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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동교 Dec 14. 2021

향뮤직과의 추억

20년 전통의 온라인 음반 몰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본격적인 바이닐 콜렉팅 이전에 나는 CD를 모았다. 집 앞 대성문고 음반점에서 샀던 최신 팝 음반들과 천호 현대백화점 10층 아니면 11층에서 구한, 지금은 낡은 제프 벡의 < Blow by Blow >, 한때 친했던 아주머니가 올림픽 프라자 상가의 작은 음반 매장에서 사주셨던 메탈리카의  가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역시나 편한 건 온라인 쇼핑이었다. 직접 매장을 찾아 보석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모니터를 여유롭게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제 손으로 번 돈 하나 없는 중고등 학생 주제 마구 카드 결제를 하며 이마에 ‘철없음’ 세 글자를 새겼다. 나중에 갚겠다며 말씀드린 그 액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부모님께 좋은 차 한 대 사드려야 함은 분명하다.     


보랏빛 향이 나는 상아. 무슨 말이냐고? 당시 가장 자주 이용한 온라인 음반 몰 세 개를 이용한 언어유희다. 상아 레코드와 퍼플레코드 그리고 향뮤직.     


1986년 압구정 코끼리 상가에 둥지를 튼 상아 레코드지만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고된 의무교육의 시기에 시간을 내서 강남까지 갈 여력이 없었다. (그러면 그 많은 시간 동안 온라인 쇼핑할 시간은 있었고?) 아마 세 군데에서 가장 큰돈을 쓴 곳이 상아 레코드여서 마일리지도 잔뜩 쌓았지만 2010년경 돌연 사이트가 폐쇄되었다. 아직 순진했던지 마일리지보다는 상아 레코드와의 인연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퍼플레코드는 셋 중 마니아적 느낌이 강했다. 무언가 고전적이면서도 심플한 홈페이지 디자인엔 못 들어본 뮤지션과 음반이 가득했고 호기심 왕성한 소년기에 마르지 않는 금광으로 다가왔다. 푹 빠졌던 아트록 음반들을 뒤질 때면 2~3시간은 금방 지나가곤 했다. 글을 쓰며 정말 오랜만에 퍼플레코드를 떠올렸다. 놀랍게도, 아직 사이트가 운영중! 홈페이지 디자인도 예전과 거의 흡사했다. 여전히 좋은 음반을 판매하는 모습에 왠지 모를 감동이 피어났다.     


그리고 향뮤직. 세 군데 중 유일하게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한 곳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향음악사라고 이름이 달랐던 것 같기도.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라 종종 방문했던 신촌.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신촌역 3번 출구 홍익문고에서 시작되는 대로 한구석에 있던 것 같다. 작은 매장에 들어서면 벽장에 빼곡한 CD가 반겨주었는데 음반을 산 기억은 없다.      


그저 소리바다가 대변하는 불법 MP3 음원이 아닌 ‘실존하는 물질로서의 음악’이 특별하게 와닿았다.    

 

향뮤직 온라인몰에서는 수많은 음반을 구매했다. 지금도 결제 내역을 보면 아찔하다. 심지어 뜯지도 않은 박스 세트는 왜 이리 많은 건지. 정말 오랜만에 본 주문정보에서 내가 얼마나 아트록에 심취했었는지 재확인했다. 독일의 크라우트 록(전자음악, 재즈,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스타일을 결합한 프로그레시브 뮤직) 밴드 파우스트와 히말라야 K2를 주제로 콘셉트 음반을 발표했던 키보디스트 돈 에어리, 웨일스 출신 헤비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Dr.Z의 유일작  등.     


고등학교와 재수를 관통하며 콜렉팅을 향한 열망이 식었는지 한동안 향뮤직을 잊고 살았다. 나조차 잊고 있던 향뮤직의 존재를 끄집어낸 건 어머니. 마일리지가 아깝다며 블루스 뮤지션 강허달림의 음반 두 장을 주문하셨다. 그게 벌써 7년도 더 된 일이다. CD 구매가 점차 줄고, 콜렉팅의 주권이 바이닐로 넘어가며 어머니와 강허달림이 되살린 향뮤직의 불씨도 다시 꺼져버렸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최근 향뮤직 홈페이지가 닫힌다는 소식을 접했다.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고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로 전환되는 것이다. 기존의 물량 혹은 정체성이 어느 정도까지 보존될지 모르겠으나 오랜 역사의 문이 닫힌다는 느낌은 분명 아쉽다. 홈페이지의 디자인 레이아웃, Auction, 회원 음반평같은 섹션 하나하나에 그리움이 묻어날 것이다.     


살아 숨 쉬지 않아도, 말을 할 수 없어도 진한 우정이 쌓인다. 향뮤직의 대표님, 직원들의 얼굴도 모르지만 내가 주문한 음반을 포장하면서 그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부치며 서로 우정을 나누는 <84번가의 연인> 속 안소니 홉킨스와 앤 밴크로프트처럼 말이다. 다행히도 연대 앞 사무실은 계속 운영된다고 하니 언제 한번 들러 좋은 음반을 골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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