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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동교 Dec 05. 2021

마포 바이닐 페스타 2021

Day 5. 대망의 날, 경품 추첨 데이!

대망의 날이 도착했다. 마바페의 마지막 일정은 경품 추첨 데이! 센스 있는 마바페 인스타그램은 미리 경품 품목을 미리 공지했다. 잠시라도 자기가 원하는 LP를 손에 넣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실제로 꿈이 이뤄진다면 금상첨화고. 난 쿠폰 넉 장을 갖고 있었고 1시부터 5시까지 총 5회차로 이뤄진 추첨 행사에서 4시, 5시 두 번의 회차에 참여했다. 행사 장소는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     


대기 인원이 여럿 보였고 바로 제비뽑기를 했다. 무려... 6번이 나왔다! 대박! 게다가 앞에 두 분 정도가 안와서 실제적으론 3~4번째 순서로 뽑았다. 점찍어 뒀던 리스트는 이렇다. 킹 크림슨 <Red>, <In The Wake Of Poseidon>, 톰 웨이츠 <Swordfishtrombones>, 에릭 돌피 <Out To Lunch>, 뉴 트롤즈 <Concerto Grosso per 1> 등등. 라이센스인지 수입반인지 정도는 구분하고 고르고 싶었지만 꼼꼼하게 살펴볼 정도로 인당 주어진 시간이 길진 않았다.     


시티팝. 잘 안다곤 할 수 없으나 대표작 몇 작품을 유튜브로 들어봤다. 그리고 대부분 좋아했다. 다만 바이닐로 콜렉팅할만큼 푹 빠져있지 않았을 뿐. 그러나 나는 킹 크림슨, 뉴 트롤스 형님들을 제치고 일본 가수 안리의 <Timely> 를 선택했다. 싱그러운 여름 분위기가 물씬한 재킷을 건너뛰면 한동안 시티팝과의 접점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의외로 후회는 없었다. 가 시티팝을 대표하는 음반 중 하나란 걸 알게 된 건 그날 밤의 일.   


급작스레 통화음이 울렸다. 깜짝 놀랐다. 부천영화제에서 같은 부서로 일하며 친해진 분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멀찍이 대기 선에서 그녀가 보였다. 멋쩍은 인사를 건네곤 카페 쪽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십여 분 후에 본 그녀의 손에는 에릭 클랩튼의 <461 Ocean Boulevard>가 들려있었다. 뒷번호가 걸려 거의 맨 마지막에 고른 앨범치곤 너무 명반인지라 사뭇 놀랐다. 자기는 잘 모르지만, 아버지가 좋아하는 뮤지션이라 집어 들었다는 그녀. 에릭 클랩튼의 숱한 수작 중에서도 명작 반열에 오른 음반이라고 말해줬다. ‘I shot the sheriff’와 ‘Let it grow’ 같은 추천곡도 덧붙여서.     


어느새 5시 경품 수령을 위한 추첨 시간이 다가왔다. 하필 그녀는 쿠폰이 석 장이라 두 번째 추첨엔 한 장이 모자란 상태. 급하게 주변 레코드숍에 가서 만 원어치 이상을 구매, 막차를 탈 고민도 했지만 결국 모험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내 앞에 선 이들과 그녀가 인사를 나눴다. 앞의 추첨 때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고. 음악에 박식한 이들과의 이야기가 즐거웠다. 서로 뽑은 음반을 공유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중에 이들의 인스타그램을 물어봤다. 나로선 참 드문 일이지만 왠지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두 번째 제비뽑기. 26번을 뽑았다. 운이 참 좋다. 올해 운을 여기다 다 써버린 건 아닌지. 다행히 두어 달밖에 안 남은 2021년이다. 5시 회차에 눈여겨본 경품은 레너드 코헨의 도노반의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 그리고 시티팝 음반으로 보이는 작가 미상의 앨범(사진이 흐릿해서 아티스트와 음반명을 파악하기 어려웠다)까지.      


4시 회차처럼 압도적인 숫자는 아니었지만 26번도 나쁜 번호는 아니라 괜한 기대감이 생겼다. 횡으로 쫙 펼쳐진 매데에 바이닐이 놓여있는 모습이라 아무래도 초반에 보이는 앨범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뒤로 갈수록 내가 점찍어둔 앨범이 있을지 미지수기 때문. 그 때문인지 이번에도 일본 가수의 음반을 집어들었다. 알고보니 시티팝의 대표 여가수 마리아 타케우치의 <University Street>앨범.     



이유는 간명하다. 연속성. lp를 살 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콘셉트를 따진다. 지나고 보면 별로 큰 의미는 없어보이지만 말이다. 같은 아티스트의 앨범을 산다던가, 장르의 울타리에 함께 들어가 있는 앨범. 동시대에 발표된 앨범 등등. 세부적으로 차이는 있어도 최소한의 접점은 공유하는 앨범.     


안리의 <Time Flies>와 마리아 타케우치의 <University Street> 앨범도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차이점이 많겠지만 어쨌든 대표적인 시티팝 음반들에 해당하니까. 단 두장이지만 나름의 콜렉션이 탄생한 것 같아 뿌듯했다. 만화풍의 생활문화센터 벽화 앞에서 바이닐 두 장을 들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마바페 경품 행사를 경험하며 느낀건 역시나 음악은 취향의 문제라는 것. 옆으로 길게 붙인 테이블에 다채로운 뮤지션의 바이닐 아닌 금액권이 놓여있다고 가정해보자. 10만원권, 5만원권, 3만원권 식으로. 앞 번호를 받은 이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 먼저 비싼 금액권을 가져갈 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다르다. 좋은 번호를 받으면 낚아채려고 점찍어둔 프린스, 레너드 코헨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걸 보고 놀랐다.      


킹 크림슨의 걸작들도 꽤나 나중에 선택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거의 마지막 순서에 계셨던 분이 롤링 스톤스의 작품을 팔에 끼고 가는 모습을 봤다. 마빈 게이의 훵크 명작 <I Want You>를 손에 넣고 환호하는 장면, 운이 없다며 좌절했던 중년의 여성 분께서 네드 도네히의 요트록 명반 <Hard Candy>를 들고 뿌듯해하는 표정을 목도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다들 만족스러운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각양각색 오색빛깔 취향의 아름다움. 

    


떠나기 전 마바페 직원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인스타그램의 적극적인 홍보가 많은 사람에게 가닿은 것 같다고 칭찬을 드렸다. 내후년은 몰라도 우선 내년의 행사 개최는 확정되었다는 말에 행복했다.  

   

바이닐 문화가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활기를 얻은지는 꽤 오래되었으나, 나 개인에게 있어서는 올해 하반기가 특히 정점이 된 듯 싶다. 레코드 가게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덕분에 지출도 컸다. 그래도 무언가에 한번쯤 깊숙이 빠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중이다. 내년에도 이어질 마포 바이닐 페스타가 바이닐 마니아간의 연대, 바이닐 문화의 관심 제고 등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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