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허물었더니, 사랑이 밀려오네

by 이 율






고진감래의 카사블랑카,

쓴 하루 끝에 단 맛이 따라오는 이 나라.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내게 쓴 건 이곳의 환경이요, 단 건 이곳의 사람이었다.



누가 내게 모로코는 어떤 맛이었냐고 묻는다면,

지금의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토마토 바질 에이드’ 같다고.



메뉴가 꽤나 생소하지만,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음료는 호불호가 꽤 심하다는 것을.

하지만 나처럼 ‘호’인 사람에겐 극호라는 것을.



한 입을 마셔보면,

처음엔 ‘이게 무슨 맛이야, 좀 것 같은데.’ 싶다.

하지만 이내 넘길 때쯤 되면 묘하게 달고, 맛있다.


첫맛은 잊고, 어느덧 자꾸 마시게 된다.



그래서 다음에 다른 곳에서 이 메뉴가 보이면,

괜히 눈이 가는 그런 맛이다.




나에게는 모로코가 그런 맛이다.







아까부터 무슨 말이냐고?





한 마디로,

나는 결국 모로코에 빠졌다는 소리다.



내게 평온을 알려준 도시, Casablanca.





겁도 없이


마라케시에서 카사블랑카로 넘어오기 딱 하루 전이었다.



때는 하루 일정이 끝나고,

모로칸 드라이버가 순서대로 우리를

각자의 숙소로 내려주던 저녁 즈음이었다.



마지막 차례로 내리게 된 우리는,

자연스럽게 드라이버와 말을 나누게 됐다.




그는 이 도시에서 자고 나란 마라케시 태생이었는데,

아시안 보기가 드문 만큼 궁금한 게 많은듯했다.


우리 시선의 모로코는 어땠는지,

또 마라케시는 어땠는지 등을 물어봤다.


그래서 우리는 며칠간 각자가 보고 느낀 모로코와,

마라케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이어지는 스몰토크.



“~ 그래서 우리는 내일 카사블랑카에 갈 예정이야.”



“오~ 카사블랑카! 여행으로?”



“아니, 살러! 4개월 동안.”


-

여행이 아닌 살러간다고 하니까

진지하게 바뀌는 그의 표정.


드라이버는, 카사블랑카로 간다는 말을 듣고서는

당부에 당부를 하며 우리를 걱정해 주었다.



“너희 조심해. 카사블랑카는 살기에 안전하지 않아.

그곳은 위험해.”



의외였다.

현지인이 이렇게 바로 위험하다고 말하다니.

충격과 동시에 바로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설명.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에서 가장 크고, 바쁜 도시야.

그래서 사람들도 여유가 없고,

차들은 많아서 정신이 없어.

그래서 길을 건널 때도 더 조심해야 하고,

소매치기도 빈번해.

마라케시처럼 밤에 돌아다니기도 안전하지 않아. “




답을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는지,

나는 반문했다.



“그러면 카사블랑카랑 마라케시 중에

어디가 더 살기 좋아?”



“당연히, 마라케시.

카사블랑카에 가면 너희 여기서처럼

휴대폰 만지면 안 돼.

그럼 훔쳐 가. 그러니 늘 경계하고, 조심해.”



역시나.



“응.. 알았어. 데려다줘서 고마워. 안녕.”



“Good Luck, 안녕.”



-

인사를 나누고, 차에서 내린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자려고 누운 내 마음속에 들리는 메아리.



‘당연히 마라케시.’

‘당연히 마라케시.’

‘당연히 마라케시.’




답을 알고도 물은 질문이지만,

0.1초 만에 튀어나오는 확신의 대답에

나는 겁이 났고, 후회가 됐다.




‘내가 겁이 없었나?

내가 잘못 선택한 걸까?


선선한 날씨와 바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는 카사블랑카를 선택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안전을 간과했구나.

현지인 마저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는 도시라면,

정말 경계해야겠다. 늘 긴장해야겠어.‘





설렘 만이 가득 차 있던 내게

그제서야 경계심과 긴장감이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내일이면 나는 그곳으로 가겠지.



한 켠의 긴장과 한 켠의 설렘.

부풀어가는 이 마음들을 안고, 나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녹이고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고,

나는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하얀 도시 속, 나의 빨간 방에 말이다.



