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출국까지 D-1.
아프리카로 가기 위해 퇴사도 하고, 교육도 받고 이제 정말 출국만 남은 상태.
오지 않았던 시간이 어느덧 다가왔다.
아현 언니가 도와준 덕분에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고,
밤비행을 시작으로, 이스탄불을 경유한 끝에 다다른 모로코.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인 Marrakech에 도착했다.
나, 정말 아프리카에 온 거야!
입국심사를 마치고, 드디어 공항 밖으로 나왔다.
마라케시 공항의 첫인상은 팻말을 들고 있는 현지인들,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 기사들이 많았다.
다만 인종이 바뀌어있다는 것 자체로 새로웠다.
현지시각은 22:35로 늦은 시각이라 하늘은 깜깜했다.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준비되어 있는 벤에 3개의 캐리어와 어깨에 맨 백팩을 싣고 가벼워진 몸으로 차량에 탑승했다.
눈앞의 채워지는 이국적인 풍경들과, 함께 공항 밖을 벗어나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돗자리 없이 풀바닥에 앉아 더위를 식히는 모로칸들을 지나,
클락션을 울려대는 차들, 달리는 오토바이들, 이국적인 붉은 벽돌의 건물들의 향연을 지나-
마라케시에서 며칠간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나를 포함한 5명의 우리 팀은 마라케시로 입국해서,
카사블랑카로 파견되는 단원이었으나, 그전에 ‘현지적응교육’이라는 공통일정을 먼저 소화하고 넘어가야 했다.
이 교육은 4일 동안 진행이 되기에, 이 임시 숙소에서 3명의 룸메와 지내야 했다.
(이후로도 등장할 내 첫 번째 모로코 살이의 룸메들. 나와 연주는 동갑, 원서가 막내다.)
밤이 늦었기에 오늘은 짐을 풀고 샤워하고 자면, 내일부터는 본 일정 시작.
나는 임시 숙소에서 자주 쓸 용품들만 한 곳에 모아두려고 짐 정리를 해놓고 난 뒤에 씻고 싶었다.
그래서 맨 마지막에 씻기로 하고 캐리어를 풀고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원서의 비명소리.
듣지 않아도 왠지 알 것 같았다.
‘웰컴 투 아프리카.’
마라맛 마라케시가 시작됐다.
“악!!!!! 언니들 여기 바퀴벌레 있어!!!!
한 두 마리가 아니야!!!!”
그렇지, 이곳에 와서
한국의 호텔을 생각하면 안 되지.
맨 처음에 씻은 연주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면서 못 봤다고 한다.
참고로 연주는 바퀴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반면 원서와 나는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래서 예의주시하다 보니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다.
원서는 씻으려다가 나와 못 씻겠다고 하소연했고,
상여자인 연주는 잡아주겠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슬리퍼를 들고 들어가 벽을 탁탁 치며, 바퀴벌레를 부른다.
분명 내 눈에도 보였는데, 묘하게도 연주가 올 때만 바퀴벌레들이 숨어버린다.
하지만, 연주가 뒤돌아 나가면 우리 둘 눈에는 바퀴벌레가 다시 보이는 것이..
얘네 생존 고순데?
너희 다 알고 그러는 거지!
뛰쳐나오듯 원서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그 말은즉슨 이제 내 차례라는 것.
피로를 풀러 가는 게 아니라 호랑이 동굴에 들어가야 하는 기분이었다.
원서 말로는 벽을 타고 사각지대로 기어올라갔다는데-
각오를 안 한건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다수로 나올 줄은 몰랐지.
그러나 장시간 비행으로 꼬질꼬질했던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심호흡을 하고, 수압을 체크하려 샤워기를 틀었다.
‘최대한 빨리 씻고 나가서 마주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머리에 물을 묻히는 그 순간.
아-
나는 이제 진퇴양난인데,
손톱 만한 바퀴벌레가 내 시야 앞에서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간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요동 치는 마음을 안고,
씻는 둥 마는 둥 뜬 눈으로 샤워를 끝마치고 뛰쳐나왔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나니 새벽 1시.
또 어디서 나올지 모르니 짐도 편하게 못 풀고,
그럼에도 잠은 자야 하니 침대를 정해야 했다.
방은 두 개였는데,
한 방은 싱글 침대 두 개,
한 방은 퀸 침대 한 개가 놓여 있었다.
그래서 가위바위보를 하려던 찰나,
“언니들, 근데 나 혼자 못 자겠어..”
원서가 말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우리 다 같이 잘래..?”
-“좋아..”
-“그래..!”
만장일치였다.
그렇게, 우리 셋은 4일 내내
한 방에 침대를 붙이고 함께 잤다.
현지적응교육 기간 동안,
마라케시의 첫 느낌은 우리에게 마라 맛이었다.
그만큼 동시에 좋은 의미로 강렬하기도 했다.
커다란 야자수들과 어우러진 온통 붉은 건물들,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을 지나 저 도로 너머 낙타들이 보이고,
눈이 마주치면 주저 없이 웃어주는 사람들.
마라케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제마 알프나 광장과 메디나는 또 어찌나 매력 있던지.
두 발은 가이드를 따라 가는데, 두 눈앞은 화려하고도 새로워서
길을 헤맬 뻔 하기를 두어 번.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반짝이는 눈으로 흡수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웰컴 투 모로코”라고 환대해 주는 모로칸들.
국내교육 때 배운 모로코 아랍어(데리자) 중 기억나는 단어들을 모조리 뱉으니
너무나도 흐뭇하게 “오! 유 스픽 아라빅?” 해주는 모로칸들.
웃으며 “슈크란”이라고 화답하며 남은 길을 서두른다.
낯설어 긴장되는 마음 반, 설레는 마음 반
그렇게 새로움 가득 안고 빠르게 걷던 우리를 기억한다.
전통 음식(타진, 홉즈, 민트티 같은 것들)도 먹고,
까르푸에 가서 주전부리를 사 와 룸메들과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날.
막상 떠날 때가 되니 마라케시의 매력에 빠져,
카사블랑카로 가기 싫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본 임무가 있기에,
화려했던 붉은빛 마라케시를 뒤로 하고-
나는 드디어 내가 살 곳인,
‘하얀 집’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인 카사블랑카로 떠났다.
*
epilogue
먼 훗날의 나는,
혼자서 구글 맵 없이 마라케시 메디나를 돌아다니고,
다른 도시들을 홀로 여행했다.
그 도시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또 현지에 온 첫날,
화장실에서 만난 손톱 만한 바퀴벌레에 귀국을 생각했었지만,
두 번째 모로코 살이에서는
엄지 손가락 만한 바퀴벌레도 처리할 수 있는 연주 다음 상여자가 됐다.
나보다 더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동생 룸메와 지내다 보니, 내가 강해지게 되더라.
여전히 바퀴벌레는 너무 싫지만 말이야.
너무 너무 싫지만 말이야!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