하지 마세요. 도토리 속에는 도토리나무가 있으니까요. 우린 모두 멋진 도토리나무가 될 겁니다. 시간과 고통과 인내와 희망 속에서 어느덧 불쑥 커진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나무는 서로 잘났다고 비교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세계를 자랑스럽게 지켜내고 우뚝 존재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함께 숲을 이룹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문장이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

최근 20년전에 가르쳤던 제자들과 만났습니다. 그 옛날 교실에서는 나 혼자 원맨쇼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경청의 인문학입니다. 젊은 제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들의 불안, 고통, 슬픔, 희망, 기쁨 등을 바라봅니다.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지을 뿐입니다. 할 말이라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말 힘들었겠네...” 정도 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전히 말씀이 많으시구만...‘


한 친구가 20년 전 수업 장면을 소환했습니다. “도토리 속에 도토리나무가 있다.” 그 문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자신의 아이에게도 그 문장을 가르쳤다고. 와우, 전율이 온 몸을 흐릅니다. 마치 내 인생이 구원받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 새삼 소중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인생과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누군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괜찮은 또는 엄청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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