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은 초가집이지만 제법 큰 집이었다.
길게 지어진 윗채에는 나뭇간과 부엌광이 딸린 큰 부엌과 안방과 웃방 중간에 있는 대청을 지나 건너방이 있었고 아래채엔 중간에 넓직한 대문을 가운데로 하고 그 왼쪽으론 사립으로 엮어세운 작은 문 그 옆에는 아랫방 오른쪽으로 바깥쪽으로 든든한 마루를 갖춘 두 개의 사랑방이 있었다.
안방과 웃방에는 우리 식구들이 살고 있었고 건너방에는 6.25때 서울에서 내려온 삼종숙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사랑방을 쓰셨다.
내가 열 살을 갓 넘겼을 때 몹시 더운 여름날 밤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너무 더운 방안을 피해 사랑방 마루에서 홑이불을 덮고 주무시고 있었다. 홑이불은 이불의 속을 빼어내고 겁대기만 사용하는 여름철 덮개를 말한다.
아버지께서는 홑이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신 덮으시고는 머리엔 목침을 벤채로 낮의 피로가 밀려 깊은 잠을 주무셨다. 아버지께서 주무시는 사랑방 마루 아래로는 나의 목에 닿을 정도의 아래로 토방이 있고 토방 밑으로는 무릎 닿을정도 아래로 마당이 있고, 토방앞 마당 건너에 두어칸의 돼지집이 있었다. 자정이 지나 마실가셨던 건너방 삼종숙께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마당앞 동네로 나가는 길 옆에는 나이가 많아 우리또래의 아이들이 서너명이 올라앉아 놀수 있는 탱자나무가 있다.
삼종숙께서는 탱자나무밑을 지나오시면서 아버지께서 주무시고 있는 사랑방 마루앞에 있는 무엇을 발견하셨다. 마당에 뒷발을 디딘채 주무시는 아버지를 향해 길게 엎드려 있는 것, 그것은 짐승이었다. 삼종숙께서는 너무 놀라셨지만 침착한 태도로 아버지를 깨우셨다.
“여게 여게 저것이 뭐라나?” 삼종숙께서 아버지보다 생일이 몇 달 빠른 동갑내기 이셨다.
아버지께서는 낮의 피로가 너무나도 무겁게 몰려와 쉽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셨다.
“여게 여게 저것이 뭐라나?”
삼종숙께서는 몇 번을 반복해 소리치셨는데도 토방에 엎드린 짐승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거듭외치는 삼종숙의 음성에 가까스로 잠을 깨시어 홑이불 걷어헤치고 앞을 보셨다. 어둠속에 바로밑 토방에 엎드려 있는 짐승. 그것은 개나 고양이가 아닌 큰짐승이었다.
“뭐야 너 왜 여기 와있어. 어서 가거라. 앞에 있는 짐승은 아버지의 외침에 꿈적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베고 주무시던 목침을 들어 마루짱을 큰 소리가 나도록 내리치며 외치셨다.
“어서 가, 산에 사는 짐승이 왜 여기 내려와 이러고 있어.”
몇 번이나 거듭된 아버지의 외침 끝에 그 짐승은 앞발을 내려 고개를 돌린 후에 뒷산으로 향한 길로 어슬렁 어슬렁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께서는 사랑방으로 들어가시고 삼종숙께서도 안채로 들어가셨다.
곤한 여름밤이 지나 아침이 되었다. 이른아침 잠결에 두세두세하는 어른들 소리에 깨어 밖으로 나갔다.
바깥마당 한편 지난 장맛비에 쌓인 모래위에 어른들은 여기저기 동그랗게 표시를 하고 있었다.
어른 손바닥을 쫙 편 크기의 동그라미 안에 꽉 들어찬 짐승의 발자국 그것들은 모래위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호랑이가 왔었어.”
아버지와 삼종숙께서는 모여선 이웃들에게 어제밤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 뒤로도 호랑이 이야기는 가끔씩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그러나 직접 봤다는 얘기보다는 옛날 이야기이거나 전해들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나의 큰 아버지께서는 어느날 밤에 산길을 지나시는데 옆에 언덕에서 “휘익”하고 머리위로 뛰어 건너편 짐승을 보셨다는데 그 짐승 역시 호랑이었던 것 같았다고 하셨다.
나 초등학교 다닐 때 겨울방학 건강체험 행사로 토끼몰이가 있었다.
4학년 이상 전교생이 같이하는 이 행사는 산머리에 그물을 길게 쳐 놓고 산 아래로부터 소리치며 토끼를 몰아 그물에 걸리게 해서 잡는 겨울철 단체운동이었다.
장곡면 지정리 삼박골 왕솔밭에 다다르니 동네분이 말하셨다.
“여기는 호랑이나 큰 짐승을 잡기위해 짝쇠가 놓여있는 곳이 더러 있으니 조심해야하는 곳이네.”
짝쇠는 큰 짐승을 잡기위한 덫을 말하며 짝쇠에 발을 치면 부러지거나 크게 다칠수 있다고 했다.
후에 나도 어른이 되어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호랑이 출몰사건 이후 2-3년 지난 겨울 그러니까 60년대 초 장곡면 대현리 밑자락 산줄기 칼바위라는 곳에서 그동네 사람 하나가 함정을 파서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뒤로는 호랑이는 우리들 곁에서 사라져 옛날얘기나 책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