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만나기 힘든 세 음악 거장의 콜라보레이션
1990년대 퓨전 재즈를 즐겼던 이들이라면 한 번쯤 거쳐 갔을 레이블 GRP. 베이스 연주자 존 패티투치와 색소포니스트 톰 스콧, 한국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피아니스트 데이빗 베누아나 기교파 드러머 데이비드 웨클 같은 연주자들이 GRP 발매작들을 통해 소개된 덕에 국내에서도 나름의 퓨전 재즈 붐이 일었다. 하드밥과 같은 모던 재즈에 비해 진입 장벽은 낮되 세련미와 고급성을 담보한 퓨전 재즈와 “GRP풍” 음악은 마니아를 결집하기 충분했다.ㄴㅇㅈ처럼 보기 힘든 세 음악 장인의 콜라보
1978년 래리 로센과 함께 GRP를 세운 이가 이번 콘서트의 주역이자 편곡자와 프로듀서, 영화음악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컨텀퍼러리 재즈 피아니스트인 데이브 그루신이다. 그루신의 음악적 동반자이며 퓨전 재즈계의 슈퍼스타인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도 1980~1990년대에 걸쳐 열 장의 정규작을 GRP 통해 발매했다. 두 재즈 거장과 인연 깊은 브라질 대중음악 명인 이방 린스까지 국내에서 보기 힘든 음악가들의 한데 모여 뜻깊은 시간을 일궈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세 예술가의 구심점으로 귀결했다. 리 릿나워의 첫 번째 GRP 발매작이자 데이브 그루신과의 합작품인 1985년도 음반 <Harlequin>의 오프닝 트랙 ‘Harlequin’의 작곡자가 이방 린스였던 것이다. 서른여덟 해 전 녹음 스튜디오의 달콤하고도 치열한 세션처럼 아직 그들의 음악적 대화는 뜨거웠으며 이방의 호방한 타건과 스캣에 곡의 감정선도 무르익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dCtJE91WR8
세 사람의 오작교는 최근 작고한 미국 대중음악의 거인 퀸시 존스였다. ‘Ai no corrida’가 실린 1981년 히트 앨범 <The Dude>에 이방의 곡 ‘Velas’를 실었던 퀸시는 막역한 사이였던 데이브와 릿나워에게 브라질 출신 재주꾼을 소개해줬고, 세르지우 멘지스와의 협업(그루신) ‘Ipanema Sol’ 같은 곡의 발표(릿나워) 등 브라질 음악에 관심 깊었던 두 재즈 명인은 MPB(브라질 대중음악) 기수에서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린 이방에 힘입어 더불어 라틴과 영미권 퓨전 재즈가 혼합된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이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비롯 각종 미디어에서 퀸시에 대한 추억을 거듭 공유한 이방은 이 날도 1989년 음반 <Love Dance>의 타이틀 곡 ‘Love Dance’라는 추모곡을 연주했다. 아내 를 향한 사랑을 담은 로맨틱 넘버는 이방의 미국 시장 진출을 적극 도왔던 대중음악 전설을 향한 고마움으로 치환되었다. 브라질 드라마 <Roque Santeiro>에 삽입되어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는 ‘Vitoriosa’도 아내 발레리아의 사진을 보며 만들었다고 하니 순정남 그 자체다. 당시 이 곡의 편곡을 데이브 그루신이 맡았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qa3KkEHkXSI
사랑꾼 뮤지션들의 부인들도 투어에 동행했다고 하니 그들의 찐사랑을 엿볼 수 있다. “브라질과 미국 혼혈인 뮤지션”이라며 소개하던 드러머의 성이 릿나워길래 혹시나 했는데 브라질인 부인 카르멘 산토스와 리 릿나워 사이에서 태어난 웨슬리 릿나워였다. 프로그레시브 록 드러머처럼 타이트한 리듬을 구사하는 그는 콘서트의 전체적인 에너지레벨을 높여주었으며 미친듯한 박자감의 소유자인 베이시스트 무니르 호손과의 리듬 세션도 탄탄했다.
사랑과 우정, 음악으로 얽히고 섥힌 삼인방은 안방에서 도란도란 연주하듯 편안해보였고 중간중간 서로에게 보내는 눈빛에도 하트가 가득했다. 이방과 릿나워의 아내가 언급될 때 ‘Vitoriosa’에서 이방과 듀엣한 보컬리스트 타티아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그루신은 생일을 맞은 무니르 호손을 위해 즉흥 편곡 가득한 ‘Happy Birthday to You’를 들려주었다.
MBC 라디오 프로그램 < 배철수의 음악캠프 >에 자주 흘러나와 대중에게 익숙한 극강의 펑키 넘버 ‘Rio Funk’ 전 공식적인 셋리스트의 마지막이 ‘Stone Flower’인건 자못 당연했다. 조빔의 1970년 명반 < Stone Flower > 수록곡이다. 보사노바의 태두이자 브라질 음악의 신화인 조빔을 우러러봤을 세 후배 뮤지션의 오마주와도 같은 피날레 퍼포먼스였다.
11월 17일 일본 도쿄 근처 가와사키 뮤직홀에서 이들의 공연을 봤다. 거의 비슷한 포맷이었지만 24일 서울 콘서트를 보기 참 잘했단 생각이다. 공연장과 좌석의 차이도 있겠지만 뭐랄까 뮤지션들의 긴장이 더 이완된 느낌이었고, 연주의 합도 더 잘 맞았으며 전체적인 사운드도 더 선명했다. 앞으로 보기 힘든 콘텐츠를 기획해준 재즈공연기획사 플러스히치(PlusHitch)에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