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시에서, 홀로 빨간 방에 던져지다.

게다가 밤마다 들리는 짐승소리와 무단침입까지. 나, 살아갈 수 있을까?

by 이 율





9월 1일.

오늘부터 카사블랑카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는 날.


붉은 벽돌빛의 마라케시에 매료되어 있던 터라,

‘하얀 도시는 감흥 없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며 이동하는 길.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Casa가 스페인어로 ’ 집‘, Blanc이 ‘하얀’이라 합치면 ’ 하얀 집‘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돌산들을

두 눈으로 가득 받아들이며-

익숙했던 한국을 떠나 왔음을 또 실감한다.


카사블랑카로 가는 차 안에서.




모로코의 휴게소는 어떤 모습일까


아침으로 사 온 크로와상을 먹고서 창 밖의 풍경을 두 눈에 가득 담다 보니 도착한 아프리카 휴게소.


이건 첫날부터 느낀 건데,

모로코는 마트를 가더라도 빵이 싸고 맛있었다.

프랑스 영향을 받아서일까..?


뺑오 쇼콜라도 맛있었지만 특히 이 기본 크로와상이

내 입맛에는 참 맛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출출할 때 먹으려고 뻉오 쇼콜라와

크로와상을 사 와 먹으면서 갔다.


중간에는 휴게소를 들렀는데,

글자를 몰라도 저 표지판이 직감적으로

휴게소임을 알려주었다.


첫 아프리카 휴게소라니.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대하며-


그렇게 안으로 들어섰다


휴게소에 저렇게 전통 그릇 시장(?) 같은 공간이.


생각보다 차분하고, 너무나도 이국적인 휴게소.


즐비한 전통 그릇과 과일들.

휴게소인데 장사가 잘 될까..?


모르는 나는 과일을 더 사 먹겠어.



그리고 쭉 걸어가다 오른쪽을 보니 열려 있는

과일 주스 가게들!

주문하면 즉시 갈아 준다.


필수코스인 안부 인사를 먼저 해 주고, 주문을 했다.


나는 오렌지와 석류를 반반 섞어 마셨는데,

야외에서 만들다 보니 얼음이 없어 미지근했다.

그래도 바로 갈아주니 맛있었다.


그리고서 메인인 휴게소 안으로!



내부는 휴게소 다웠다.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

다른 편에는 편의점 같은 공간이 있었고,

화장실은 무료였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키고,

얼음을 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가격은 16 디르함.


휴게 시간이 다 되어서 다시 차로 갔다.

타서 남은 빵과 함께 먹다 보니 어느덧 건물들이 보였고,


그 색깔은 하얀색들.


그 말은 즉슨, 도착했다는 것.

왔습니다, 드디어 하얀 세상 카사블랑카에.





‘하얀 집‘에 도착하다.


하얀 집들이 끝없이 이어진 골목.

우리는 그 사이에서 오늘부터 4개월 동안 살게 될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약속이라도 한듯 우리는 거실에

짐을 던져두고 바로 집부터 둘러보았다.


마라케시에서의 첫 숙소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천국 같은 평온하고 깔끔한 컨디션.


에어컨은 없었지만,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잘 통해서 괜찮다고 한다.

특히, 입구에서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핫산 모스크 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너무 만족스러웠다.


한 집에 세 명이서 살게 되는데, 방은 각 방.

방이 정해지면 그 후부터는 활동 외에는

각자도생 라이프 시작.


모로코에 도착한 뒤 짐을 제대로 풀지 못했기에,

이제 정말 보금자리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드디어 방만 정하면 묵은 짐들을 풀 수 있겠구나.


우리 셋은 사다리 타기로 각자 방을 정하기로 했고,

모두 한마음이었다.


‘상관없어, *빨간 방만 빼고.’


*빨간 방

이 모던한 집 안에서 조화를 깨는 방이 하나 있다.

그 방은 침대는 유아용에, 사이즈도 가장 작았다.

다른 두 방과 방향이 달라 햇빛이 들지 않는 세탁실과

이어진 방이었다.

세탁실 문은 유일하게 환기를 시킬 수 있는 창문이라

열어놓게 되면,


… 아래에서 말하겠지만 치명적인 문제 또한 있다.



화장실도 가장 멀었고,

여러모로 창고 방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방이 새빨갛다.

-이상.-


나는 햇빛을 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방문을 열자마자 ’이 방은 걸리면 좀 우울할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왠지 쎄했다.

그리고 쎄하면 그 직감은 틀리지 않는다.


룰렛은 돌려지고, 나는 눈을 감고 결과를 기다렸다.

다른 아이들의 절규는 들리지 않았고,


4개월 동안 내가 지낼

내 방은.. 빨간 방.



