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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루(The Crew)가 선사하는 몰입형 체험

- 레이싱 게임의 경쟁 구도 / 더 크루 모토페스트 리뷰

by 랑글렛


내 인생 네 번째 레이싱 게임(NFS, Forza, F1)인 더 크루 모토페스트를 최근 경험했다. 높은 자유도와 아름다운 하와이 풍경, 다양한 기기와 질주까지. 무엇보다 가벼운 접근성이 마음에 들었다. 스토리로 전개되는 게임은 엔딩을 봐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게임성이 독특하면 시스템을 배워야 해서 쉽게 손이 가지 않고, 경쟁이 주축인 게임은 순위에 집착하게 되어 피곤하다. 그러나 더 크루는 아무 때나, 아무 걱정과 근심 없이 실행만 하면 눈앞에 간편한 힐링 생태계가 펼쳐진다.



※ 레이싱 게임 생태계 - 더 크루 vs 포르자 호라이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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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루(The Crew) 시리즈는 유비소프트 아이보리 타워(Ubisoft Ivory Tower)가 개발한 게임 시리즈다. 유비소프트의 산하 스튜디오로, 본래부터 레이싱 장르가 주축이었다. 유비소프트야 워낙 큰 회사(직원 수 1만 7천 명대 / 시총 약 15조 원 추정)다 보니 손을 안 대본 장르가 없다. 오픈월드 액션이 가장 주목받지만, 전략, 슈팅, RPG, 스포츠, 시뮬레이션 등 장르 다양성만 보면 유비는 세계 최상급 게임사다. 레이싱 타이틀도 더 크루를 비롯해 트랙매니아(Trackmania), 트라이얼스(Trials), 라이더스 리퍼블릭(Riders Republic) 등 라인업이 있지만, 이중 카레이싱 기반 AAA급 오픈월드 레이싱 게임은 더 크루 시리즈가 유일하다.


더 크루는 출시 초기부터 높은 관심과 흥행을 이뤄냈다. 2014년에 출시된 1편은 첫 해에만 약 200만 장 이상을 판매하며 폭발적인 시장 반응을 이끌어냈다. 4년 뒤(2018) 출시한 2편은 초기 반응은 1편에 비해 약했지만, 대기만성형으로 성장해 누적 3천만 플레이어 수(1+2편 통산)를 기록했다. 1편이 서버 종료 이슈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2편은 후속작인 모토페스트가 출시되었음에도 꾸준히 유저층을 유지하는 중이다. 모토페스트는 시리즈 역대 가장 빠른 판매 기록과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호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더 크루 시리즈는 유비소프트의 명실상부한 대표 프랜차이즈다.


화면 캡처 2025-11-15 164402.jpg 더 크루 1의 서버 종료는 패키지 게임도 수명이 있다는 것을 상기한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라이브러리에 보존되어 있지만, 정작 플레이는 할 수 없게 된 것.


하지만 더 크루는 레이싱 게임 프랜차이즈 ‘3대장’의 구도를 흔들기엔 부족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레이싱 장르의 대표격은 포르자(Forza) 시리즈,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 니드 포 스피드(NFS)다. 포르자는 오픈월드 레이싱의 절대적인 위치에 있으며, 누적 유저 수 1억 명 이상으로 추정될 정도의 압도적인 성과를 냈다. 레이싱 장르의 기준점이 된 시리즈라고 평가받는다. 그란 투리스모는 콘솔 레이싱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다. 현실적인 드라이빙을 대표하며, 플레이스테이션(PS)의 기둥 프랜차이즈다. 니드 포 스피드는 레이싱 게임 대중화를 이끈 캐주얼 레이싱의 아이콘으로, 한때 ‘레이싱 게임 = NFS’였던 시절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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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프랜차이즈는 글로벌에서도 메이저로 분류될 만큼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NFS의 성적이 예전만 못하지만, 역사와 IP 파워만큼은 굳건하다.