각자의 짐을 방에 밀어 넣은 우리는,

곧바로 *르샤르지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르샤르지 : 통화 및 데이터 충전. 다양한 옵션이 있다.

하눝(동네 슈퍼마켓)에서도 통신사 간판이 보이면 들어가서 충전을 할 수 있다.



굳이 이걸 가장 먼저 하러 나온 이유는,

연주가 데이터 충전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어가 잘 되지 않고,

우리는 아랍어와 불어가 잘 되지 않고.

더군다나 지금 우리는 집 위치도 파악을 못했으니,

번역기와 구글맵을 위해서

데이터는 곧 우리의 생명수단인 셈이다.



그러니 국제 고아가 되지 않으려면,

꼭 충분히 데이터 충전을 해 두어야 한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집 밖을 나온

햇병아리 삼총사.



영문을 알 수 없게도,

집 근처 하눝은 낮임에도 대부분 닫혀 있었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휴일 같은 느낌이었다.

*이슬람은 금, 토가 주말이다.



‘카사블랑카는 분명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한산한 걸까?’


의문이었다.



검색창에 뭐라고 쳐야 하는지도 모르는 우리는,

큰 길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골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하눝이 있는지를 체크했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확 인적이 드물어졌다.

도로는 차 한 대 다니지 않고,

인도에는 노숙자로 보이는 몇몇의 누워있는 사람들과

우리들 뿐.




전 날 드라이버가 주의에 주의를 주었기에,

몸에는 긴장이 가득했고, 그들을 경계했다.



우리는 최대한 그들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머지않아 저 멀리 열려 있는 듯한 하눝이 보였고,

반가웠다.



동시에 걱정도 됐다.



마음속의 편견 스위치가 켜졌기 때문이다.


모로코를 검색하면 보였던 키워드들.

‘흥정과 사기의 민족’

‘쉽게 믿지 마라.’



‘혹시 사기 치는 거 아니야?’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필 이럴 때 생각이 나다니.




그렇게, 모로코 초짜인 나는,

마음속에 경계태세를 갖추어 하눝으로 들어갔다.





“살라무 알라이쿰.”

“왓 알라이쿰 살람.”


인사는 잘 나눴고,

이제 그들을 놀래켜 볼 차례.



“레베스?”

“레베스, 운티?”

“레베스, 함두릴라.”

“함두릴라.”



보통 여행자들은 인사에서 그치기 때문에,

모로코식 안부 인사를 곁들이니 역시나 놀라워한다.



활짝 웃어 보이며 나오는 질문.


“오, 유 스픽 데리자?”

*데리자: 모로코식 아랍어


“슈이야, 슈이야.”

*슈이야: 조금



모두 현지어 교육 때 배운 아랍어로 나눈 대화.

그들의 언어로 짧은 몇 마디를 나누자,

하눝 안 모로칸들의 관심이 우리에게 집중됐다.


그 눈길을 따라가 보니, 참 선하다.

모두 우리를 환영하고, 흐뭇하게 본다.



아마 그들의 문화와 방식을 존중하는

우리가 신기하면서도, 예뻐 보였나 보다.



특히나 하눝 주인은 아빠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이때 알게 됐지.


현지인에게서 ‘우러나오는’ 미소는

이방인의 경계를 허무는 데 직방인 것을.



점점 굳게 먹은 마음속이

흐물흐물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웃음을 가득 띈 채,

통하지도 않는 대화를 손짓 발짓 붙여가며

몇 마디 더 이어나갔다.




“어떻게 충전해 줄까?” 묻는 말에,

우리는 르샤르지의 옵션 중 데이터‘만’

충전하러 왔다고 말했다.



“얼마나?”라고 묻는 말에는,

세 명 다 50 디르함 씩 충전하겠다고 했다.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오고,

그는 능숙하게 몇 차례 과정을 반복하더니

속전속결로 우리 셋의 르샤르지를 다 해주었다.



‘뭐야, 끝난 거야?’



나의 걱정과 다르게,

너무 수월하게 끝나버린 르샤르지.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녹아버린 내 마음.






그 마음이 더 달아요


고맙다고 말을 하고 이만 나가보려는데,

그런 우리를 부르는 하눝의 주인아저씨.



뒤돌아보니 냉장고로 향해 무언가를 꺼낸다.



그러더니 상자 뚜껑을 열어 우리 앞으로 내민다.


date라고 불리우는 ‘대추 야자’. 중동인 서남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사막 지역에서 흔하게 재배되는 식물이다



“이건 대추야자야.

