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그레인하우스에서 열린 아시아 첫 EUSEXUA 파티
FKA 트위그스(FKA twigs)의 갑작스러운 내한 소식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팬들이 “뿌까”란 애칭으로 부르는 이 독보적 예술가는 신묘한 음악과 개성 넘치는 스타일링으로 자신만의 아우라를 쌓았다. 이태원역 3번 출구 부근 새로이 생긴 클럽 그레인하우스(Grainhouse)에선 비교적 이른 오후 10시부터 예약을 미처 못 한 인파들의 대기줄로 시끌벅적했다. 바밍타이거의 오메가사피엔과 래퍼 기리보이, 대세 가수 비비 등 셀러브리티도 여럿 보였다.
2016년부터 한국 언더그라운드 뮤직 신을 지탱하고 있대도 과언이 아닌 SCR(Seoul City Radio)가 기획한 아시아 최초 EUSEXUA 파티를 기획했다. “극도의 희열감”을 뜻하는 “Euphria”와 “Sexual”을 결합한 예술과 인간을 향한 극적인 관계와 연결을 지향하며 중독적 음악과 헤도니즘을 중추로 밤새 파티하는 “레이브 컬처(Rave Culture)”는 형식적 측면에서 적격이었다.
강렬한 용모로 시선을 사로잡는 kt1ty와 바밍타이거 멤버 이수호, 로컬과 퀴어 등 소수에 천착하는 DIVINE HEEM, 몇 개월 전 < Bucket Dream >을 발매한 등 각양각색 디제이가 밤 9시부터 공간을 달궜다. 천장 전기회로엔 조명이 흘러내렸고 안개처럼 뿌연 실내가 환각성을 드리웠다.
디제이 프랭크에 믹스에 맞춰 1시간 넘게 춤을 추며 지인들과 소통하고 팬들과 사인을 찍어주고, 손 하트를 함께 만들며 간혹 LP에 싸인까지 해준 트윅스가 봉긋 솟은 좁은 연단에 올라갔다. “내 노래를 몇 곡 불러도 될까요?” 수줍게 말을 건넨 이내 작업중인 신곡을 몇 개 들려줬다.
“한국어로 뭐라고 불러요”라는 트위그스의 질문에 어느 관객의 “뻔한 년!”이란 외침으로 웃음을 안겨준 ‘Predictable Girl'과 “반응이 좋으니 서둘러 런던으로 돌아가 작업을 마쳐야겠어요”라던 ‘Love Times’ 등 너덧 곡을 연이어 쇼케이스 했다. 1미터 지근거리에서 본 그의 형체는 그야말로 황홀했는데 디제이 프랭크 음악에서 보였던 약간은 어색한 모습과는 상반되는 신들리고도 정교한 몸동작을 표출했다. 17살 때 전문 댄서가 되기 위해 남런던으로 넘어간 그 아닌가.
오른손에 쥔 마이크를 끝내 입가에 대지 않아 야속했지만 AR 트랙을 입으로 따라 부르며 신비로운 춤사위를 펼쳐 보이며 아우라를 발산했다. 신곡 ‘Perfectly’를 좋게 들은 만큼 싱글과 EP 혹은 믹스테이프 등 어떤 식으로든 < Eusexua > 이후의 작품군이 기다려진다. 클럽 팝(Club Pop)과 하우스(House) 성향이 짙은 < Eusexua >다보니 이날 미공개 곡도 일렉트로니카 위주로 골랐다.
물론 그의 음악을 한 갈래로 정의하긴 어렵다. 알앤비와 일렉트로니카의 중점을 뒀지만, 무수한 층위의 결합으로 구축한 “하이브리드 팝”에 가깝다. 의상과 뮤직비디오,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아트팝”의 향기도 풍긴다. 처음부터 성숙한 아방가르드-익스페리먼틀 팝을 들려준 데뷔 앨범 < LP1 >과 “중독성에 스멀스멀 손이 간다”란 코멘트로 대중음악웹진IZM 2022년 “에디터스 초이스”로 고른 믹스테이프 < Caprisongs >까지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달리하는 음악성이 묘미.
트위그스를 보러 몰린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이 개성파 스타일-뮤직 아이콘을 영접하는 것만으로 황홀한 금요일 밤이었다. 꽤 공들여 설계한 걸로 보인 그레인하우스도 조금이나마 한적할 때 재방문해 보고 싶다. 티켓과 함께 머천다이즈로 구매한 티셔츠엔 한글로 “유세시아”가 적혀있다. 언젠가 이태원 밤거리를 배회하다 이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보고 방긋 웃어 보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