* 그란 투리스모(GT) = 리얼리즘, 하드 레이싱

* 포르자(Forza) = 오픈월드 / 심레이싱 장르의 대표격

* 니드 포 스피드(NFS) = 캐주얼 레이싱의 상징


이중 더 크루의 경쟁자는 바로 포르자 호라이즌이다. 오픈월드 레이싱의 왕좌 포르자는 2005년부터 시작해 20년 세월 동안 꾸준한 성공을 이어오며 레이싱 장르의 1티어로 안착했다. 2012년 첫 출시된 포르자 호라이즌은 미국 콜로라도를 배경으로 한 오픈월드 레이싱 장르로 호평받았으며, 호주를 배경으로 한 3편에서 메가 히트를 달성했다. 5편은 출시 일주일 만에 1천만 플레이어를 돌파하며 시리즈 역대급 흥행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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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자 시리즈는 트랙 시뮬레이션 장르인 Motorsport, 오픈월드 레이싱인 Horizon 시리즈 두 갈래로 나뉜다. 모터스포츠는 그란 투리스모와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으며, 호라이즌은 오픈월드 장르의 절대적 지배자급이다.)


이 높은 아성에 대항할 만한 적수는 더 크루가 유일하다. 실제로 더 크루는 2편부터 높은 완성도와 흥행 지속성을 바탕으로 오픈월드 레이싱 장르에서는 포르자 호라이즌에 비견되는 유일한 프랜차이즈다. 두 게임은 비슷한 듯하지만 철학적으로는 많이 다르다. 포르자 호라이즌은 하나의 페스티벌이 중심이 되어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하는 구조로, 일종의 테마파크형 레이싱 게임이다. 더 크루는 보다 여행과 탐험이라는 오픈월드 정신을 지향한다. 넓은 맵을 기반으로 도시 간 이동이 가능하고, 다양한 경관의 변화가 뚜렷하며, 2편부터는 자동차에 더해 보트와 비행기까지 추가하면서 ‘스케일과 다양성’이라는 차별화 전략을 꾀했다.


여러 리뷰어나 유튜브 영상들이 말하는 두 게임의 차이점은 ‘차량’과 ‘물리엔진’, 그리고 ‘탈것’이다. 포르자 호라이즌은 ‘자동차’에 진심이다. 제조사 라이선스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으며, 약 600대 이상의 차량이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더 크루도 자동차 수는 비슷하다. 그러나 구현 품질과 표현에서는 포르자에 비해 밀도가 확연히 떨어진다. 주행에서도 포르자는 ‘진짜 자동차를 조작하는’ 느낌이 강한 데 반해, 더 크루는 무게감이 가볍고 아케이드성이 짙다. 이밖에 엔진과 파손 표현 등 리얼리즘의 영역에서도 더 크루가 한참 밀린다.


그러나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난해한 기준일 수 있다. 포르자 호라이즌은 자동차가 핵심인 게임으로, 실제 자동차 박물관에 가까울 만큼 디테일과 큐레이션에 공을 들였다. 더 크루는 다양한 문화 체험과 콘텐츠에 집중한 케이스다. 호라이즌이 ‘수집’ 중심이라면, 더 크루는 ‘체험’ 중심의 경험으로 대변된다.



※ 더 크루 모토페스트가 선사하는 차별화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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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고나서 하와이에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


더 크루 시리즈의 최신작인 모토페스트는 하와이 오아후 섬 전체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축소된 스케일이긴 하지만 면적이 꽤 넓고, 호놀룰루(도심), 다이아몬드 헤드(화산), 노스쇼어(서핑 해변), 쿠알로아 랜치(산악 지대) 등 유명 로케이션들이 착실하게 재현되어 있다. 오아후 드라이브 감성을 느끼기에 제격이며, 보트를 타고 라군을 질주하거나 비행기를 조종해 화산 분화구에 접근하는 등 자유도 높은 경험이 가능하다.


화면 캡처 2025-11-15 165102.jpg 직관적이고 심미성 좋은 UI/UX 구조


게임 시스템은 플레이리스트 중심으로 전개된다. 메인 메뉴에서 각기 다른 테마로 구성된 미니 캠페인을 둘러보고, 원하는 것을 선택해 5~10개로 구성된 에피소드를 체험한다. 마치 넷플릭스 메뉴에서 원하는 작품을 골라 감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유롭게 오픈월드를 돌아다니며 구간별로 발생하는 이벤트나 에피소드에 참여해도 무관하다. 각 캠페인의 요구 조건을 달성하면 게임 머니로 구매할 수 없는 스페셜 차량을 얻을 수 있고, 보상도 함께 제공된다.


