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잊어, 이곳에선 룰은 없는 거야

by 이 율





체념을 하면 이후는 빠르다.



다행히도 나의 장점 중 하나는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언제 빨간 방에서 살아보겠어,

잘 꾸미면 감각적일 수 있잖아?’


‘그리고 모로코 국기도 빨간색인데,

모로코스럽고 좋지 뭐.’

라는 마인드로.




그렇게 빨간 방에 적응을 하기로 내 자신과 합의했고,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 이케아에 갔다.




아늑함을 조성해 보고자 스탠드 무드등과,

작업할 때 쓸 미니 테이블을 샀다.

직접 조립하고, 침대 구조도 바꾸고,

거실에 안 쓰는 미니 소파도 방으로 가져왔다.




전 날 대사관 일정을 다녀오면서 얻은 잡지도 있어,

이리저리 인테리어 해보면서 방을 꾸며나갔다.




방치하는 것이 아닌,

내 손으로 더 나은 공간을 만들어가고자

하나하나 진심으로 만져대니 애정이 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 방은 내게 무서운 존재가 아닌,

비로소 ‘나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노래를 들으며 몇 시간 손댔을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무서운 느낌은 사라지고, 어딘가 외국스러운 방 느낌이 물씬 났다.




세탁실의 어두컴컴한 분위기도 바꿔보려고, 창문에도 잡지를 붙여주었다.


미니 소파 위에도, 옷장 위에도 잡지를 붙여주었다.


잡지 속 이미지들이 다 내게 친숙한 것들이라 그 점도 한몫 했다.

한국 잡지였기 때문에, 한국과 관련되어 있거나, 혹은 흥미 있어하는 주제들을 붙여두었으니.

더 눈길이 가고, 예뻐 보였다.


그렇게 이곳에서의 적응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방에 온 지 열흘 만에,

나는 비로소 이 공간에 마음을 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로버트 엘리엇의 말처럼.


역시 모든 건, 마음 먹기 나름이다.





다만, 세탁실의 비둘기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연락해 조치를 취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프랑스에 있는 젊은 우리의 집주인은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친절하게 알겠고 말하며, 곧 집으로 사람이 올 거라고 했다.




다음 날, 바로 수리공 아저씨가 오셨다.

드디어 커튼을 달아주려나 보다 하고 문을 열었는데, 아니었다.




원서 방의 커튼 봉을 수리하러 온 것이었다.




‘분명 세탁실 비둘기 건으로 연락을 드렸는데,

왜 저것부터 수리를 하러 오셨을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기다렸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다시 누군가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이번에는 세탁실 건으로 온 수리공인 것 같았다!

문을 열고, 인사를 나누었다.

아저씨의 비닐 가방들에는 공구와 커튼이 있었다.



한 30분 즈음 지났나,


다 되었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세탁실로 갔다.


*추측컨대 방충망은

최소한 모로코의 가정집에서는 상용화되지 않는 것 같았다.




커튼을 달아주겠다고 하셨는데,

창문에 그냥 얇은 천을 덧대어 놓으신 거다.

정말 비둘기만 못 들어올 수 있게끔.




황당했지만, 이것 또한 모로코의 방식이겠지.

이게 그들의 해결법이라면,

이방인인 내가 옳다 옳지 않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마치 왜 이곳엔 김치가 왜 없냐고 따지는 격일 수도 있으려니 말이다.




다시 한번

한국을 상상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슈크란 비제프, 무슈”라고 웃어 보였다.




그래 맞아, 서울은 잊어.

이곳에서 한국의 룰은 없는 거야.


모로코에 왔으면, 모로코에 적응해야지.






근데….. 문제는 이곳은 룰이 없는 걸?







Welcome to Morocco



신선했던 모로코식 방충망을 이어서,

오늘은 ‘나의 관점’에서

룰이 없던 집 밖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한다.






1. 신호등이 없다. 내가 가는 게 곧 초록불



모로코에는 신호등 개념이 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현지인들은 그냥 건너버린다.


