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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Aug 12. 2023

혼자라면 순댓국

외로워도 슬퍼도 순댓국

 순댓국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고 해아하나.

 남편이 아부다비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다고 했을 때 '그럼 거긴 순댓국이 없잖아'가 나의 첫마디였다.

 지독한 순댓국 사랑이 왜 시작된 건가 생각해 보니 혼밥에 최적화된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진정한 소울 푸드인 순댓국은 혼자 있을 때 더 맛있다.

 결혼 후 남편은 해외 파견 생활을 계속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기혼 자취생과 다름없었다.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으며, 하고 싶은 건 맘대로 할 수 있었기에 남편의 파견생활이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퇴근 후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은 어쩐지 외로웠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 근처 순댓국집을 지나가는데 유난히 홀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무심코 들어갔더니 ‘몇 분이세요?’ 대신 ‘한 분이세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굳이 내가 혼자 왔다는 걸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혼자 비우는 순댓국의 매력을 알게 된 것 같다.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갔을 때도 집 근처엔 순댓국집이 있었다. 유난히 아저씨들이 많은 동네 맛집으로 소주를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들이 많았다. 원치 않아도 옆 테이블의 대화를 다 들어야만 하는 작은 가게였지만, 주인은 혼자 온 여자 손님을 타박하지 않았다. ‘한 분이세요?’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순댓국 하나요’하면 되는 곳이었다. 나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내 나름의 루틴을 선보이며 ‘나도 여기서 혼밥 좀 했어요’하는 제스처를 뽐냈다. 그렇게 한 뚝배기를 천천히 비우고 나면 속이 든든해졌고 외롭지 않았다.  

 남편의 파견생활 4년 차가 되던 시점부터 슬슬 주말과 연휴가 싫어졌다. 항상 함께하던 친구들도 주말과 연휴엔 가족이나 애인과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 좋아했던 순댓국 한 그릇도 억지로 비웠다. 아마도 부부이자 ‘식구’인 우리가 다시 함께해야 한다는 신호였던 것 같다. 순댓국조차 혼자 먹기 싫어졌을 즈음 남편이 귀국을 했다.

 몇 년 뒤 나는 또 이사를 했다. 그리고 엄마가 되었다. 혼자이고 싶어도 혼자일 틈이 없는 삶이 계속되었다. 아들이 걸음마를 떼는 순간, 좁은 집에서 이 친구를 하루 종일 돌볼 자신이 없어졌다. 주변 어린이집에 무작정 전화를 해봤다. 거짓말처럼 딱 한자리가 비어있다는 곳을 찾았고, 다음 날부터 아이가 기관생활을 시작했다. 적응기간이라는 것이 있다고 익히 들어왔지만, 아들은 선생님에게 자석처럼 끌려 들어갔다. 아들이 10개월 되던 때 갑자기 예고에 없던 자유시간이 생겨버렸다.

 엄마의 자유시간 첫날, 늘 혼자 먹던 순댓국집으로 달렸다. 뼛속까지 계획형 인간인 내가 몇 년 전부터 짜둔 계획인 양 그곳으로 향했다. 퇴근길에 찾던 그 집은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아침 6시부터 문이 열려있었다.

 빈 그릇에 깍두기와 겉절이를 반반 덜어 먼저 나온 공깃밥과 함께 우걱우걱 먹고 있으니, 용암처럼 부글부글 대는 뚝배기가 나왔다. 저민 마늘을 전부 탈탈 털어 넣고, 새우젓은 국물만 조금, 양념장 한 스푼을 퐁당, 마지막으로 부추를 수북이 올려 후추를 톡톡 뿌렸다. 숟가락을 휘휘 저어 완벽한 밸런스로 만들어 낸 국물을 목구멍으로 한 숟가락 넘겼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끈하면서도 속이 든든해지는 익숙한 느낌! 몇 년 만에 찾았지만 내 몸은 이 루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혼자이고 싶은 공간을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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