그래서 알고 있는.. 외부에서의 무단 침입.




현실부정의 기간을 지나


문제의 빨간 방.


왜 나는 곰, 사자, 토끼 중에 토끼를 골랐을까!

생각해 보면 이 방처럼 가장 작은놈이었는데 말이야.


결과를 보고 유쾌하게 웃을 수가 없었다.


(내게만) 잔인했던 사다리 타기가 끝나고, 룸메들은 간단히 나를 위로하고서 짐을 풀기 위해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고, 하루가 아닌 4 달이니 이 결과가 절망스러웠다.

이 모든 건물이 하얀 도시 속에서, 빨간 방에 홀로 던져진 나.


왜 이 방만 이렇게 빨갛게 해 놓은 걸까. N인 나는 괜히 무서운 생각들을 하게 된다.

정신 건강에 해롭게 말이야.

문을 닫으면 이 좁은 사방이 빨간 방 안에 있는 게 싫었다. 갇힌 것 같았다.





밤마다 울부짖는 정체불명의 짐승소리,
그리고 범인의 침입.



나는 체념을 했고, 빨리 이 방에 정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첫날, 불을 끌 용기는 나지 않아 세탁실 불을 켜 두고 잠이 들었다.


고비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밤이 되자 들리는 정체불명의 기이한 소리.

멧돼지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무언가가 울부짖는 소리 같은데, 도통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가뜩이나 이 방이 무서운데, 이제는 오싹하기까지 했다.

첫날에는 환청인 걸까 싶었지만, 그 소리는 다음날에도 들려왔다.


다른 룸메들에게 혹시 밤에 이상한 소리 못 들었냐고 물어보니, 못 들었다고 한다.


나한테만 들린다고 생각하니까 더 무서웠다.

그 정체를 알기까지, 혼자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바깥을 볼 수 있는 창문 너머의 세탁실. 내 창문을 열면 비둘기 깃털이 들어오던.



사진과 같이 내 방 창문을 열면 세탁실이 있다.

모로코는 대부분 창문에 방충망이 없어서, 창문을 열면 그냥 외부로 연결된다.


나는 세탁실의 창문을 통해서만 내 방 환기를 시킬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때는 창문을 열어두어야 했는데, 모로코 새내기인 나는 몰랐다.

이곳의 생명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겁이 없는 걸.



빨간 방에서 산 지 며칠이 지났다.

이른 아침, 작고도 가깝게 들리는 짐승 소리에 본능적으로 잠에서 깼다.

눈을 떠서 천장을 보는데, 세탁실 너머로부터 들어오는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다.

일렁이는 것과 움직이는 것은 다르다.

본능적으로 물건이 아닌 생명의 무언가가 들어와 있다는 직감이 들었고, 소름이 끼쳤다.

그게 무엇이든 직면하기 너무나도 무서웠다.


하지만 여기는 모로코고, 나는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판단해 서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 정체는 바로 비둘기였다. 그것도 두 마리나.

그 기이한 울음소리의 정체도, 이 녀석들이었던 것이다.


눈을 마주쳐도 나가지 않아 한 두 번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방으로 자꾸만 들어오는 비둘기 깃털들이 납득이 되었다.


내 방과 가까웠던 그들의 아지트 존. 저녁이 되면 더 늘어난다.



세탁실 밖에는 우리 집 같은 아파트 단지들이 둘러싸여 있고, 비둘기들이 늘 삼삼오오 앉아있는 아지트 존이 있다.

내 시야에서 늘 보이는 곳에.

그래서 나는 그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어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바람이 강해서 깃털이 들어왔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이 집에는 셋이서 함께 살지만, 이건 오직 이 방향의 방에 걸린 내가 헤쳐나가야 하는 문제.

평온한 집에서 이러한 고충을 겪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 방에 걸린 게 다시 또 서러웠다.



처음에는 방 안에서 쓰레받기로 벽을 탁탁 쳤는데 타격이 없었다.

창문 쪽으로 손을 내밀고 다시 치니 그제서야 나가는 비둘기들.


아침에 일어나면 비둘기가 와 있나 없나를 봐야 하다니.

안 그래도 조류를 무서워하는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더 무서워하게 되었다.


이 방에 정을 빨리 붙여야 남은 생활이 안정될 텐데.

적응력이 뛰어난 나지만, 이번에는 정말 쉽지 않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매일 일어나면 비둘기 쫓아내기가 가장 먼저 하는 일과라니.

이 도시가 감흥 없을까 걱정했던 내가 무색하게도

노션에도 생생히 적혀있는 그날의 역동적인 기록들.




나… 앞으로 4개월 잘 버틸 수 있을까?


훗날 에피소드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