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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악기로 주조한 신비로운 앰비언트 뮤직

브라이언 이노와 콜라보했던 멀티 인스트루멘털리스트 라라지(Laraaji)

by 염동교

9월 15일 월요일 저녁 7시 반쯤 홍대 벨로소에 도착했더니 대부분 관객들이 앉아 있었다. 시냇물처럼 흐르는 자연의 앰비언스와 이국적 문양의 주홍빛 테이블, 주인공의 등장 전부터 신묘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윽고 도인 같은 분위기의 한 노인이 두 손을 합장한 채 들어왔고 90분 논스탑 앰비언트 뮤직 세션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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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수를 헤아릴 수 없지만 신시사이저에 기반한 여러 개의 프리셋으로 백그라운드 뮤직을 마련한 뒤 그 위에서 여러 가지 생악기를 더하는 방식으로 사운드스케이프를 구성했다. 작은 망치로 두드려서 연주하는 현악기 일종인 “해머 덜시머”와 공명상자에 약 30~40개의 줄이 달린 “치터”를 중심이었다. 신비로운 음색을 내는 금빛 종과 후반부 대미를 장식한 징, 살짝 음향이 아쉬웠던 전자피아노, 스캣과 허밍까지 연륜과 실험성을 결합한 원맨밴드의 정점이었다.


분신술 사용하듯 다양한 아티스트가 현신했다. 말렛처럼 생긴 막대로 지터를 두드릴 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비브라폰 거장 로이 에이스가, 손을 바꿔가며 저음역의 건반을 칠 땐 소울 재즈 피아니스트가, 덜시머와 치터 음색이 섬세하게 물결칠 땐 남편 존 콜트레인, 프리 재즈 거성 패로아 샌더스와 교류했던 하피스트 앨리스 콜트레인이 떠올랐다.



두 가지 중심 악기를 이용하는 방식도 돋보였다. 기다란 활 혹은 다리미 모양의 나무 도구로 살살 긁거나, 붓으로 세심히 두드리는 등 다양한 동작으로 악기를 실험했다. 연주법의 분화와 조합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경우의 수에서 "라라지표 앰비언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봤다.



라라지의 소리는 분명 실제 자연이 들려주지 않는 인위적인 합성물이지만 아마 실제 숲에서 나온 소리로 추출한 배경음악과 물 흐르듯 녹아 들었다. 이 지점에서 앰비언트 뮤지긔 기능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 특정한 분위기에 취한 채 고도의 집중으로 마치 전혀 다른 시공간에 접속하게끔 하는 이 놀라운 마법은 팝뮤직의 친근함과 보편성과는 또 다른 가치와 의의. 엠비언트 뮤직의 권위자인 브라이언 이노와 라라지가 협연한 1980년 작 < Ambient 3 : Days of Radiance >가 해당 스타일의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90분간의 각별한 청각적 체험을 마쳤다. 작은 구멍으로 쏙 빠진 채 몽롱한 상태로 있다가 머리가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곧 사인회가 열렸고 김밥레코드에서 구매한 2023년 작 < Segue To Infinity >에 기분 좋은 은빛 서명을 받았다. 4LP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은 라라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훌륭한 교본이다.


< Segue To Infinity >


바로 전 날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타일러 더 크레이어터와 완전히 다른 매력을 선사한 이번 공연은 개성파 음악에 대한 감식안을 가진 김밥레코즈 김영혁 대표의 큐레이션이 다시금 빛난 순간이었다. 장소를 제공한 홍대 벨로주 박정용 대표 마찬가지로 다채로운 장르뮤직에 선구안을 가졌고 두 사람 덕에 이처럼 특별한 공연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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