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또 엄마의 길을 따라간다

겪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

by Meirees

쌍둥이로 태어나 36세가 되는 해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아기들을 낳고 지금까지도 종종 가슴이 저릿하고 아픈 순간들이 찾아온다.

바로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엄마는 얼마나 그 시절에 더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우리를 낳아 키우셨을 때 그 시절의 어려움이 있고, 지금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만,

너무 가부장적인 무뚝뚝한, 해외 출장이 잦은 아빠와 우리를 키웠을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 죄송스럽고 또 한없이 감사하다.



애들이 너무 울었다, 이유도 모르겠고 0개월부터 5개월까지 정말 자주 많이 크게 아파트 전체가 울리도록 울었다. 가끔 너무 끊임없이 아기들이 울면 아빠가 방에서 신경질을 내며 나오신다. 애들 좀 그만 울리라고 너무 시끄럽다고 잠도 못 자겠다며 우는 소리와 더해질 정도로 신경질을 다 내시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셨다.


그 순간 드는 생각은 '우리도 힘든데 우리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실까? 한 명만 좀 같이 안아주시지..' 또는 '우리가 그렇게 24시간 울었다고 하던데, 그때도 이렇게 엄마를 도와주지 않고 신경질만 내고 본인만 밖으로 나가거나 방에 들어가서 저렇게 계셨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냥 엄마아빠 도움 받지 않고 우리 집에서 남편이랑 둘이 애들을 돌보겠다고 할 것을 잘못했나 보다.

남편이 출근하면 혼자 애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당분간 부모님 댁에서 지내기로 했는데 도움을 받는 것도 두 배, 아기들을 돌보며 즐거움을 얻는 것도 두 배, 아기들을 보며 슬픈 우울한 감정이 드는 것도 두 배 모두 두 배로 다가왔다.


사소한 일에도 바로 엄마를 떠올리게 되며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특히 애들이 동시에 응가를 하거나, 동시에 토하고 울면 정말 패닉이었다.

애들이 동시에 울기 시작하면 심장이 쿵쿵 뛰며 거실에 있는 티브이 보는 아빠 눈치고 보이고, 빨리 치우고 씻겨야 된다는 생각에 손이 덜덜덜 떨렸다. 나는 우리 남편도 있고 엄마도 있고 이모도 있고 언니도 있는데 우리 엄마는 그때 어떻게 우릴 돌보신 거지? 우리 엄마는 우리 어떻게 키우신 걸까?


내 기억 속에 엄마는 너무 덜렁거리는 산만하신 분이었다. 근데 아기들을 낳고 깨달았다.

우리를 낳고 기르며 엄마가 덜렁거리게 산만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쌍둥이를 키우다 보니 알겠다. 동시에 챙겨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고, 동시에 해야만 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될 수 없다.

엄마는 손목에 힘이 없으셔서 뭘 그렇게 자주 떨어뜨리고 깨뜨리셨다.

손이 찢어지거나 갈라져서 피나고 아파도 내가 먼저 발견해서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줄 때까지 신경을 안 쓰시는 것인지 무딘 것인지 손에 감각이 별로 없는 것인지 상처를 발견할 때마다 너무 답답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분유를 넘어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이유식 준비를 미리 해야 해서 또 다른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어느 날, 애들을 재우고 샤워를 하려는데 손등 전체가 화끈거리고 너무 아팠다.

자세히 보니 손을 데었고 샤워할 때까지 못 느끼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다쳐도 모르고 지내시는 엄마의 모습과 겹쳐지며 마음이 따가웠다.


난 다정하거나 애교가 많고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딸이 아니다.

직장생활로 너무 바빠 오랜만에 집에 갔다가 엄마가 손에 습진이 갈라져서 아프고 아릴 텐데도 그 손으로 요리를 하고 계신 모습을 보면 왜 그리 화가 났는지, 약 좀 바르고 밴드 좀 붙이라고 짜증을 내며 손에 밴드를 신경질 적으로 붙여드리곤 했다. 그리고 허리가 너무 아파서 못 일어나시겠다고 하면 병원에 좀 가시라고 잔소리를 몇 분 동안 했다.


좀 더 잘할걸, 좀 더 다정하게 할 걸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지만, 이렇게 엄마랑 똑같이 쌍둥이를 낳고 키우면서 이제야 깨닫다니 참 못났다. 못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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