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름다운 벗들

추억을 헤는 별들이 가슴위로 뜨는 밤

by Argos ryu

"맨날 그래싸니 니는 맨날 헛방인기라. 그기 바로 압력솥 좋은 거 사가, 뚜껑 열어 놓고 밥하는 꼴이니

맨날 꽝인기라.”

“내가 뭐!”

“니 꼴랑 버는 게 얼맨데. 아 앞으로 학원비에 어학연수에… 그게 니 제 정신이가. 니가 그 칸다꼬

아들이 우리 아빠가 이리 해줬다고 고마워 할 거 같나”

"나또라, 그나마 어학연수로 그치이 얼매나 다행이고. 유학 안 보내는 것만 해도 절마는 대단은기라"

"유학은 안되여, 절대 안되여, 울 아부지 말씀이 가족은 전쟁 아니면 절대 떨어져 사는 거 아이라 했으여"


연말, 오랫만에 고교 동창들끼리 송년회나 하자고 모인 자리였다. 영일이가 남매들 방학 계획을 꺼내자,

성구가 독 오른 두꺼비마냥 대뜸 쏘아붙였다.


“말레이시아는 얼마 안 들어여.”

“일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니 거기 제수씨하고 애 둘이 보내서 한 달 보름 살아봐라.
니 한 달 월급은 초장에 후딱이다.”

“괜찮아여. 통장에 마이너스 삼천이나 사천이나, 별 차이 없으여.”


영일의 팔자 좋은 소리는 성구의 속을 더 뒤집어놓았다.


“일마, 니 자리 지금 위태위태하다매. 새로 지은 사업장도 곧 문 닫는다매.”

“아 참, 괜찮다니까 그래여. 술이나 마셔여.”


외가인 충북 영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영일은,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동기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그래여~', '안 그래여~' 하고 말끝을 흐리는, 특이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아이였다.


“그라믄 니는 아들 방학에 해외 다 보내고나면 이 긴긴 겨울밤, 뭐 하고 살 낀데.”

“애들도 괴롭히는 마누라도 없으이, 넷플이나 실컷 보고 골프 연습장이나 댕기는 거여. 이리 연습하다가
내년 봄엔 싱글 되겄어. 인생 뭐 있으여.”

“지랄. 장히 싱글 치겠다. 백도 못 깨는 놈이 주디는 아주 프로지, 프로.”


“영일아, 너거 회사 보니 회장 아들 전면에 내세우던데. 맞나?”

“그렇다 카네. 회장 아들이 팔오 년 생인가 그런데… 씨파. 이거 취직해서 지금까지 노인들하고 삼팔육

형님들 치다꺼리 하다가, 이젠 팔공 년 생들한테 쫓겨나게 생깄으여. 나도 팀장 자리 뗐으여.”

“ㅋㅋㅋ, 그라믄 니 이제 실무 다시 하나?”


수형이가 거든다.


“할 거 뭐 있으여. 후배 팀장 아들 모시면서 슬슬 놀면 되지. 일 없으여. 맨날 놀아여.”


영일은 산업공학을 전공한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신사업이 계획되면, 거기에 맞는 최적의 입지를 고르고

공장을 세웠다. 인력을 모집하고,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양산 시 손익분기점(BEP)을 맞출 수 있도록 셋팅하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였다. 입사 후 한동안 인터넷 버블, 모바일 부품 확대, 반도체 호황, 중국 시장 개방 등 굴직굴직한 호재들이 계속 이어지며 그를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는 끝이 없었다. 덩달아 그의 경력도 한껏 치고 올라 여기저기 오라는 곳도 많이 있었고 지금 몸 담고 있는 회사에서도 본부 임원 승진이 눈앞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전기차라는 복병이 그를 가로막았다.


“너거 회장, 진짜 그 사업 접을라 카나?”

“그란다 카네. 아들한테 있는 거 다 팔고, 끝내라 캤다 카네.”

“그라믄 니는? 니는 우짜노?”

“몰라여. 몇 년 공장 정리하러 돌아댕기다가, 집에 가겠지. 더럽게 걸렸으여.”


전기차 붐을 타고 기업들은 저마나 신사업 확대를 위해 전기차 관련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영일의 회사도

전기차 배터리용 소재를 생산 공급하는 비즈니스에 뛰어 들었다. 다행히 아주 초기부터 뛰어든지라 영일은 육칠년 동안 국내외 주요 거점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고 셋업하는 일에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하다보면 신사업 발굴의 개국공신이 되어 새롭게 등극하는 어린 회장과 그의 인생도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셋업 후 본격적 양산을 눈에 앞두고 제품의 수요는 공장의 정상적인 가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라앉았다. 영일도 언론에서 말하는 '캐즘'이란 용어로 두어해 버텼지만 이제는 그것도 힘들어졌다. 산업은 그야말로 '리세션', 구조적 침체로 빠져 들고 있었다. 회사 기획실은 사업의 전면 철수를 결정했고 영일은 자기가 지은 공장들을 자기 스스로 매각하는 일에 뛰어 들었다.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스스로 모래성을 만들고 허무는 셈이었다.


"너거 이거 함 무봐라"


수형이 갑자기 가방에서 갈색 음료가 든 손가락만한 앰플을 꺼내 돌렸다.


"이게 뭐꼬"

"내 얼매전에 월남 출장 갔다 왔는데 가들이 술 마실 때 이게 그리 좋다고 주데, 개안아가 오는 길에

잔뜩 사왔네. 술 마실 때 함 무봐라"

“아따마, 술은 그마이 쳐 마시고 건강은 언간히 단디 챙겨쌌네.”

"건강히 제일이다 인마. 우리 예전처럼 마시면 다 죽는다"

“글취, 일마들아! 우리도 예전 같으면 작은 집 얻어가 막둥이 재롱보며 환갑잔치 준비할 나이다.”

“크크크, 우리 할배는 내 나이에 손주, 외손주가 일곱이었다.”

“맞지, 우리도 이제 노인맞지, 한 노인.”


스무 살에 서울로 유학와서 이제는 모두 지방에서 보낸 세월보다 서울에서 산 시간이 곱절도

넘었으나 이렇게 모이면 우리는 여전히 어릴 적 모여놀던 촌 아이들 그대로였다. 달라지 것이

있다면, 불과 오륙 년 전만 해도 자주자주 뭉쳤는데 요즘은 저마다 바쁘다는 사연이 뭐가 그리

많은지, 송년회를 모처럼 벼르고 해도 대여섯 정도만 겨우 모일 수 있었다.


매번 연말만 되면 열병에 걸린 아이들처럼 지나간 해를 매섭게 흘려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기운에

들떠 신이 났지만 이젠 모두 연초든, 연중이든, 연말이든 별다른 감흥이 없이 매일 같은 시간을 버티고

살고 있는 쉰 중반의 중늙은이가 모두 되어 버린 것이었다.


"괜찮아여, 다 필요없으여. 마셔여. 마셔"


술을 급하게 마신 영일이 군시렁대자 나는 그를 끌어안고 말했다.


“김프로님, 당분간 행복한 독거중년이 될 낀데 오늘만 날인가. 오늘은 작작 드셔.”


눈이 풀린 영일은 외쳤다.


"야 야 먹고 죽으여, 죽어. 먹고 죽으면 돼여!"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