특히나 내가 사는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내에서 가장 발전된 경제도시라 차들이 가장 많고,

그 명성답게 교통사고 1위 도시라서 더 조심해야 한다.


베트남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바로 처음에 8차선 도로를 신호 없이 건너야 할 때.

베트남은 그래도 오토바이가 많고 천천히 다가오는 느낌이라면, 이곳은 그냥 몸부터 들이밀어야 차들이 멈춰 준다.


그 차이가 처음에는 꽤 크게 느껴졌었다.

다행히도 내가 떠날 때쯤부터는 공사를 시작해서, 아마 지금 가면 그 거리에는 신호등이 있을 거다.




2. 공과 사가 없다. 어딜 가도 플러팅은 기본


빨간 방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집에서 쓸 와이파이를 개통하러 갔다.

집 안에 와이파이 기기가 있기는 했지만, 데이터가 잘 안 터져서 우리는 그냥 새로 알아보기로 했다.


*모로코 통신사로는 Inwi, Orange, Maroc Telecom 이렇게 주요 3사가 있다.

이중 Maroc Telecom이 가장 대중적이다.


그중 우리는, 가장 번화가에서 보았던 Maroc부터 돌기로.


들어가서 불어 전공인 원서가 불어로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점심시간이라고 나중에 오란다. 점심시간은 무려 두 시간.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디서 왔어? “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 남자친구 있어? “ 모두 있다고 하니

“그럼 친구 하자. 전화번호 좀 줘”라고 해서 돌려서 거절했다.

창과 방패.


그랬더니 그러면 같이 사진 찍어달라고 해서 Maroc Telecom 앞에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공과 사가 넘나드는 이곳,

점심시간이라 개통은 안 되는데 직원이 고객에게 작업은 쉬지 않고 허용되는 마록 텔레콤.


*이후에도 동네가 비슷하다 보니 운동 후에 2번 더 마주쳤는데, 마주칠 때마다 번호 왜 안 주냐, 사진 왜 안 주냐고 삐진 티를 마구 냈다.


이후 Casa Port 역으로 이동해 Orange, Inwi를 비교해 보기로 했고,

Orange는 매력적이지 않아 탈락.

Inwi가 프로모션을 해서 이곳으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의 미션 중 와이파이는 해결.



*모로코 통신사 팁

모로코에는 주로 ‘르샤르지’라고 하는 개념으로 데이터를 충전해서 쓰는데,

가장 대중적으로는 Maroc을 많이 쓴다.

하눝(모로코 슈퍼마켓)에 가면 보통 Inwi, Orange, Maroc Telecom 3종류가 있다.

본인이 충전하고 싶은 기가 수에 맞는 디르함을 내면, 주인이 충전해 준다.

만약 나처럼 오래 머무는 사람이라면, 다른 선택지인 Yoxo도 매력적이다.

월 요금처럼, 통화와 데이터를 3달 결제 조건으로 싸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제도 인터넷으로 카드 결제를 하면 되어 편리하다.


나는 8개월 간 모두 사용해 본 결과,

Yoxo가 데이터를 한 번에 넉넉하게 받아오다 보니, 추후 번거롭게 충전하지 않아도 되어서 가장 편리했다.

다만 데이터 속도는 Maroc이 가장 빠르고, 와이파이를 개통할 때에는 Inwi가 가장 저렴해서 많이들 쓰더라.



또한 이 외에도

주스를 사러 과일 주스 집에 가거나, 로컬 음식점에 들어가도 플러팅은 계속된다.


이곳은 플러팅을 안부인사처럼 하는 곳.





3. 시선은 아래로, 피해야 할 것들이 많거든요.


또한 위생이 심각했다.

길거리에 쓰레기들은 차치하고, 큰 길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흔하게 보이는 똥들과 바퀴벌레.

특히 밤이 되면 서너 마리씩도 보이는데,

이것 때문에 점점 쪼리보다는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


나중에는 정육점 앞 고양이가 장난감으로 바퀴벌레를

갖고 노는 것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음식점이나 카페 안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것도,

심지어 숙소에서 나오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4.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음식물 쓰레기, 일반 쓰레기, 플라스틱, 비닐, 종이 등을

따로 배출하지 않고,

마트에서 파는 쓰레기봉투에 종류 상관없이 다 때려 넣어

집 앞 쓰레기 수거통에 넣으면 된다.