맛있어, 먹어봐.”



모로코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하나씩 먹어보라고 권한다.



울컥했다.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편견에 사로잡혀 마음대로 판단하려고 했던 것이 미안하고,

조건 없이 환영해 주는 그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동시에 감사하고, 다행이었다.



쓸데없이 너무 경직되어 이 도시를 살아갈 뻔한 나를

일찍 무장해제 시켜줘서 감사했고,


어쩌면 내 직감처럼 카사블랑카는

나와 잘 맞을 수 있겠다 싶어서 다행이었다.



.. 정말 이건 예상 못했는데.



다른 아이들 모르게 눈물을 참고,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과 함께 가게에서 나왔다.




그리고 집까지 걸어가며 생각했다.




‘그래, 역시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야.


그러니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나는 내가 느끼는 대로 모로코를 기억해 보는 거야.


그들이 겪은 건 과거고, 나는 이곳의 현재에 있잖아.


모로코의 지금을 살고 있는 건 나니까.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너무 겁먹지 말자.


내 직감을 믿자. 이건 내 세상이잖아.‘



그렇게 첫날 들린 하눝 덕분에 나는,

운 좋게도 첫날부터 색안경을 벗었다.


깔끔한 시야로 이곳을 살아나가겠다고.

나 자신과 다짐했다.


지내는 동안, 이곳의 문화를 존중하며 적응해 보자고,

또한 그들을 진심으로 대해보자고.

두려워 말고, 조금만 더 용기 내어 보자고.

나의 도전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보자고.



그렇게 나 자신과 약속했다.






9/5, 내 앞에서 목격한 다정함의 기록.


다짐과 무섭게,

하루하루 내 앞으로 쏟아지는 그들의 호의와 사랑들.

우리나라와는 달리 ‘환대 문화’가 있어서인지 더 체감이 크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 중

초반에 겪은 에피소드 3개 정도를 말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일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

모로코의 택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우선 모로코에서는 두 종류의 택시가 있다.

1) 로컬 택시와,

2) 인드라이브 택시.


인드라이브는 다른 국가에서도 즐겨 이용되는 택시이다.


허나 모로코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드라이브가 불법이라, 로컬 택시들이 이를 감시한다.


인드라이버들도 로컬 택시를 피해,

경찰들을 피해서만 우리를 태운다.

더군다나, 우리는 동양인이기 때문에 훨씬 눈에 띈다.


이러한 흐름 때문에 우리는 인드라이브를 잡기가

쉽지 않은 구조이다.


운 좋게 수락했더라도, 도착한 픽업지에

동양인인 우리가 서 있으면

취소하고 달아나 버리는 일도 꽤 잦으니 말 다 했지.


따라서, 인파가 많은 모로코몰 같은 곳에서,

그것도 외국인이 인드라이브를 잡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왜 우리가 인드라이브를 타냐고 묻는다면,

-> 대부분의 로컬 택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기 때문에.



특히 관광지에 정차해서 우리를 보며

“택시? 택시?”를 연신 소리치는 이들은 100%다.


그 택시에 타게 되면 미터기도 키지 않고,

그들은 시세보다도 가격을 훨씬 올려 불러

큰 이윤을 챙긴다.

때문에 편의와 안전 측면에서

본부에서는 인드라이브 사용을 권고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인드라이브를 주로 타고 다녔는데,

앞서 말했듯 모로코 몰은 관광지이기 때문에

정차되어 있는 로컬 택시들이 가득하다.


집에서 이곳으로 올 때는 비교적 쉬웠으나,

집으로 돌아갈 때는 인드라이브 호출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사정인 것이다.

(다른 도시에 비해 특히 카사블랑카가 이런 문제가 심하다.)


*-이상-*



Ep 1. 모로코 몰에서 우리를 구해준 행운의 Zak



이러한 배경으로,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우리는 인드라이브를 잡아

집 앞에서 모로코 몰로 향하는 길이었다.



인드라이버 이름은 Zak이었는데,

그는 우리의 고충을 알아주었다.

집에 갈 때 혹시 호출이 힘들면 언제든지 전화하라며,

그럼 달려와 주겠다며 연락처도 주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적응 초창기였던 터라

이러한 호의가 고맙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워 다른 기사를 불러보려고 노력했다.



