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벗어나, Ibn Battuta가 잠들어 있는 도시로
시간 참 빠르지, 어느덧 모로코에서 산지 한 달이 되었다.
오늘 이야기는 두 파트로 나누어
그간의 일상과 여행기를.
Part 1. Mon quotidien, 나의 일상
어느덧 카사블랑카에서 산 지 한 달째.
첫날 잔뜩 쫄아있던 한국산 햇병아리는 그새 많이 컸다.
어느새 목에 카메라를 걸고, 발길 닿는 대로 동네를 걸어 다닌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과 웃음으로 인사도 나누고,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들을 만나면 즐겁게 사진도 찍어주면서.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 출출해지면,
한 손에는 *아보카도 주스, 다른 한 손에는 *스폰즈를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보카도 주스: 모로코 국민 주스. 기본으로 설탕을 섞어 갈아주시는데, 정말 맛있다.
스폰즈 (sfenj): 모로코식 도넛. 한국의 찹쌀 꽈배기 맛과 비슷하다.
참 사소한 외출.
들어보면 별 거 없는.
허나 왜인지 충만한 하루.
낯선 곳, 낯선 이들 속에서 어느새 잘 적응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내가 바라는 건 어쩌면, 부자, 성공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닌,
아주 사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지고,
그 안에서 내가 성장하는 느낌이 들 때
비로소 내 안은 무언가로 꽉 차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이름은, 행복.
가장 어두웠던 새벽이 지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면, 나는 약속해 둔 아침을 연다.
요즘은 바쁜 듯 여유로운 일상을 보낸다.
활동도 시작했고, 학원도 등록해서.
이곳에 더 잘 적응하고자, 사비로 프랑스어 수업을 결제했다.
학원에 가는 날은, 바쁜 아침.
아침 9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서둘러 준비해서 나가야 한다.
겨우 알파벳 발음 익힌 게 다지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야.
그리고 불어학원 수업이 없는 날은, 여유로운 아침.
느긋이 사색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빨간 방에서 나와, 햇살이 가득한 사색존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커피를 마신다.
오전에 단골 빵집에 들러 좋아하는 빵을 사서 집으로 걸어온다.
해가 높게 올라온다.
그렇게 오후가 되면,
수업이 있는 날이면, 수업을.
없는 날이면 카페에 가서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생각을 기록한다.
저녁에는 헬스장을 등록해서, 운동을 다닌다.
귀찮을 때에는 화끈하게 안 가기로 한다.
그때 세탁방에 가서 빨래를 맡겨두고 찾아오거나,
방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밤에는 종종 맛있는 걸 가져와 주방에 둘러앉아
룸메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새벽에는 좋아하는 노래와 영상들을 보다,
씻고 잠이 든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젠 무단횡단도 잘한다.
이제는 신호등 없는 8차선 도로도 건널 수 있게 됐으니까.
고작 한 달 지났을 뿐인데,
이 동네에서 나만의 루틴, 나만의 일상이 생겼다.
정처 없이 불안정하게 날아다니던 민들레 홀씨가,
마침내 흙 속에 안착했다.
이내 안정감을 느끼고,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한다.
내리 앉은 땅은, 아프리카 대륙의 땅.
그중에서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다시 자라나 또 다른 홀씨가 되어 날아가기 전까지,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존재.
그렇게 나는 나만의 일상이 있는
어엿한 카사블랑카 주민이 되어가고 있었다.
참,
활동 준비도 우당탕탕 잘해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어찌나 자신 없고, 압박감이 들던지.
영어도 유창하지 않고, 교육 관련된 전공을 나온 것도 아닌 내가,
현지인들이 3-40명 가득한 교실에서
외국어로 수업하며 아이들을 이끌어 나가야 하니 말이다.
그러니 첫 수업 때는 긴장과 땀으로 흠뻑 물들어,
끝나고 나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불탔던 열정도 잠시,
과연 앞으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간절한 마음으로 얻은 기회라, 또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이런 내게, 팀원들이 함께라는 게 얼마나 다행으로 다가왔는지.
그들은 모를 거다, 덕분에 내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영어와 불어를 잘하는 원서,
예산을 잘 정리해 주는 연주,
우리의 활동을 영상으로 잘 담아주는 연서 언니,
한 주마다의 레포트를 잘 정리해 주는 초승 언니까지.
-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주는 팀원들이 있어,
부족한 게 많은 팀장인 나 또한 용기 내어 계속해나갈 수 있었다.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이곳까지 온 내게는,
꼭 필요했던 발전의 시간들이었다.
덕분에, 훗날 나는 더 용기 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팀원들과 함께 회의하며
활동 구상 및 준비, 수업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적응이 되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니, 한 달이 훌쩍.
