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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이탈...

길이 이 쪽이 아니었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by 유진



요즘은 생각이 많았다. 정말 생각이 많았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보낸 거 같다.

7월 중순부터 뭔가 묘하게 달라졌고 나는 한 곳에 머물러 버린 구름처럼 머물러 버린 채 가만히 있었다.

일상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고 나도 계속 움직이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생각 중이었다.

뭔가 묘하게 뿌연 연기안에서 가만히 앉아 한 곳 만을 보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달리지만 달리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나의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내가 할 일들은 차곡차곡 생겨났고 나는 그저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나갔다.

나는 모든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공간마저 불편해졌다. 모든 게 거슬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한동안은 짜증도 많이 났었다.

아이의 여름방학...

8월의 중순이 지나가고 있을 시기...

나는 달력을 무심히 보고 있었고... 지금 이 공기를 바꿔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저녁에 호텔을 예약해버리고 검색에 정신을 팔아버렸다. 나는 3시간을 겨우 잤고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 일단 하루만....



그런데 그 일단 하루만이 이틀이 되고... 하루만 더... 하루만 더...

결국 4박 5일이라는 시간 동안 예상에도 없었던 추억을 쌓아버렸다.

나는 정체되어있던 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내 아이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게 되었다.



그것은...

경로 이탈...

경로 이탈...

경로 이탈이었다.



원래 가기로 했던 길이 아닌 길...

나는 완벽한 무계획으로 내 공간을 벗어나버렸고...

우리는 그렇게 뜻하지 않게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게 되었다.



어쨌든 돌아왔고 일상은 다시 계속되었다. 돌아왔지만 여전히 생각은 많았고 나는 여전히 뿌연 상태였다.

몇 달 동안 생각만 했던 책 정리를 시작했다. 아이의 공부방에 있는 이제는 물려줘야 할 책들을 정리하고 이것저것 손을 댔다. 거실과 주방의 공간을 하나하나 바꿔갔고 예산에도 없던 돈을 쓰고 약간의 소품으로 공간에 변화를 줬다.



그런데 공간이 조금씩 바뀌니 내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는 게 아닌가?

그래... 나 좀 지겨웠나 보다..

누가 그러더라..

공간에도 변화를 줘봐라..

거실과 주방이란 공간에 변화를 준 게 내 마음까지도 영향을 줬나 보다.

그동안은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맞춘 환경을 내 마음에도 맞춘 환경으로 바꿨더니 나를 위로해주는 공간이 된 거 같아 편안해지는 기분까지도 드는 게 아닌가...

그동안 나는 너무 아이 위주의 삶을 살았나 보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나를 위한 공간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나에게도 함께 좋을 공간이어야 했나 보다.

나는 그런 게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사를 가고 싶다. 열심히 살아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 원하는 것이 점점 더 생긴다.

원하는 것이 생기니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의욕도 다시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을 하나 더 추가...

사람이 욕심이 생기니 의욕이 생기네?

우리 엄마가 나보고 욕심이 너무 없다고 그랬는데... 승부욕도 없다고..

뭔가 욕심이란 단어는 놀부를 생각나게 하고 그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부정 암시가 내게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하나 욕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나는 좀 그래야겠다.



이것이 도파민 부족인 건지 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난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묶여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마음이 문이라면 그 문이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게 그냥 가만히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런 나를 무심한 눈길로 그냥 다른 내가 덤덤히 보는 느낌?

일상 속에서 기쁘고 슬프고 괴롭고 화나고 즐겁고 하는 감정은 있지만 의욕은 없는 그런 상태...

참으로 희한한 그런 상태 말이다.

나는 그런 나를 미친 듯이 끌어올려서 달리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철퍼덕하고 바닥에 앉게 되면... 그냥 그 상태로 가만히 있게 되는 것이다.

바삐 움직이지만 가만히 있는 그런 상태...

내가 ADHD가 있어서 그런 건지... 어떤 건지 가끔은 이런 내가 답답하다.

왜 이 패턴을 끊어내질 못하는 건지...



진짜 너무 열심히 해왔는데 갑자기 모든 게 무의미해진다.

내겐 이런 패턴이 있다.

다시 의미를 두고 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열심히 살아야 내야 하는 이유가 있듯이...

17살 때부터 우울증이 심하게 오다가다 오다가다를 반복해왔었다.

이런 감정의 찌꺼기가 다 벗겨지진 않은 거 같다.

시간이란 초조함이 나를 다시 이 패턴에 밀어 넣어버린 것인지... 갑자기 모든 게 무의미해져서 내 마음에 의욕을 일으키려 노력한 시간이었다.



참 열심히 해왔었는데...

혼자 해나가는 내가 외로웠던 건지... 내가 나를 의심했던 건지..

가끔은 그렇다. 강렬한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그런 강렬한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누군가가..

강렬하게 나를 지지해준 걸 그런 철저한 믿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인터넷 속에서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모든 상황은 행복했다. 너무 고맙고 고마웠다.

자꾸 기어들어가려는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난...

손을 잡을 수 있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걸 받아보고 싶었다.

내가 살면서 그런 강렬한 느낌을 받아 볼 수는 있을까?

나는 어쩌면 그런 공허함 때문에 더 우울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나 자신에게 강렬하게 지지해주는 존재가 되어주기로 했었다.

내가 나를 지지하고 나를 믿어주고 그렇게 해나가는 줄 알았는데..

내가 나를 의심했나 보다..

작은 의심이 어느 순간 빈틈을 파고들었고 하루아침에 모든 의욕을 증발시켜버린 것이다.

나는 다시 우울감에 스며들고 있었다.

내게 다가오는 우울감을 알아챘고 그것과 거리두기를 하며 애써 그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삐끗하면 그대로 풍덩 빠져버리니까...

나는 숱하게 겪어봤기 때문에 이번엔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할까?

내가 나 자신에게 나를 증명해야 할까?

믿는다고 해놓고 의심을 하다니...

믿음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나 자신조차도 나를 의심하는 게 너무 익숙하다.



슬펐다.

경로 이탈을 해 버린 내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내가 슬펐다.

나에게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면 나는 계속 우두커니 서 있으며 계속 슬퍼만 했을 테지..

해맑은 내 딸..

내가 열심히 해내야 할 이유..

다행이지.. 참 다행이지..

어떠한 나라도 어떻게든 일어나야 할 이유가 되어준 내 딸..

사무치게 고마운 존재..

저 아이의 맑음을 나는 지켜주고 싶다.

지금 나는 경로 이탈을 했지만 다시 경로 재탐색을 한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뒷 자석 파란 카시트에 앉아 엄마의 운전대만 믿는 내 딸...

지키고 싶은 존재가 있다는 것이 이런 거겠지..

내게 와줘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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