물론 뒷정리하는 나만 생각해서는 편한 일이지만,

이 점은 특히나 분리수거 룰이 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5. 집에서도, 밖에서도 정전이 된다.



실제로 집에서도 헤어드라이기를 일정 분 이상 연속으로 말리면, 우리 집은 전원이 OFF 된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라서, 그대로 정전이 난 줄 알고 어둠 속에서 씻고 생활했으나

이후에는 검정 스위치를 누르면 켜지는 것을 집주인이 알려주었다.

그 뒤부터는 머리 말리다 꺼지면 “얘들아 미안!!”하고 달려가서 스위치를 켜고, 다시 꺼지면 켜고 하는 반복으로 적응을 했다.


또한 카페에서 회의를 하다가도.

갑자기 눈앞이 암흑이 되고 노트북 화면 불빛만 덩그러니 남아 당황했었던 기억이 있다.

현지인들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한 10분이 지났나 원래대로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건 운에 따라 겪지 않을 확률이 높다.





6. 아이들이 밤에 자지 않는다.



이건 불편하거나 문화충격에서 제외하고, 그냥 한국의 정서로는 꽤나 놀라웠던 점이다.

밤에 가끔 룸메들과 산책을 하러 핫산 모스크 쪽으로 나갈 때가 있었는데,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도 아이들이 정말 많이 나와 뛰어놀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이들은 진작에 일찍 자러 갈 텐데.


모로코 사람들이 늦게 자는 편이라고는 했지만,

아이들 또한 밤늦게까지 뛰어노는 모습이 내게는 매우 생소하게 느껴졌다.







7. 남자들을 위한 카페가 대다수이다.



대부분 모로코 로컬 카페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데,

카페가 주로 남자들의 문화로 점유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여성들의 수다로 가득 채워진 예전의 우리나라 카페 분위기처럼.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도 꽤나 많은 남자들이

야외석에 앉아 손에 휴대폰과 담배를 들고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야외 테라스 좌석은 도로 방향으로 한 방향 배열이다.


또한 위와 같이 로컬 카페 내부에는 커다란 TV가 대부분 설치되어 있는데,

축구를 상영하기 위함이다.

모로코 남성들은 축구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모객을 위해서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모로코 현지 카페는

모두 주로 내부에서 축구를 보거나,

혹은 외부에서 휴대폰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이 주 고객층이다.


또한 평일 낮에도 남자들이 참 많다. 여자는 거의 없다.

스타벅스나 프랜차이즈 현대식 카페에 가서야 보이고.


처음에는 이렇게 남성 위주의 카페 문화가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이것 또한 그들의 문화라면,

다른 국가에서 온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이외에도 더 생각이 나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건 에피소드마다 연결이 되면 후술 하도록 하겠다.


내가 초반기에 놀랐던 점들은 크게 이 정도가 있었다.

모로코에 오게 되면 대부분 겪을 수 있는 사항들.


처음에는 불편하거나, 힘들 수 있다.

나 또한 초반에는 우리나라와 다른 것들에 적응하느라 꽤 힘들었다.

꽤 오래 지내면서 지금은 비교적 괜찮아졌지만.


아무래도 개발도상국이다 보니,

선진국 입장인 우리가 가서 살게 되면 여러 면에서

불편함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떠나왔다면, 그때부터는 내가 감수해야 할 문제이고.

나 역시 초반에는 불편하고 무섭고, 힘든 점들이 꽤 많았지만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고 장단점이 있다.

결국 내게는 이러한 단점보다 모로코의 장점들이 더 크게 다가왔기에

내가 모로코에 빠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내가 이곳에 마음을 열게 되었던 일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여행으로 간다면 겪을 수 없었던 나의 에피소드는 여기까지.



* 다음 에피소드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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