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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세 Nov 22. 2022

사계(四季)

어머니, 저는 하늘을 날고 싶었어요.
몇 번을 땅에 나뒹굴고 찔레꽃에 찔려 아파도
언젠간 나도 친구들처럼 하늘을 날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깨달았어요. 나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을.
누군가에겐 컵 안에 담긴 차를 마시는 것처럼 쉬운 일이지만,
이번 삶에는 허락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맞아요, 오늘이 그렇게 좋은 날은 아니었죠.
하지만 난 알아요. 삶이 고통은 아니라는 것을.
컵케이크처럼 달콤하진 않지만
언젠간 당신의 말처럼 긴긴밤이 지나 아침이 올 것이라는 걸 알아요.

어머니, 저는 꽃봉오리를 맺어 피어나고 싶었어요.
양지바른 언덕 어딘가에 나의 자리를 찾아
깊이 뿌리박고 나의 꽃을 피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는 깨달았어요. 찬란한 여름,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을.
모든 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맞아요, 오늘이 그렇게 좋은 날은 아니었죠.
하지만 난 알아요. 삶이 고통은 아니라는 것을.
컵케이크처럼 달콤하진 않지만
언젠간 당신의 말처럼 긴긴밤이 지나 아침이 올 것이라는 걸 알아요.

어머니, 저도 추수감사절에 초대받고 싶었어요.
갓 수확한 곡식과 한껏 무르익은 과일들,
향긋한 포도주와 함께 취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깨달았어요. 추수에 감사하며 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들 중 내 몫은 없다는 것을.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위한 의자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맞아요, 오늘이 그렇게 좋은 날은 아니었죠.
하지만 난 알아요. 삶이 고통은 아니라는 것을.
컵케이크처럼 달콤하진 않지만
언젠간 당신의 말처럼 긴긴밤이 지나 아침이 올 것이라는 걸 알아요.

어머니, 저는 알지 못했어요.
당신의 사계도 언젠간 멈출 것이라는 것을.
때 늦은 포도주에 취해 삶을 낭비하는 사이, 당신의 시간은 천천히 지고 있었다는 것을.
바람이 멈추는 공원에 서서 멍하니 당신을 그리워하며
어떤 것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맞아요. 맞아요,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은 아니에요.
하지만 난 알아요. 삶이 고통은 아니라는 것을.
컵케이크처럼 달콤하진 않지만
언젠간 당신의 말처럼 긴긴밤이 지나 아침이 올 것이라는 걸 알아요.

어머니, 어머니.
당신도 본 적 있는 그 이와 함께 살기로 했어요.
그리고 어느 봄, 마치 마지꽃과 같은 아이가 태어났어요.
그녀는 사랑스러워요. 마치 당신을 닮았죠.
어머니, 어머니.
그녀가 하늘을 날 수 없다면 어쩌죠. 이번 삶에서 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퍽 아픈 일인데 말이죠.
그녀가 꽃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지 못하면 어쩌죠.

모든 나무가 꽃을 피우진 못할 텐데,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가 그녀라면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까요. 그까짓 건 정말 아무 상관없는데 말이죠.
풍요로운 가을, 어느 파티에도 초대받지 못한 그녀가 슬퍼하면 어쩌죠. 외로움에 방황하는 그녀가 돌아올 곳을 가만히 지키며, 저의 시간이 지기 전에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도합니다.
어느 날, 나의 사계가 그녀의 사계보다 먼저 끝나는 날, 나는 말해줘야 할까요. 삶은 좋은 날보단 좋지 않은 날이 더 많다는 걸.


하지만 삶이 곧 고통은 아니란다.
좋은 날보다는 좋지 않은 날이 더 많겠지만
컵케이크처럼 달콤하진 않겠지만
그냥 한 번 살아가 보렴.
화창한 봄 한 번쯤 날아보지 못하더라도, 찬란한 여름 화사하게 꽃 피우지 못하더라도, 풍요로운 가을 어느 파티에도 초대받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한 번 살아가 보렴.
온통 긴긴밤인 것만 같아도, 너와 함께한 나의 삶은 사무치게 씁쓸하고 가슴 시리게 달콤했다.
그러니 한 번 살아가 보렴.
너의 삶, 너의 사계.
아침이 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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