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Nov 12. 2024

나는 (  )로 태어날 거야!!

한평생을 살았다. 이제는...






엄마!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날 거야?

" 새가 되어 날아갈 거야! "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사실 기억나지 않는 시간과 날짜는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단편영화처럼 우리 둘만의 대화로만 기억한다. 필름이 돌아가는 옛 영화를 떠올리듯 그렇게 몇 분의 대화가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별일 없는 하루였다. 시원했나? 아니면 더웠나? 그것도 가물거리는 흐린 기억이다. 

흐린 장면 속에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엄마의 말..

내가 물었다.

" 엄마! 엄마는 다시 태어난다면 뭐로 태어날 거야? "

내 질문에 쉼 없이 바로 나오는 대답..

" 나는 새로 태어나서 자유롭게 날아갈 거야! "

망설임 없이 대답한 엄마의 목소리에서 작은 해방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왜 고장 난 아코디언같이 삐그덕 거렸을까.. 

몇 박자가 늦은 내 대답은 " 그렇구나.. 엄마는 새가 되고 싶구나..."였다.

그때의 엄마의 눈빛은 아득히 먼 곳을 향해있었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인생, 꿈꾸지 못한 삶, 기대하지 못한 미래, 이제는 그저 상상 속 누군가..

엄마의 눈은 어딘가를 향해 아주 잠시 반짝였을 뿐이었다.

그 순간 웃으며 지나갔지만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엄마의 눈빛 모음집에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엄마의 눈빛을 모아둔 내 기억창고가 있다. 첫 기억은 7살.. 그 뒤로도 아무도 모르게 담아두었다.

내 기억창고 속 첫 페이지는 7살의 어느 날 엄마의 슬프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가득 찬 장면이다.




순간의 찰나..

난 사람의 눈빛을 그렇게 기억한다.




그런 내가 모아둔 엄마의 눈빛 모음집에는 엄마의 여러 감정이 함께 담겨있다. 7살의 눈빛은 슬펐고 안타까웠다. 그땐 좀 형편이 어려웠고 엄마는 어리고 너무 착했다. 정말 큰 맘을 먹은 어린 엄마는 비싼 걸 팔겠다는 의지의 사장님 앞에서 진땀을 빼고 있었다. 왜 그 눈빛을 봤을까.. 나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갔었지만 돌아올 땐 모래주머니라도 찬 것처럼 무거운 걸음으로 와야 했다. 엄마의 눈빛을 봤으니까.. 




마녀 같은 사장 아주머니에게서 쩔쩔매는 엄마의 안타까운 눈빛.. 난 그걸 봐버려서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 엄마! 나 이거 갖고 싶어!! " 사장 아주머니는 떨떠름하게 나를 쳐다봤고 엄마의 눈빛은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더 큰 걸 사고 싶어 하는 동생 손을 세게 붙잡고 씩씩하게 집으로 걸어갔던 날.. 그게 엄마눈빛 모음집의 첫 장면이다.




새가 되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7살의 기억이 떠올랐다. 갑자기 겹쳐지는 느낌에 빨리 대답하지 못하고 삐그덕거린 거지.. 슬펐나? 아니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아부지는 선녀를 데려와 날개옷도 숨겨놓고 잔소리쟁이 할머니로 만들어버렸나 보다. 엄마도 나 어렸을 땐 새하얀 천사같이 고왔었는데...









나랑 찍은 사진 속 엄마는 햇빛을 받아 하얗고 동그랗고 고왔다. 할머니가 보자마자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을 정도로 참 예뻤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해 장가가겠다고 불도저 같이 밀어붙인 아부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다. 엄만 시골에서도 예뻐서 유명했었다. 하루종일 밭에서 일해야 되는 시골에서도 반짝이는 큰 눈과 우유처럼 하얀 피부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엄마는 어디서도 잘 살았을 거다. 검소하고 부지런하고 참 깔끔해서 어디서든 잘 살았을 거 같다. 아부지가 엄마 만나서 참 다행이었지.. 울 아부지 많이 벌어도 모으진 못했을 거니까.. 

평생 아부지 일 도우며 살림하며 그렇게 살았다. 참 야무지게 똑 부러지게 그렇게 사셨다. 




가끔 지나가는 넋두리로 나에게만 말한다. 

" 혼자 살아보고 싶어.." 철렁하는 말이지만 나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한다. 

" 좋지~좋아!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아담한 아파트 하나 얻어서 좋지~! "

친구분이 그렇게 살고 있으셔서 그런지 가끔 부러우신가 보다. 혼자 자유롭게 취미생활 하면서 내 맘대로 하는 모습이.. 




가끔 엄마의 이상 기류를 느끼면...

울 아부지는 엄마가 뭐라 시든 허허 웃으며 그냥 가만히 계시다가 조용히 차키를 들고 " 회나 먹으러 갈까? " 물어보신다. ㅋ 엄마는 들뜬 기분으로 가벼운 외출 준비를 한다. 그렇게 새가 되고 싶은 엄마는 회를 먹으러 간다.  선녀는 나무꾼의 " 회나 먹으러 갈까?"에 또 낚여서 흥얼거리며 고속도로를 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