만약 Zak을 부른다고 해도,

우리 때문에 로컬 기사들에게 정체가 들키면

선의로 도와준 그가 되려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




아니나 다를까,

장을 보고 카트를 두 개나 끈 우리는 눈에 띄었고,

겨우 부른 인드라이버도 우리를 보더니

쌩하고 가버리는 등 쉽지가 않았다.



우리는 카트를 끌고 끝에서 끝까지

열심히 인드라이브를 호출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본 몰의 경비원 세 명과

지나가던 행인 네 명, 총 일곱 명의 현지인이

방황하고 있는 우리를 도와주려고 다가와주었다.


사정을 들은 그들은 인드라이브가 불법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고서 택시 타는 것을 권유했다.

그 과정에서 사기를 치려고 다가오는

택시 기사 아저씨로부터 우리를 구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막상 타게 되면 우리는 당신들과 같은 요금으로

갈 수는 없다는 것을.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탔을 만도 한데,

이때의 우리는 꽤나 사기당하지 않는 것에 진심이었다.-



피할수록 되려 더 눈에 띄자, 더 많은 로컬 기사들이

호시탐탐 우리를 지켜봤다.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치고, 방법이 없던 우리는

방향을 틀어 출구 쪽 대로변이 아닌 주차장으로 향했다.


미안한 마음을 안고 Zak에게 연락했고,

고맙게도 그는 우리의 연락을 받아 주었다.



원서가 불어로 사정을 말하자

빨리 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한 20분이 지났을까,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가 있는 주차장까지 와준 Zak.



집 앞에 도착해서도 무거운 짐들을

다 1층 로비까지 내려주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또 연락하라고 말해주었다.



심지어 그는 돈을 지불하려는 우리에게

요금도 받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서로를 위하는 실랑이 끝에,

우리는 손에 팁을 포함한 요금을 쥐어주고서

집으로 뛰어가버렸다.



그를 만나 참 행운이었던 날.




어디에나 다정한 사람들은 있다.






Ep 2. 스타벅스 직원과 스몰토크를 하며 배운 것들



처음으로 분위기 좋은 스타벅스 매장에 ’ 혼자‘ 갔던 날.


매장 안에는 사람이 비교적 없어 여유로웠고,

음료를 받으러 픽업대에 갔다가 시작된

스타벅스 직원과의 스몰 토크.



그는 24살이고,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바리스타 직원이었다.



한국의 패션이 멋진 것을 안다면서.

일하면서 코리안을 볼 기회가 크게 없는데,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갑고 흥미롭다고 했다.




나 또한 흥미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스타벅스 직원에게 음료를 받다 말고

이렇게 스몰토크를 하는 것 자체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는 역시나 많은 현지인들이

주로 궁금해하는 것들을 내게 물어보았다.



‘어디에서 왔냐, 어떻게 이곳에 왔냐,

모로코는 어떠냐, 카사블랑카는 어떠냐.‘ 같은 것들.



어설프게 배운 데리자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또 흐뭇하게 웃어준다.



그리고서 나는 그동안 내가 보고 느낀 이곳을

그에게 또 그대로 말해주었다.



여행도 가보았냐고 물어봐서,

아직은 못 가봤는데 곧 갈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언제까지 카사블랑카에 있냐고 해서

여기에서 살고 있다고 하니까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모로코에 아름다운 곳들이 참 많다며

신나서 구글맵을 켜고 이곳저곳을 내게 추천해 주었다.




마지막 하나의 도시를 설명해 주면서는

다음에 같이 덧붙였다.



“그런데 이 도시 사람들은 좀 위험해.

그래서 많이 조심해야 할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대답했다.

“마라케시에서도 똑같았어.

현지인이 카사블랑카를 그렇게 말했어.

근데 내가 겪은 카사블랑카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어.

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나는 나쁜 사람들 걱정은 크게 안 해.

그 도시 사람들도 괜찮을 것 같아. “




내 말을 차분히 듣더니 그가 해주는 말들.



“음, 물론 모로코 사람들 대부분 착하고 좋은 건 맞아.

그런데 어디에나 좋은 사람들도 있고,

나쁜 사람들도 있어.

너의 나라인 한국도 똑같을 거야. 그렇지?


그리고 그건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어.

네가 지금까지 모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면,

분명 그건 네가 좋은 사람이라서야.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일 수 있어.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들도 모두 알아.

