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름다운 벗들

멀어져버린 이 세상에서 난 꿈같은 거 믿지 않아

by Argos ryu

“동정이 애기 들었나.”

“동정이? 김동정이? 글마 나 제대하고 시내 도서관에서 한 번 보고 못 봤네. 고시 공부 한다 카던데.”

“글치. 글마 행시 재경직 오래 했었지. 근데 죽었다 카네.”

“동정이가 와?”

“글마 행시 계속 하다가 안 돼가, 지방 공무원 공부 몇 년 더해가 K시에서 공무원 했는데, 퇴근하고 읍내서

대포 한 잔 하다가 그냥 꼬꾸러졌다 카네.”

“글마 K대 안 나왔나.”

“어, 맞아. K대 경제학과.”

“글마 공부 잘 했었는데.”

“동정이 아부지가 막내아들 서울 못 보낸다꼬 K대 안 갔나.”

“장가는 갔나.”

“어. 같은 부서 직원하고 했다. 한 십 년 좀 넘었을 끼라. 동정이하고 내하고 1학년 때 한 반이라, 난 그때 갔다 왔다. 아따, 그때 보이 동정이 아부지 아직도 정정하시던데.”

“아직 살아계시나.”

“몰라. 아직 살아계실랑가. 울 아부지보다 한 열 살은 많으실 낀데.”

“아는 있나.”

“사나 하나 있을 끼다. 아직 초등학생일 끼고.”

“허허, 거 참. 그라믄 아는 누가 키우노.”

“몰라. 아, 엄마가 안 키우겠나.”

“내 가만히 보니 심장마비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드라.”

“그거 심근경색 아이가.”

“이거 심장마비는 어데 티비 전원 끄듯이 그냥 꺼버리니, 억 소리도 못 하고 가드만. 올해 나도 거래처 아는 분 두 분이나 심장마비로 가셨네.”


항상 교실 앞자리에 앉았던 눈가에 웃음 자글자글하던 아이 동정이가 고인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모두들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보려 무던히 애써보지만 이런 애기를 들을때마다 우리가 잡고 있는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생각에 이내 허망해졌다.


“원도 요새 잘 나간다 카던데?”

“글마는 광화문 근처서 커피숍 한다 안 캤나.”

“몰라. 말이 하도 많아서 샐러드 가게 한다 카는 놈도 있고, 도시락 장사 한다 카는 놈도 있고.”

“원도 글마 회사 선배들하고 광화문 가게 공동 출자했다 안 캤나?”

“그랬었지.”

“그라믄 그게 대박 났다는 기가.”

“그게 아이고, 선배들하고 같이 차리긴 차렸는데 지가 막내다 보니 공동 출자해놓고 휴일에도 맨날 지만

나오고, 퇴근해서도 맨날 지만 정산하러 가고, 회사는 회사대로 혼자 졸라 바쁘고 가게는 가게대로 지만

조빼이치고. 그카다 이 놈 저 놈 다 꼴보기 싫고 해서 나왔뿌따 카던데.”

“어딜, 회사를 샐러드 가게를?”

“둘 다. 회사 인간들도 꼴보기 싫고 해서 지분 빼서 나왔데.”

“이야, 글마 대단하네.”

“원래 글마 독해여. 눈 돌아가뿌면 아무도 못 말리여.”

“그동안 지가 좆 빠지게 운영하며 배운 것도 있고 해서, 아예 차리뿠다 카네. 이젠 자리 잡아 꽤 유명하다

카던데.”

“원도 그동안 고생 많았는데, 일찌감치 독립 잘 했네.”

“원도 가게 가면 그냥 주나?”

“이런 미친. 일마, 니가 가서 사주지는 못할 망정, 내일이라도 너거 회사에 샐러드 도시락 한 번 돌리뿌라.”


“조상무도 잘 된다 카더라. 글마 금융권에서 유명하던데. 영업 잘 한다꼬.”

“조원철이야 원래 뭐든 잘하잖아. 탈도 좋고.”

"원철인 오늘 와 아 나왔노"

"약속있다 카더라"

“올해 금융사는 실적 좋아 성과금 짭짤할 낀데.”