설레는 마음으로 예매해 둔 기차표의 날짜가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왔다.
Part 2. Bon Voyage, 첫 여행!
낯선 적응기를 지나 이 삶이 일상으로 다가올 때,
나는 처음으로 다른 도시로 떠났다.
도시의 이름은, 탕헤르(Tangier).
오늘을 위해 미리 역의 ONCF 창구에서 기차 예매를 해두었다.
(이날 만난 이가 바로 전편의 Costa Coffee 직원 ‘페드와’다!)
나의 티켓은
Casa Voyageurs -> Tanger vile 행.
Casa Voyageurs 역에서 TGV를 타면, 세 시간 만에 도착한다.
집에서는 인드라이브를 타고 20분 정도를 가야 하기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밖으로 나섰다.
동네를 벗어나는 게 처음이라,
전날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싸둔 캐리어와 함께 사진도 남겼다.
함께 여행을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초승 언니를 제외한 우리 넷은
첫 여행지가 모두 탕헤르였다.
그래서 여행은 각자 하고,
숙소만 함께 쓰기로 하고서 함께 출발.
카사 보야져 역에 도착했다.
시간이 되니 우리가 탈 TGV 열차가 들어왔다.
*TGV는 우리나라의 KTX와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모로코에 온 이후 처음 타 보는 기차.
마라케시에서 카사블랑카로 오던 첫날 본 돌산들의 행연을 지나,
팀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종착역인 탠지어 빌에 도착했다.
날씨가 화창하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날은 흐렸다.
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언덕 위의 집들이,
마치 오스트리아의 ‘Salzburg Hbf’를 연상케 했다.
모로코는 도시마다 건물 색과 택시 색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역 밖으로 나가기 전부터 흥미로웠다.
이 도시의 택시 색은 과연 무슨 색일까!
역시나 나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로컬 택시들.
탕헤르의 택시 색은, 청록색!
유니크했다.
기대를 많이 하고 온 도시라서 그런지,
콩깍지가 단단히 씌여 이 택시 색도 더 매력 있어 보였다.
모로코의 가장 북부 도시로 오니,
괜히 ‘사람들도 다른 느낌일까?’ 쳐다보게 되고.
카사블랑카와 비슷한 느낌이 어느 정도 있었던 라바트와는 달리,
확연히 다른 도시에 왔다는 느낌을 주던 탕헤르.
기차에서 점심 메뉴를 정하고 왔기에,
숙소에 짐만 풀고 바로 식당으로 갔다.
구글 맵 정보와는 달리 아직 열지 않았다며,
1시간 뒤에 오라고 했다.
그래서 시간을 때울 겸 근처를 구경하게 된 우리들.
카메라를 들고 나온 나는,
우선 이 틈에 이 도시를 담고자 큰길로 나왔다.
탕헤르가 내게 준 첫인상은 우선 너무나도 이국적이었다.
아프리카보다는 확연히 유럽 느낌에 가까웠다.
가보지 않았지만, 뭐랄까.
스페인의 한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이 났다.
저 멀리 보이는 탁 트인 바다를 본 순간, 애타기 시작했다.
빨리 밥을 먹고, 얼른 이 도시를 두 눈에 꽉꽉 담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바다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꽤 있었기에
대신 큰 길가의 상점들을 구경했다.
여러 가게의 그릇과 각종 기념품들을 구경한 뒤,
아까 식당으로 오는 길에 본 분위기 있는 서점에 가보기로 했다.
‘모로코의 서점은 어떨까?’
나라만 바뀌었을 뿐인데,
아이처럼 나는 이곳의 모든 게 다 궁금하고 설렌다.
외관부터 매력적인 빨간 서점.
내부 또한 멋스러웠는데, 알맹이인 책들 또한 역시 감각적이었다.
어느 하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던 이곳의 모든 것들.
특히 내 이목을 끄는 것은, 사진집과 그림 산문집들.
마음에 드는 책들이 한 두 권이 아니었다.
책을 뒤집어 가격을 보니, 모로코의 책 값은 내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한국의 웬만한 책들보다 비쌌으니까.
시선을 끄는 책들은 많았지만, 예산은 여유롭지 못해서 딱 한 권만 사기로 했다.
그중에 내가 고른 책은 얇은 그림 산문집.
각각의 꽃 그림과 함께 불어로 간단한 설명이 들어있다
기분 좋은 소비를 마치니,
식당 문 열 시간이 되어 곧장 가게로 향했다.
처음으로 아프리카식을 먹었다.
특히 첫 번째 사진 속 메인 메뉴는 황새치로 만든 요리로,
우리 모두 처음 먹어보는 생선 종류였다.
