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예은-편지
우리 나름대로 친했는데
아니었다면 미안하고
(중략)
오 멈춰버린 시간 속에
너 홀로 밝게 웃고 있어
난 바보처럼 서 있다가
마음을 감춰두고
너를 또 그냥 보낸 거야
그때 편지를 몇 번이나 쓰고 고쳤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지금 그 편지는 조각조각 분해되어 공기 중으로 날아갔다.
군대에서 처음 들었던 이 노래는 아직도 네게 편지를 건네지 못했던 그날을 생각나게 한다.
내 사랑은 언제나 일방향이었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겪었던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있기 마련이다.
한강 둔치에 앉아 따뜻한 봄바람을 같이 맞이하고
우연히 찾은 노포 맛집에서 잊어버렸던 낭만을 찾기도 하고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이별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삶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
네가 떠나기 하루 전, 우리는 너의 집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일식집에서 만났다.
너를 만나러 가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다.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매일매일 연등을 하며 너에게 보여 줄 단편소설을 썼다.
내 마음을 전할 편지도 몇 번이나 고쳤는지 모른다.
편지를 건네며 할 말도 메모장에 적어 통째로 외웠다.
그날, 난 네게 작별을 하기 위해 너 앞에 섰다.
너는 여느 때와 똑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는 수심과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
목소리에는 힘이 없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너는 끊임없이 타지 생활에 대한 걱정만 늘어놓았다.
언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자 사는 게 처음인데 잘 지낼 수 있을지, 같은 걱정이 돌림노래처럼 지속됐다.
미안한 얘기지만, 난 가방에 있는 것들을 신경 쓰느라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저 하릴없이 타이밍을 기다리며 편지봉투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일식집에서 카페로 자리를 옮기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난 소설과 편지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넌 결국 이제 짐을 싸러 가야 한다며 줄 게 있으면 빨리 주라는 식으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멋없게, 준비해 둔 말을 하나도 꺼내지 못한 채
허둥지둥 시간에 쫓기듯 가방에서 소설 한 부를 꺼냈다.
그때 너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얼굴을 쳐다보기가 부끄러워 내내 바닥만 보고 있었다.
소설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는 너의 말에 기분은 좋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끌고 나가서 편지까지 건네야 했지만
내게는 그럴 용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네가 웃는 모습을 다시 못 본다 생각하니
더욱더 편지를 건넬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결국 난 내 마음도, 편지도 전하지 못한 채 부대로 복귀했다.
복귀 후 부대에서 우연히 <편지>라는 노래를 들을 때까지 너를 잊고 살았다.
사랑 이야기의 전형적인 클리셰 중 하나인 '전하지 못한 편지'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몇 년 후에 그 편지를 방에서 다시 발견했을 때,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추억을 회상하면 항상 뒤따라오는 특유의 멋쩍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정리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때 하고 싶은 말을 전하지 못해 괜스레 아쉬움이 남았던 걸까.
다시 돌아간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