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뮤직 바 '현대음률'에 다녀오다.
겨울바람이 쌀쌀한 12월의 일요일 저녁, 연남동에 있는 뮤직바 현대음률을 찾았다. 브라운 톤의 가구들은 앤틱하면서도 은은한 세련을 드리웠고, 한 쪽 벽 빼곡한 바이닐이 눈을 사로잡았다.
음악회의 날. ‘양평이형’으로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 겸 DJ 하세가와 요헤이가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 지난 14일 1탄에서는 한국에 오게 된 사연과 음반 디깅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이번 2탄에는 그가 사랑한 1980~90년대 한국 시티팝을 소개해준다고 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해 그가 참여한 밴드의 음악을 즐겨 들어왔고, 그가 얼마나 음악에 푹 빠져 사는 사람인지를 알기에(지인이라는 건 아니다) 음악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야기’보단 ‘음악’에 방점이 찍힌 시간. 최대한 많은 음악을 들려주되 중간중간 하세가와의 짧은 설명을 섞는 식이었다. 요즘 말로 ‘오히려 좋아!’ 말보다 음악이 더 좋으니까.
정말이지 너무 놀랐다. 1980~90년대 한국 가요에 이렇게 숨겨진 보석이 많다니. 추상적이라 쓰기 꺼려지는 표현이지만 ‘세련된’ 사운드가 넘쳐났고, 넘실댔다. 빵빵한 스피커로 들어서 그런가? 바이닐이 플레이되자마자 동시다발적으로 리믹스를 해주는 기능이 있는 최첨단 디제이 셋이 아닌가?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디깅의 위력을 실감했다. 유주희, 이정아, 박성신 등 잘 모르던 가수들의 발견과 박남정, 홍서범, 이무송 같은 익숙한 이름들의 재발견. ‘이 곡 말고도 (이 앨범 속) 다른 곡들도 다 좋아요’, ‘아~ 1990년대 초중반 가요 중에 좋은 곡이 진짜 많은 것 같아요.’라고 연신 외치는 하세가와. 그리고 그 말에 신뢰를 부여하는 황홀한 사운드.
꿈결 같은 음악 여행에 2시간 반이 사르르 녹아 버렸다. 하세가와는 아직 에너지가 펄펄 넘쳐 보였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끝나고 수줍게 다가가 준비해둔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정규 앨범 < Mono >에 사인을 받았다. 사인도 최선을 다해서 해주시는 그. 연세대에서 펼쳐진 장얼의 마지막 공연을 봤다고 하자 ‘벌써 3년이나 지났네요.’라고 순간 과거를 반추하기도.
일본 내에서만 사용하던 시티팝이란 용어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고, 자연스레 ‘한국 시티팝’을 발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빛과 소금과 김현철 등이 한국 시티팝의 원류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며 대부분의 주목을 가져갔지만, 오늘 하세가와가 소개한 숨겨진 뮤지션들도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디깅한 보석 같은 곡들을 공유해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음악에 미친 사람은 저 정도구나!’라는 경외심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