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링」 01
비가 쏟아지던 목요일 저녁,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휴대폰에 찍혀 있는 ‘이모’라는 글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문득 『보바리 부인』을 쓴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떠올렸다. 그는 특정한 무언가를 가리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주장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이론을 곰곰이 되짚다가 생각했다. 만약 그가 옳다면, 내가 우리 이모를 부를 때 이모라는 낱말이 아닌 다른 낱말로 불러야 하는 게 아닐는지. 이모보다 훨씬 더 적절하고 적합한 표현이 존재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는지. 여태 단 한 번도 이모라는 호칭이 이상하다고 느낀 적 없었는데 그날따라 ‘이모’라는 글자를 보고 있자 상당히 마땅찮았다. 나의 이모인 도선주 여사가 이모라는 호칭을 듣기에 부족한 탓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모라는 호칭은 원칙적으로는 엄마의 언니나 여동생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조금 범위를 넓힌다면 엄마의 친구나 아니면 아예 처음 보는 식당 아주머니 등에게도 쓸 수 있는 말이기도 해서, 그 호칭 자체의 깊이가 도선주 여사를 담아내기에 상대적으로 얄팍하다고 여겨진 탓이었다.
그렇다 한들 이모를 대체할 어떤 표현이 쉽게 떠오르지도 않았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말문이 트기 시작할 무렵부터 엄마보다 도선주 여사를 볼 일이 더 많았기에 엄마, 엄마, 하는 것보다 이모, 이모, 하는 게 익숙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 삼십 년 가까이를 이모, 이모, 하다가 갑자기 아예 다른 호칭을 생각해 내는 건 아무래도 어려웠다. 게다가 우연히 어떤 괜찮은 호칭이 떠올라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겠다고 선언하는 날이 온다고 해도 그 새로운 호칭이 입에 밸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도선주 여사의 얼굴만 보면 습관적으로 이모라는 말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컸고 그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동안, 아니 어쩌면 앞으로 쭉, 도선주 여사를 대할 때마다 긴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할지도 몰랐다. 은근히 귀찮고 성가실 게 틀림없었다. 그냥 이모라고 부르는 게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일지도. 어차피 도선주 여사는 우리 엄마의 피가 섞인 진짜 친동생이기는 했으므로 사전적 의미를 따지자면 이모가 맞기는 맞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순간에 휴대폰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는 ‘이모’라는 글자를 바꾸고 싶어서 견디기 어려웠다. 버스 창문에 세차게 닿아 부서지는 빗줄기가 만들어 내는 일종의 비명과도 같은 빗소리를 계속 듣고 있어 더 그랬을 수도 있었고, 혹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남은 열기나 눅눅한 버스 내부 곳곳에 스며든 사람들의 들큼한 땀 냄새가 거슬려서 더 그랬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당장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조급한 심정에 사로잡힌 나는 일단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이라도 임시방편으로나마 바꿔 놓자, 하며 편집 버튼을 누르고 들어갔다. 과감한 두 번의 터치로 이모라는 두 글자를 서둘러 지워버리고선 이번에는 앞선 터치와 사뭇 다른 조심스러운 터치로 ‘도선주 여사’라고 썼다.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이모보단 낫지만 다섯 글자는 너무 긴 것 같았다. 다 지우고 이번에는 ‘도 여사’로 수정했다. 그래도 여전히 썩 만족스럽지는 않아서 아직 저장을 하지 않은 채로 한참 동안 화면을 응시하며 머리를 굴렸고, ‘도 여사’라는 세 글자도 다시 지운 뒤 고민을 조금 더하다가, 마침내 새로운 이름을 천천히 입력했다. ‘줄리아’. 그래, 줄리아. 줄리아야말로 도선주 여사와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로소 조금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저장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