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학교공부에는 전혀 관심 없이 하루 종일 소설책만 읽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에게는 엄청난 독서량에 걸맞은 재능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특히 그의 작문 중 백미는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연서로, 나는 그 어떤 책속에서도 그보다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의
문장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나 백일장에 한 번 나가봐야겠어.”
늘 책만 읽고 잠만 자던 그가 어느날 학교에 게시된 ‘전국 백일장 대회’ 공고를 보고난 후 진지한 얼굴로 내게 한마디 툭 내뱉고는 곧장 담임교사를 찾아가 전국 고교생 백일장에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담임의 반응은 냉혹했다.
“너 같은 놈이 무슨 백일장이냐, 인마. 가서 공부나 해”
글 솜씨를 뽐내는 백일장에 나가겠다는데 도대체 학업 성적이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제대로 알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단지 학업성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그는 비로소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키워낼 수 있는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의 적성을 발견하고 발굴하지 못한다면, 공교육은 방향을 잃는다. 교사는 단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의 꿈을 열어주는 존재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교실은 과연 어떠한가?
교사 권위의 소멸
원래 공교육은 기본적 학업지도 뿐만 아니라 학생의 적성과 꿈을 발굴하는 전인교육을 담당했고, 사교육은 단지 학업성적 향상을 위한 시험 대비 기능만 담당했다. 이 때문에 교사는 한때 사교육 강사보다 훨씬 높은
권위를 누렸다. 교사는 단순히 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생활과 인격을 지도하는 전인교육자로 존중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의 무게중심이 성적과 입시에만 맞춰지면서 교사의 역할은 점차 과목 강사 수준으로 축소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교육 강사와 직접 비교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특히 코로나 시기 온라인 수업이 본격화되면서 문제는 더욱 선명해졌다. 사교육 강사들은 준비된 콘텐츠와 강의력으로 학생을 사로잡았지만, 공교육 교사들은 준비되지 않은 채 급히 원격 수업을 시작하며 그 한계를 드러냈다. 더 심각한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공교육 역할의 전도다. 공교육이 지식 전달에만 머무르는 사이, 학원과 사설 컨설턴트들은 학생의 진로를 상담하고 적성을 지도하며 멘토 역할까지 맡고 있다. 본래 공교육이 담당해야 할 자리가 사교육으로 넘어간 것이다. 교권붕괴의 책임은 학생이 아니라, 스스로 본래의 역할을 포기한 교사에게도 있다.
방향성을 잃은 교육
꿈이 없는 교육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학생들이 학습의 목표와 동기를 찾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성냥불이 짧은 시간만 불을 밝히고 금방 꺼지듯, 방향성을 잃은 교육은 눈보라 치는 밤길을 성냥불로 하나
하나 밝히며 나아가는 것처럼 지속되지 않으며 쉽게 소멸되어 버린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순간, 교육은 생기를 잃는다.
꿈 없는 교실은 의욕 없는 교실로 이어지고, 사회 전체의 활력을 갉아 먹게 된다. 오늘날의 중등교육은 학생에게 꿈과 진로를 보여주지 못한 채 시험 성적을 위한 과제만 반복시키고 있다. 학생이 자신의 적성을 발견
하지 못하면 공부는 단순한 의무로 전락하고, 자기 주도적 학습은 불가능해진다. 중등교육은 단순히 대학
입시를 위한 중간 단계가 아니다. 학생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사회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시기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적성과 흥미를 시험해 보고, 장차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구상해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이 목적이 더욱 중요하다. 암기와 계산은 이미 인간의 고유 능력이 아니다. AI는 인간의
기억력과 연산 능력을 수십, 수백, 수천 배로 확장한다. 단순 암기와 반복 훈련은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며, 학생의 시간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 필요한 교육은 지식 주입이 아니라, 적성과 흥미를 바탕으로 자기 삶을 설계하고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능력이다. 성적은 출발선일 뿐 도착점이 아니다. 학생들이 자신만의 지향점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중등교육의 본래 자리다.
적성 지도와 진로 교육의 필요성
우리나라 공교육의 가장 큰 취약점은 적성 지도와 진로 교육의 부재다. 대부분의 학교에는 진로 전담 교사가 없고, 상담도 형식적 수준에 머문다. 반면 미국, 영국, 핀란드 등 교육 선진국에서는 학생 진로 전문 교사를
배치해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꿈을 체계적으로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는 이 영역을 공백으로 남겨
두었고, 학생과 학부모는 그 공백을 사교육의 진로 컨설턴트로 메우고 있다. 그 결과는 교육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돈이 있는 집안일수록 더 정교한 진로 지도를 제공받는다. 진로와 적성 지도는 선택적 과제가 아니라, 공교육이 반드시 책임져야 할 핵심 임무다.
교원 재배치와 교육의 질 개선
한국 교육은 모순적이다. 현장에서는 교사가 부족하다고 호소하지만, 수많은 교원 자격증 소지자들은 임용의 벽에 가로막혀 사회에 방치되고 있다. 그 사이 교사들은 여전히 20~30명의 학생을 동시에 맡아야 하니
개별화된 지도는 불가능하다. 이 문제는 교원 인력 재배치로 풀어야 한다. 풍부한 교원 인프라를 활용해
교사의 역할을 다층화해야 한다. 교과 내용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지식 교사, 학생의 꿈과 방향을 찾는 데
전념하는 진로·적성 교사, 기초 학습과 소규모 지도를 담당하는 학습 보조 교사를 함께 배치하면 된다. 학생당 담당 교사 수를 10명대 수준으로 줄여야 비로소 개별 맞춤형 지도가 가능하다. 핀란드의 팀티칭, 미국·영국의 전문 카운슬러 제도는 좋은 참고 사례다. 교사의 권위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성장을 돕는 과정에서 회복된다. 인력 재배치와 역할 다층화는 그 출발점이다.
교사의 권위는 사교육과의 지식 경쟁에서 회복될 수 없다. 지식 전달의 효율성과 전문성에서 사교육은 이미 압도적이다. 공교육 교사가 되찾아야 할 권위는 학생의 꿈과 적성을 발굴하고, 전인적 성장을 이끌어 주는 힘이다. 공교육이 본래의 자리를 되찾을 때 교사는 다시 학생과 사회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다.
학생들의 가능성은 교사의 눈길과 손끝에서 열린다. 그러나 교사가 단순 지식 전달자로 머문다면 그 가능성은 끝내 발굴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교실은 점점 의욕을 잃고, 교육은 방향을 잃는다.
교권은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교사 스스로 본래의 역할을 회복할 때에만 되살아난다. 학생에게 꿈을 찾아주고, 적성을 길러주며, 삶의 길을 함께 고민하는 순간, 교사의 권위는 다시 세워질 것이다. 만약 공교육이 이 역할을 외면한다면 교사와 학생 모두 길을 잃게 된다. 그러나 교사가 본래의 자리를 되찾는다면, 교육은 다시 학생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공교육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