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웅이네 삼촌은 매일 삽을 들고 땅굴을 판다. 기웅이네 집을 둘러싼 나무 언덕 낮은 쪽에 매일매일 삽으로 흙을 파내어 동굴을 만든다. 이른 봄부터 시작한 땅굴 파기는 이제 기웅이, 나, 기웅이 삼촌 셋이 들어서기에는 너무 크다.
“인제 많이 커졌네요. 언제까지 파야 돼요?” 내가 물었다.
“아직 멀었어, 동네 사람 다 들어갈 수 있어야 해.”
기웅이 삼촌은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그런데 동굴은 왜 파요?” 늘 궁금해하던 바를 물었다. 기웅이 삼촌은 이제 삽을 내려놓고 땅바닥에 털썩 앉아버린다.
“아, 동굴을 파는 건 나쁜 사람들이 쳐 내려오면, 그리고 비행기로 폭탄을 떨어뜨리면 들어가 숨어있으려고 그러지.”
기웅이 삼촌은 유난히도 얼굴빛이 하얗다. 목소리도 굵지 않고 가늘어 빠지다. 어른들 말로는 전 쟁 때 노무대인가 하는데 가서 일하는 동안 결핵이라는 병을 얻어 왔다는데 늘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낮에는 많은 시간을 기웅이 삼촌이 굴을 파고 있는 기웅이네 나무 언덕에서 놀았다. 어제는 기웅이네 마당가에 있는 토끼집 앞에서 토끼를 보고 있는데 기웅이네 검둥이가 내 종아리를 덜컥 물어 버렸다. 검둥이는 기웅이네 아버지에게 끌려가 야단을 맞았고 오늘은 단단한 줄에 매어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 집으로 와서 어머니가 주시는 고구마 세 뿌리를 먹고 다시 기웅이네로 가는 것이 내 오후 일과의 시작이다.
기웅이 삼촌은 좀 늦게 나오셨다. 다시 흙을 몇 삽 파내다가 힘이 드는지 삽을 내려놓고 편한 자 세로 앉는다. 나와 기웅이는 기웅이네 마당과 대나무 언덕을 맴돌며 놀고 있다. 한참이나 놀고 있는데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린다. 기웅이네 삼촌은 이제 퉁소를 불고 있다. 대나무를 잘라서 다듬은 뒤에 몇 개의 구멍을 만들고 입술 닿는 부분을 얇게 다듬어 만드는 퉁소는 조용하면서 어딘가 좀 슬픈 소리를 내었다. 참말로 이상하다 왜 그리 슬픈 소리를 내는지 모르겠다.
“삼촌, 퉁소는 왜 불어요?” 내가 물었다.
“아, 이거? 이 퉁소를 매일 불고 연습해서 아주 잘 불 수 있을 때에 달 밝은 밤 높은 산에 올라 불 어대는 거야. 그러면 하늘에서 날개 달린 천리마가 내려온대. 그러면 나는 천리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거야.”
기웅이 삼촌은 친절하게 얘기를 해주셨지만 나와 기웅이는 마음이 좀 이상해졌다.
“천리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 그러면 다시 내려오지는 않는 거야?” 다시 물어보니 기웅이 삼촌은 하늘에 올라가면 그곳이 너무 좋아서 내려올 생각이 아주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둘이는 기웅이 삼촌 땅굴 파는 곁에서 맴돌며 이야기 들으며 봄은 지나갔다.
여름이 되어서도 기웅이 삼촌은 땅굴을 팠다. 이제는 동굴 안이 길고 넓어져 나 같은 애들은 스무 명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이다. 기웅이 삼촌이 땅을 파며 힘들면 앉아서 쉬고 가끔은 퉁소도 불고 하는 곁에 우리는 놀았다. 논틀로 한참을 걸어 옛날에 금을 캐려고 만들었다는 못에 가서 미역도 감고 돌아오는 길에 냇가에 가서 섶을 뒤져 붕어도 잡곤 했다. 이렇게 여름도 지났다.
가을은 절골 뒷산에 올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소식과 함께 왔다. 기웅이와 함께 놀기도 하고 때로는 어머니 따라 밭에 가서 녹두나 팥 꼬투리도 따는 일도 했다. 좀 시원해진 바람이 부는 밤 꿈을 꾸었다. 식구들 모두 잠든 밤, 창밖이 너무도 밝은 밤이다. 푸른 달빛을 따라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자세히 들으니 그건 기웅이 삼촌의 퉁소 소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사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퉁소 소리가 어디서 오는가 둘 러본다. 앞에 우뚝 선 산이 있고 그 꼭대기에서 기웅이 삼촌의 퉁소 소리가 들린다. 크지는 않지만 뚜렷한 소리다.
“앗차” 나는 기웅이 삼촌의 퉁소 소리가 틀림없음을 느끼고 앞산으로 향했다. 무척이나 가파른 산 이어서 두 발로 걸어 올라가기 힘들어 손으로 땅을 짚으며 기어서 오르다시피 해야 했다.
풀숲을 헤치고 열매가 제법 굵어진 도토리나무 옆도 지나며 한참을 올라 드디어 꼭대기에 다다랐다. 나는 작은 소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살펴보았다. 저편 낮은 바위 위에 앉아있는 기웅이 삼촌이 보였다. 역시 퉁소를 불고 있다. 평소 듣던 땅굴 파다가 앉아서 불던 퉁소 소리보다 훨씬 맑고 고운 소리다. 솔섶 뒤에 숨어 앉아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눈과 귀를 모아 본다. 평소보다 더 약한 고 가련해 보이는 기웅이 삼촌의 모습이다.
기웅이 삼촌의 퉁소 소리가 한참을 흐른 뒤에 하늘 서편에서 보랏빛 구름 한 점이 일기 시작한다. 하나의 점으로 일어난 구름은 점점 커져가면서 이리로 온다. 기웅이 삼촌이 얘기하던 천리마인 가 보다. 점점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구름을 헤치고 달려온 천리마는 산마루에 이르러 기웅 이 삼촌 옆에 내려 빨리 타라는 듯 무릎을 낮춘다. 퉁소를 불던 기웅이 삼촌은 일어나 천리마에게 로 다가가 등에 올라탔다. 천리마는 무릎을 펴고 일어나 하늘을 달리기 시작한다. 보랏빛 구름을 몰아 하늘을 달리는 천리마는 점점 작아져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지더니 눈앞에서 사라 져 버렸다. 나는 솔섶에서 일어나 하늘을 달리는 천리마와 기웅이 삼촌에게 손을 흔들었다. “삼촌, 잘 가요.” 소리치면서 ㅡ
누가 내 등을 두드린다.
“낮에 너무 많이 돌아다니니, 잠꼬대를 하지.”
이불을 덮어주며 나를 다시 재우시는 어머니. 모두가 꿈이었다.
오늘은 절골에 사는 외사촌형과 알밤 주우러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외사촌형과 밤나무 밭으로 갔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알밤을 주워 주머니에 담았다. 한나절을 주워 주머니가 알밤으로 가득 찼다.
외사촌 형과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을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집에 거의 다다르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웅이네 집과 집 앞 길에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가 흰 옷을 입은 채로 기웅이네로 간다.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 오니”
어머니께서 흰 옷차림으로 사립문을 나오신다.
“기웅이 삼촌 돌아가셨단다. 그렇게 고생을 하시더니.”
나는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춰 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