이 캠페인의 몰입도가 상당하다. 각 캠페인별 도장 깨기를 부추긴다. 명확한 보상(특히 리미티드 차량)이 존재하기에 중간에 멈출 수가 없고, 테마도 다양해 즐길 거리가 많은 엔터테인먼트 패키지 같다. 현실에 존재하는 레이싱 문화와 브랜드, 유명한 인물들과 직접 연결되는 등 협업으로 완성된 콘텐츠들이 풍부하고, 콜라보레이션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 최근 『F1 더 무비』의 인기에 힘입어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 F1 팀과의 콜라보가 진행됐는데, 이 캠페인을 완료하고 받은 레이스카를 조종하며 한동안 뿌듯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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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Crew-Motorfest-adds-luxury-car-playlist-new-Year-2-Pass-car.jpg 캠페인 스타일도 다채롭다


캠페인 구성이 단순 소모적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도 좋았다. 각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하면 인트로 컷신이 나오는데, 제작 퀄리티가 정말 높다. 전문 영상 제작자가 만든 것처럼 스타일리시하고, 캠페인에 대한 전반적인 목적성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다른 레이싱 게임이 이벤트 도입부를 단순 안내 수준으로 구성하는 데 반해, 모토페스트는 인트로부터 몰입감을 증진시켜 게임의 감성 자체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


조작감과 물리 법칙은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포르자 호라이즌에 익숙한 사람은 사실적이지 않다며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핸들링은 아케이드성이 짙고, 실제 차량을 조종할 때의 묵직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게임은 리얼리즘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물리 법칙도 허무맹랑하다. 자동차가 수십 미터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져도 반파되지 않고, 충돌을 하고 물에 빠져도 멀쩡하다. 거리엔 사람이 다니지 않고(물론 사람이 있으면 GTA가 될 게 뻔하니), 건물은 생명력 없는 박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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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5-11-15 165604.jpg 조작이 쉽다. 모토스포츠 기반 게임보다 훨씬 캐주얼하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인 물리 법칙과 엔진은 오히려 접근성을 향상시킨다. 자동차 관리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조종과 체험에만 집중할 수 있다. 조작이 쉬워 누구나 진입 장벽 없이 접근이 가능하다. 불편함이 제거된 시스템에서 스피드와 콘텐츠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다. 또 탑승물 변경을 즉각적으로 할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다가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다른 탈것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이처럼 유연하고 빠른 반응과 가볍고 쉬운 게임성이 모토페스트가 중시하는 체험과 감성의 영역에 더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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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5-11-15 165659.jpg 캠페인 1~2개만 완료해도 좋은 차를 살 수 있는 돈이 생긴다.


돈 벌기가 쉽다는 것도 장점인 것 같다. 나로서는 살아생전 타볼 일이 있을까 싶은(실제로 보는 것도 불가능할 듯) 차들을 손쉽게 얻고, 직접 운전해보며 대리 만족하는 것에 감개가 깊게 밀려왔다. 이름만 들어도 억소리 나는 차를 연비 걱정 없이 300km가 넘는 속도로 주행하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하늘로 치솟는 경험은 게임이니까 가능하다.


본디 스포츠 게임은 반복이라는 콘텐츠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게이머에게는 같은 방식의 경기를 되풀이한다는 단조로움이 어쩔 수 없는 지루함으로 다가온다. 앞서 리뷰한 탑스핀 2K25의 경우에도 ‘테니스’라는 경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나마 오픈월드 레이싱은 이벤트의 변주를 통해 단조로움이라는 문법을 타파한다. 때문에 모터스포츠 영역보다는 대중성이 더 강하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게임이었다. 부족한 부분을 더 크루만의 스타일로 무마하는 역량이 대단하다. 다음 리뷰를 위해 당분간 플레이를 멈추겠지만, 종종 라이브러리 한구석을 들여다보며 짬이 날 때마다 실행 버튼을 누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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