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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지 Jan 19. 2022

문화예술계 공공의 적, 코로나19

 오늘 아침 인근 문화재단이 공연기획사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송년콘서트 기획과 관련해 재단-기획사 간 구두 계약을 주고받았고, 이사장이 허가를 내렸단 것이 대략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출연진 섭외까지 진행을 마친 상황에서 돌연 공연이 취소되었단다. 공연기획사는 1,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문화재단은 계약 자체를 체결하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기사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얼굴 모를 계약담당자에게 심상찮은 동질감을 느꼈다. 너무나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나 역시 계약담당자가 된 후로 상상 속에서 검찰 조사를 받곤 했다. 언젠가 피고인석에 앉는다면 이마를 짚고 "악! 이렇게 될 줄 알았어!"라고 말하리라. 모든 계약이 정식 절차대로 깔끔하게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곳이 있다면 일단 문화재단은 아닐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천재지변의 상황 속에서 변수는 곱절로 증가했다.  


 지난해 가을, 코로나19로 축제 일정이 지연되어 단기간 동안 계약을 세 차례 넘게 변경한 적이 있다. 주임님이 어두운 낯빛으로 계약서를 뽑고 있자면 사업담당자가 쭈뼛쭈뼛 다가와 '일정이 바뀔 것 같다'라고 속삭인다. 팀 내 분위기는 초상집이 따로 없다. 옆자리 신입 직원의 동공이 경미한 진도로 흔들린다.

 또 겨울에는 행사를 나흘 앞두고 도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추세이니 행사를 연기 또는 취소하라는 것이다. 담당자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이제는 칸막이 너머 담당자의 표정만으로 불안을 감지하는 스킬이 생겼다.  '안 그래도 바빠죽겠는데..'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사업담당자와 논의를 시작한다. 타절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계약 금액을 보전해 줄 방도가 있는가, 그것보단 더 많이 주고 싶은데 등등...



 

 사실 위에 나열한 말들은 불평에 가깝다. 어려움이라 칭하기에 부끄러운 것들뿐이다. 행사가 취소되건 어쨌건 재단 직원들은 매월 같은 날짜에 급여를 받는다. 밥 굶지 않고 카드값이 제때 빠져나간다. 그렇다면 달리 어려움이랄 게 뭐가 있겠는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무대에 선 예술인 다수가 공연 전후로 이런 말을 한다. "공연이 너무 오랜만이라 설레네요. 감사합니다." 이 멘트를 너무 많은 출연자들에게 들었다. 개개인별로 어떤 상황에 놓였을지 알 수는 없지만 모두 크고 작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짐작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라면으로 허기를 때울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식 학원비를 못 낼 수도 있다. 멋대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내가 오바하는 거겠지' 싶으면서도 착잡한 마음이 든다.   


 직원 교육 날, 한 외부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ㅇㅇ문화재단의 팀장으로 있을 때 연봉이 4,400이었네. 나 그 돈 받으면서 부끄러웠네. 예술인들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 줄 아는가. 나의 연봉은 너무 많은 것이었네" 이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는 정말 예술가를 사랑하며 일하고 있는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길 원하는가? 문화재단 직원이라면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는 구절이다.

 



 여러 기관그러듯 우리 재단도 몇 차례 비대면 행사를 진행했다. '비대면'이 붙는 순간 대체적으로 참여 실적은 처참해진다. 유튜브 생중계 참여인원이 8명 남짓이었던 적도 있다. 나만 해도 핸드폰을 손에 들면 멀티 윈도우를 실행하곤 했다. 휴대폰 화면의 반은 공연 상황 중계, 반은 카카오톡. '비대면은 역시 현실감이 아쉬워'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느 여름날을 떠올렸다.


 어둑해진 저녁이 찾아오는 시간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장미공원에서 재단 주최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앳돼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어쿠스틱 곡을 부르고 연주한다. 전문 가수가 아니라 약간은 미흡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저 풋풋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날 공기의 촉감을 기억한다. 점차 농도가 짙어지던 저녁을, 잔디 위를 뛰어다니던 아이들을, 박수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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