네가 그 사람들을 존중하고,

진심을 다한 게 그들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에

그들도 너에게 더 호의를 베푸는 거야.

그래서 너는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고 느끼는 거고.


내가 봐도 너는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쁜 사람들은 있으니까

조심해야 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



머리가 띵했다.

또 하나를 배운 날이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상대를 대하면,

상대도 내게는 좋은 사람이 되어 온다.


그리고,


또한, 이와 별개로


저 사람은 ‘나한테’ 왜 그러지? 가 아닌

그냥 마음이 통하지 않는 나쁜 사람들 또한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상처받아가며 그들을 애써 이해하려 하지 말 것.



그래.

조언은 무조건 받아들여서도,

무조건 무시해서도 안 된다.

딱 그 적절한 기준은 내가 세워야 한다.




24살 청년의 진심 어린 걱정 끝에서,

비로소

그 ‘정도’가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Ep 3) 카사블랑카 카페에서는 왜들 그리 다 내어주시나요?




심지어 카페를 갔을 때에도.

마음을 넘어, 디저트 선물을 받았다.



한 번은 집 근처 카페에 룸메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간 적이 있었다.



원래는 테이크아웃을 해서 나가려고 앉아서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커피를 주시면서 함께 먹으라고 빵도 같이 주시는 거다.

‘서비스’라면서.


그 이면에는 환영이 가득 들어있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 후 지나갈 때마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곤 했다.





또 다른 추억은,

카사 보야져 역의 커피 가게에서였다.

‘Costa Coffee’ 라는 유명한 체인점 커피 집이었다.



당시 탕헤르 여행 티켓을 구매하러 카사 보야져 역에 들렀고,

코스타 커피에서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자리 주변을 청소해 주던 점원과 눈이 마주쳐 이야기를 하게 됐다.



K-drama를 매우 좋아하는 페드와.



한국을 너무 좋아하는 여성 직원이었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좋아해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경청하고, 열심히 대화에 참여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K-Culture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대뜸 좋아하는 디저트가 있냐고 물어봤다.




당시 연서 언니와 함께 있었는데,

괜찮다고 확실히 두어 번 거절했음에도 본인도 괜찮다며

우리에게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르지 않으면 본인이 랜덤으로 케이크를 주겠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맛으로 부탁한다고 하니, 두 개나 선물해 준 케이크.


그녀의 이름은 페드와.

케이크를 먹고 정말 맛있었다고 다시 감사인사를 하고,

떠나기 전에는 함께 기념 사진도 찍었다.



분명 그들의 형편이 넉넉해서 베풀어준 것은 아닐 텐데,

조건 없는 그들의 호의에 감동받고,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받은 만큼, 나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도 생각했고.

나중에 한국에서 모로칸들을 본다면, 정말 잘해주리라 다짐했다.



이렇듯, 예상치 못하게 행복을 안겨준

그들 덕분에 나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을 얻었다.





이렇듯 그들 덕에 하루하루 좋은 추억을 쌓고,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느껴지니

시간이 지나가는 게 벌써부터 아쉬웠다.

온 지 고작 열흘 밖에 안 됐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카사블랑카에서의 생활은 내게

참 소중하고 행복한 나날들로 다가왔다.


용기 내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일을 감사했다.



낯설고 불편한 환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더 큰 세상을 마주한

우물 안 개구리의 행복한 각성이었다.




동시에 어쩌면 이곳의 환경이,

내가 원하던 환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쾌적한 한국과 비교하면

확실히 인프라, 위생이 비교적 열악한 모로코.

또한 바퀴벌레를 그렇게 싫어하는 내가,

그걸 다 감수할 각오로

여기서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니.




도대체,

이곳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걸까?






나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 알게 됐다.




그건 사실 내가 너무나도 바라오던 것임을.




깨닫고 난 후,

그곳의 나는 자기 전 자주 생각하곤 했지.





아, 이렇게 오늘도-





경계를 허물었더니,

‘사랑’이 밀려오네.





*추후 에피소드에서 계속.





*epilogue



몇몇의 한국인들은 모로코에 와서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을 볼 때면

마치 한국의 80년대가 떠오른다고들 한다.



그 시절을 나는 모르지만,

이런 감정을 들게 한다면

환경은 힘들어도 참 좋은 시절이었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가본 적이 없지만,


감히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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