“가들 버는 것도 버는 거지만, 짤릴 때도 한 방이라 챙길 때 챙기야지.”

“원철이 걱정은... 일마 니 걱정이나 해라. 집 두 채에 상가도 하나 있다 카더라.”

“아무리 벌어도 그쪽 영업하는 아들 번 돈 절반은 고객 관리비로 다 내어 놓는다던데.”

“지 알아서 하겠지. 지금 잘 버는 데 뭐가 걱정이고.”

“니는 이제 집 샀나?”


세원이의 '집 샀나'라는 세글자가 폐부에 깊게 박혔다.


“……”

“니 아직 셋방 살이가?”

“은퇴하면 시골 내려갈 낀데, 서울에 집은 사가 뭐 하노.”

“니 내려갈 끼가?”

“노후 입에 풀칠할 것만 준비해 놓고 내려가야지.”

“동수, 니 이제 입사한 지 얼매 됐노.”

“스물일곱 년.”

“일마, 이거 제일 미스테리네. 저렇게 변덕이 들끓던 놈이 우째 한 회사만 그렇게 오래 다녔노.”

“살다 보이, 그리 되었지.”

“니 임원 될 때 안 되었나.”

“우리 임원 자리 만만치 않다. 대여섯 자리밖에 없어.”

“일마, 맨날 수건 덮어쓰고 꽥꽥 노래 부르고 댕기더니 가수라도 될 줄 알았드만. 어데 트로트 경연이라도

나가봐라. 요새 트로트해가 한 방 뜨면 인생 끝나던데”

“가수는 무신. 동수 아부지 장히 가만 계시겄다. 니 박가네 장손 우습나? ㅋㅋ”

“이 나이에 무신. 야, 대한민국에서 절대 도전하면 안 되는 게 두 가지 있다. 가수하고 골프선수.”

"춤도 추면 안돼! 경쟁력 없어"

"그카믄 요새 아들은 뭐하고 살아야 하노?"

"공부해야지, 공부가 제일 쉬어여"


집도 아버님도 박가네 장손 애기도 버거워 화제를 슬쩍 돌려본다.


“너거는 정년까지 얼매 남았노.”

“재수 좋으면 한 십 년? 정년 연장 한다 카이.”

“우리 나이까지는 정년 연장 혜택 받겠든데. 그래만 되면 어디 지방 사업장이라도 가서 끝까지 버티고

있어야지.”

“너거는 정년하면 돌아갈 끼가.”

“어데로.”

“T시로.”

“돈 있으면 서울 살지. 이제 글로 다시 가서 우짜노.”

“나도 부모님 안 계시면 거기 갈 이유가 없다. 이제 남은 친척들도 없고, 동생들도 다 여기 살고.”

“그카믄 전원주택?”

“야, 아서라. 그것도 마누라가 가야 가지.”

“너거 와이프는 안 좋아하나.”

“말마라. 전원주택 투자하자 카니, 혼자 가소 카고 간단히 끝내더라.”

“야, 우리 은퇴하면 산 좋고 물 좋은 인구 소멸 도시 하나 골라가 집단 이주해서 살까? 돈 모아가 스크린

골프장도 하나 만들고.”

“그런데 가믄 노후 연금도 빵빵하나?”

“인구 소멸 도시에 한 오십 명 몰리 가면 군수가 플래카드라도 걸어야지. 암.”

“거 가서 아 놓으면 한 천만 원 줄 낀데.”

“ㅋㅋ 닌 은퇴하고 아 낳을 끼가.”

“못 낳을 게 뭐 있어. 아직 짱짱한데.”

“니만 짱짱하면 되나, 인마. 제수씨는 우짜고.”

“그러면 작은집? ㅋㅋㅋ”


“그카지 말고, 동수 동네로 가자.”

“동수 동네도 가믄 돈 주나?”

“동수 동네뿐이겠나. 요새 촌에 사람 없으여.”

“니 농사는 지을 줄 아나?”

“저게? ㅋㅋ 농사는 무신. 농사도 주디로 지을 낀데, 마 니가 다 해야 돼.”

“동수야, 너거 동네에 우리 다 살 자리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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