양도 많고, 전반적으로 향신료가 세지 않아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만족스럽게 가게를 나왔다.
몇 시까지 숙소에서 보자는 약속을 하고 각자의 여정을 시작했다.
든든히 배도 채웠겠다,
자, 이제 떠나볼까?
여유가 가득 느껴지는 도시.
세 시간을 달려 다른 도시에 내렸을 뿐인데,
다시 모든 게 새롭다.
아름다운 이 도시의 전경을 눈에 가득 담으며,
탕헤르 중심지인 소코 광장으로 향했다.
소코 광장에 위치한 한 카페에 들러 모히또를 마셨다.
기대를 하나도 안 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훗날 탕헤르에 올 때마다 마셨다고 한다.
모히또를 마시며, 아까 서점에서 산 꽃 산문집도 펼쳐 훑어보았다.
글자는 알아볼 수 없지만 괜찮다.
그림체가 너무나도 내 취향이거든!
지금까지의 모든 일정이 마음에 쏙 든다.
또 이 도시는 너무 여유롭고 아름답다.
카사블랑카보다도 확연히 깨끗하다.
무성한 녹색 빛 잔디들과 탁 트인 푸른 바다.
자연이 풍성하고도 조화롭다.
어떻게 모로코에서 이런 완벽한 도시가 있을까,
탕헤르가 너무 좋다!
그래서 즉흥으로 남긴 메모.
카페에서 나오면 정면으로 보이는 메디나 입구.
모로코 도시 어디를 가나, 메디나를 둘러보는 것은 관광객들에게는 필수코스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내 취향의 것들.
광장을 지나, 시끌벅적한 메디나를 뒤로 하고 다른 곳으로 향한다.
여유로운 것들에 눈을 맞추며 오르막길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바로
그 길 끝에는, 내가 이 도시에 온 이유,
이븐 바투타가 있다.
*‘이븐 바투타‘: 모로코 태생이며, 아라비아의 탐험가이자, 모험가.
아프리카 아라비아 인도를 거쳐 중국까지, 12만 km에 달하는 거리를 여행하며,
’Rihlah 여행기‘를 남겼다.
여담으로, 탕헤르 공항 이름도, 여기서 본따 ‘이븐 바투타 공항’이다.
또한 두바이에 ‘이븐 바투타 몰’이 있는데, 역시 이 모험가의 이름을 따 만든 몰이다.
이븐 바투타 박물관과 묘를 구경했다.
묘는 박물관과 떨어져 있는데
메디나로 들어가서, 조금 복잡한 골목을 지나고 나면 나온다.
늘 다른 세상을 궁금해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이븐 바투타는 멋지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 발자취에 가까워질수록 두근거렸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크게 없겠지만,
이븐 바투타의 기운을 느끼는 것.
겁먹지 않고, 더 모험할 용기를 얻는 것.
그거면 됐다.
내가 이 도시를 첫 여행지로 정한 이유였다.
오른쪽 문이 바로 이븐 바투타의 묘가 있는 곳.
안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골목 자체 또한 예뻐 사진을 찍고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온 날, 이븐 바투타의 무덤이 있는 문이 열린 것이다.
맙소사!
후손이 지인과 함께 방문했는데, 마침 그때 내가 구경을 온 것이다.
이 상황이 너무 신기한 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들을 지켜봤다.
그랬더니 친절하게도 우리도 들어와서 구경해도 된다고 하셨다.
정말 감사했다.
우리는 감사인사를 여러 번 한 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묘를 마주했고,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운이 너무나도 좋았다.
나의 여행의 목적을 뛰어넘어버린 오늘.
발자취를 넘어, 잠든 그를 마주했다.
덕분에, 특별한 경험과 더불어
기운을 제대로 받고 나왔다.
성공적으로 미션을 완수하고,
그제서야 탕헤르 메디나를 이곳저곳 둘러봤다.
매력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내일 다시 와서 제대로 봐야지.
메디나를 벗어나니, 빛이 오후의 막바지에 왔음을 알려준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대의 밝기와 따스한 그림자.
연주는 헤나를 하러 가겠다고 해서,
나는 공원에 잠시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 속, ‘국가’로 나누어진 공간.
그 문화에 따라, 고유의 결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다른 문화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들의 역사를 궁금하게 하고,
지나온 세월을 마음껏 상상하게 한다.
‘내가 이 국가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가정하게도 만들고.
참 신비롭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연주가 왔다.
저녁에는 탕헤르의 바다 쪽으로 가서 노을을 보기로 했는데,
연주가 저장해 둔 명소가 근처에 있어
그곳으로 함께 가기로 했다.
원래 나의 계획에는 없던 곳이었지만,
노을을 보기에는 오히려 그곳이 더 예쁠 것 같았다.
