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ie xx Live in Seoul - 2024.11.28
군전역한 지 얼마 안 된 2015년 상반기, 아마도 잠실 핫트랙스에서 칼라풀한 CD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제이미 엑스엑스의 솔로 데뷔 앨범 <In Colours>. 엑스엑스 시절 동료 로미의 목소리가 실린 ‘Loud Places’와 힙합에 레게를 섞은 ‘I Know There’s Gonna Be (Good Times)’에 단박에 빠져들었다. 꽤나 음악이 좋았는지 CD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도 올렸다. 근 십 년 후 제이미를 공연에서 만날 줄 그 당시엔 알고 있었을까?
아직 결산을 하진 못 했지만 미로처럼 환각적인 커버 아트의 소포모어 앨범 <In Waves>가 사적인 올해의 음반 탑10에 들지도 모르겠다. 중독성과 기계성같은 전자음악의 마력이 맛깔나면서도 팝적 감성을 놓치지 않은, 거를 타선 없는 트랙들로 가득하다. 아발란치스와 로빈, 허니 디종 같은 개성 만점 조연들도 음악성 재고에 한몫했다.
이미 80분 가까이 서 있느라 살짝 지쳤는지 ‘Treat Each Other Right’와 ‘Still Summer’의 초반부 집중력은 덜했다. 다행히도 ‘Gosh’ 이 다시금 촉각을 곤두세웠다. 바로 옆 관객은 페기 구의 ‘I Go’가 나오자 환호성으로 반가움을 표했고 신보서 덜 챙겼던 ‘Falling Together’는 80년대 하우스 풍 복고 색채가 매력적이었다.
올해 1월 <Club Mid Air> 투어로 롤링홀에서 공연을 펼쳤던 로미가 들려왔다. ’Loud Places’ 차분하고 몽환적인 음색에 전자음으로 들끓었던 회검색 공간이 잠시 물렁물렁해지며 연한 오색빛을 드리웠다. 극적 구성을 위한 장치로써 도입부 변주를 준 ‘All Your Children’부터 ‘Life’와 ‘Baddy on the Floor’로 이어지는 <In Waves> 주요 트랙 삼총사가 본 공연의 집약체였다. 일찌감치 기대를 그러모은 선공개 싱글 ‘Baddy on the Floor’도 뛰어났으나 단연 ‘Life’가 최고의 순간을 선사했다.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의 산타 에스메랄다 풍 라틴 색채를 극대화한 믹싱이 드라마틱했다. 일렉트로니카와 월드비트가 혼합된 기계음이 지난 후 등장한 ‘Dancing On My Own’의 주인공 로빈의 음성에서 카타르시스 쫙쫙! 허니 디종의 깜짝 등장을 상상한 ‘Baddy on the Floor’와 추억 돋는 ‘Good Times’까지 속이 꽉 찬 후반부였다.
사포 종이처럼 거친 가라지 록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전엔 레드 제플린의 ‘Whole Lotta Love’로 마무리를 알렸는데 이날은 스투지스의 ‘I Wanna Be Your Dog’을 택했다. 올해 7월 노엘 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에서 조이 디비전의 ‘Love Will Tear Us Apart’가 흘렀을 때처럼 약간은 분위기가 잠잠해졌지만, 개인적으론 제이미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들여다본 순간이었다.
파 아웃 매거진(Far Out Magazine)의 2020년 아티클에서 제이미의 잡식성 취향을 엿볼 수 있다. 1960년대 중후반 짧고 굵게 활약했던 웨일스 출신 블루스 록 밴드 러브 스컬프쳐의 ‘Blues Helping’부터 미국 소울 훵크 밴드 빌레오의 ‘You Can Win’ (7인치 레코드 가격이 사악하다), 런던에 기반을 둔 아프로 캐리비안 앙상블 스틸 안 스킨(Steel an Skin)같은 목록에서 “디거(Digger)”의 면모가 드러난다. 20세기 민속음악 학자처럼 세계 방방곡곡의 소리 조각을 찾아 나서는 모습에서 감탄과 동질감을 느꼈다.
2015년 <In Colours>와 2024년 <In Waves> 사이의 간격은 너무도 길었지만, 두 작품이 준 만족감으로 인해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에 대한 흥분감이 적잖다. 1988년생으로 아직 젊은 아티스트가 그간 또 얼마나 많은 내공을 축적해서 3집에 풀어낼지, 기존의 작법을 유지할지 혹은 완전히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지 벌써 궁금하다. 올해 9월에 나온 < In Waves >와 이번 11월 서울 공연으로 제이미 엑스엑스는 2024년 하반기 나에게 중요한 음악가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