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14 타일러 더 크레이어터 내한 공연
높은 자기 주도성과 드넓은 스펙트럼, 복수의 페르소나 측면에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프린스와 데이비드 보위, 벡 같은 카멜레온 선배 음악가를 상기한다. 기본적인 직함은 래퍼지만 < Flower Boy >(2017)와 < Igor >(2019)에서 보여준 랩 뮤직 초월의 얼터너티브 리듬 앤드 블루스에서 새로운 흑인 음악 천재의 가능성을 엿봤다.
“8년 전보다 훨씬 큰 규모예요 / 다음엔 8년만큼 걸리지 않을 거예요” 과거와 미래의 공연 서사를 함축한 코멘트처럼 컬트 아이콘서 차트 호령의 대형 예술가로 우뚝 선 타일러 더 크레이어터가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9월 13일과 14일 콘서트를 펼쳤다.
2025년 7월 급작스럽게 발매된 < Don’t Tap The Glass >와 본 투어 메인 테마 < Chromakopia >가 공연 목록 중심이었고 멘트를 간소화한 채 노래를 밀어붙인 덕에 80분가량의 러닝타임에도 20곡 넘게 소화했다. 층고 높은 회검색 공간에 운집한 청중은 녹빛 백드롭을 바라보며 “크로마코피아”를 연호했다. 끝날 때도 펼쳐진 이 풍경이 자연스레 수미쌍관을 이룩했다.
물론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소울푸드 프라이드치킨과 연결 지어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맘스터치(정확하겐 마마스터치라고 불렀다) 보고 “노래 제목으로 사용할지도 몰라요.” 상찬한 대목과 후반부 메뚜기로 보이는 생물을 구출(?)하며 “곤충을 좋아한답니다, 생태 환경으로 돌려보내 주세요”라던 장면 등 “논 뮤직 섹션”도 유쾌했다.
관객이 하나되어 함께 불렀던 ‘Darling I’와 사선으로 돌린 얼굴에 뒤집힌 눈으로 강렬한 랩을 분출했던 ‘Noid’, 제목처럼 끈적한 (점액의) 몸동작을 보여준 < Chromakopia > 속 트랙 이후 소울의 향취를 드리우고 프로그레시브 팝의 영역을 탐사한 < Igor >의 ‘ARE WE STILL FRIENDS’와 ‘EARTQHQUAKE”가 흘렀다. 멜로우하며 멜랑꼴리한 키보드가 쾌락주의적인 일전의 비트를 중화했다. ‘I THINK’까지 덧붙어 줬으면 걸정타였을 테다.
강렬한 힙합 넘버 ‘LUMBERJACK’로 온탕에 뛰어들더니 다시금 부드러이 선회한 ‘WUSYANAME‘으로 < Call Me If You Get Lost >(2021)를 소환했다. @ 필자가 꼽은 타일러 최애 앨범이다. 개인적으론 이 음반을 이번 주 산책하며 처음 정주행했는데 브렌트 페이야스가 참여한 ‘Sweet / I Thought You Wanted To Dance’란 트랙이 맘에 든다.
후반부 배치의 구성미와 관객들의 합창, 조명의 운용 등 ‘Like Him’은 각자의 색채(Chroma)와 인생과 예술의 풍요로움(Copia)의 공연 테마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온전한 순간이었다. ‘See you again’과 ‘I Hope You Find Your Way Home’의 낭만 넘치는 피날레 섹션에서 그의 음악은 감각에만 그치지 않고 감성의 영역까지 가닿았다. “한국에서의 반응이 가장 뛰어났다며” 앙코르로 다시금 꺼내든 ‘Sugar On My Tongue’은 일요일 콘서트만이 선사한 보너스 포인트.
보위의 < Heroes >를 상기하는 < Chromakopia > 앨범 아트처럼 시대를 선도하는 대중음악 예술가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괜히 텀을 오래 두기보다는 떠오르는 영감을 바로바로 음반으로 분출하겠다”라고 선언한 그인 만큼 작품성의 일관성은 지켜봐야겠으나 워낙 감이 좋은 그가 속된 말로 ‘망작’ ’을 내놓을 확률은 낮다. 공연장에서의 라이브 능력과 퍼포먼스도 음반 예술만큼 뛰어남을 증명한 이번 내한은 상대적으로 단출한 프로덕션과 아쉬웠던 음향을 뚫고 우뚝 선 유아독존 원맨쇼였다. 프린스와 보위를 사랑하는 나로선 1980년대 그들을 직접 경험한 관객들이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짐작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