그렇게 정확히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연주와 함께 걸어갔다.
그리고 그 절벽 위에 도착한 순간,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혹은 ‘페니키아인들의 무덤’이라고도 불리는 이곳.
다행히도 이븐 바투타 묘와 명소가 멀지 않아서,
노을이 지기 전에 여유롭게 도착했다.
꽤 많은 이들이 이미 앉아 있었고,
우리처럼 이곳에서 노을을 보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이들처럼,
우리도 이 절벽 바위에 자리를 잡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이 명소의 경치를 모르고 갔기에,
그냥 저 너머 수평선의 바다가 있겠거니-
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마주한 순간,
충격적이고도 강렬한 감정이 머리와 심장을 각각 때렸다.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모두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즉각적으로 일어난 반응이었다.
그냥…. 벅찼다.
절벽 아래의 경치를 처음 본 소감은,
‘황홀했다.’
내 인생에서 본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순위를 매기기도 전에 직관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으로 간 탕헤르,
그리고 이 절벽 위에서 나는 왜 눈물이 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나를 위해 용기 낸 선택이 나를 더 큰 세상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 이렇게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음에
나 자신에게 고맙고, 이 세상에 감사했던 것 같다.
또, 더욱더 후회 없이 이곳에서 시간을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린 결정과, 그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 준 세상에게
또 한 번 강렬하게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게, 이 절경과 만나 황홀함이 벅차올라
눈물이 난 듯했다.
내가 지금까지 마주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은
수 없이 많았지만,
오늘 이 풍경이 그 모든 순간들을 이겼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못 가본 다른 세상에는
또 얼마나 더나를 벅차게 만들 것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더 많은 곳들을 느끼고, 보고 싶어졌다.
이 감정을 잊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모로코를 떠나기 전,
나는 나를 더 선명하게 만든 이 도시에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한 번뿐인 삶.
나의 도화지를 더 다채롭게 만들고 싶다.
조급함에 사로잡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지금의 이 감정, 이 용기가 부디 꺼지지 않기를.
시간이 좀 더 흐르니,
바다 위에 붉은 선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덤에 앉아, 노을의 시작을 함께 바라보았다.
근처에는 노을 명소로 아주 유명한 카페가 있었는데,
카페 이름은 ‘Cafe Hafa.’
민트티 또한 아주 달달하고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다.
우리는 남은 노을을 이곳에서 보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를 돌아 걸어 나오는데,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우리와 똑같이 이곳의 전경을 보러 온 연서 언니를 마주친 것이다.
카페에 간다고 하니 함께 가자는 언니.
그렇게 우리는 셋이서 노을을 보러 Cafe Hafa로 향했다.
이렇게 다 노을을 볼 수 있도록 야외석으로 되어있는데,
인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만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기다린 끝에 플라스틱 의자 3개를 받았고,
빈 공간으로 가서 자리를 만들어 앉았다.
민트티가 너무 달달하고 맛있어서, 나 혼자 두 잔을 시켜 마셨다.
시선은 아름답게 지는 노을을 향한 채 연주와, 연서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갈 수 없는 저 눈앞의 스페인에, 언젠가는 가보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수평선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졌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이곳을 떠났다.
우리도 이제 숙소 근처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깜깜한 밤이 되고, 다시 무덤 쪽으로 나온 우리들.
다시 한번 아까 나를 울렸던 전경을 바라보고, 숙소로 갈 택시를 잡으러 나가는 길.
그때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 너머의 잔디 쪽에서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계셨는데,
그것을 기념품으로 파는 듯했다.
궁금했던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바로 아라빅 캘리그래피를 해주시는 예술가셨다!
바로 이거다.
특별해진 도시에서 내 이름을 새겨갈 수 있다니,
최고의 기념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얼른 부탁드렸다.
가장 친한 친구도 미술을 전공했던 터라,
그 친구의 이름도 함께 부탁드렸다.
아주 멋스럽게 새겨주신 나의 이름.
이 역시 마음에 쏙 들었다.
입가에 미소를 잔뜩 띄운 채,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흠잡을 것 없는 하루.
어느 하나 나를 실망시키는 순간이 없었다.
심지어 다음날에는, 혼자 여행을 하다 만난
모로칸 친구들 덕에 또 잊지 못할 추억을 가득 만들었지.
한 달에 한 번씩 탕헤르에 갔었는데,
갈 때마다 나는 특별한 추억을 가득 안고 돌아왔다.
이런데 내가 어떻게 이 도시를 안 좋아할 수 있을까!
이 에피소드는 그중에서도 고작 첫날의 이야기.
나는 그렇게 첫날부터 쭉,
탕헤르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추후 에피소드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