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아쉬운 첫 만남

영국 팝가수 미카의 2025년 부산 락 페스티벌 공연

by 염동교

유럽 여름 축제 현황을 둘러보다 재즈블랑카라고 하는 독특한 이름을 발견했다. 대전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의 녹색 괴물 “블랑카”가 떠오르는 이 이름은 모로코의 대도시 카사블랑카와 재즈를 결합한 축제로 2006년부터 시작된, 2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별 일이 없는 한 미카는 2026년 7월 9일 재자블랑카에 설 예정이며 2024년 서울 재즈페스티벌로 내한한 특급 기타리스트 코리 웡과 우리들의 영원한 큰 형님이자 독일 하드록 레전드 스콜피언스도 주요 라인업.


우연찮게 본 재자블랑카 라인업은 지난 부산 락 페스티벌에서의 미카를 상기했다. 하반기 국내 락페스티벌의 핵심이라고 불러도 좋은 부산락페스티벌. “2025 부락”도 스웨이드와 스매싱 펌킨스, 베비메탈과 포터 로빈슨까지 라인업이 매우 풍성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이름이 레바논계 영국 싱어송라이터 미카. 2025년 9월 287일 “2025 부락” 둘째날 그린 스테이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시간적으론 윤수일밴드와 헤드라이너 스매싱 펌킨스 사이에 있었다.


팔세토에 기반한 유려한 가창과 빼어난 그루브에 멜로디로 조지 마이클이나 퀸의 프레디 머큐리 같은 동향의 거장들을 소환했던 그 이름. 2007년 영국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한 1집 < Life in a Cartoon Motion >은 그 시절 10대들의 엘튼 존 < Goodbye Yellow Brick Road >(1973)요, 조지 마이클 < Faith >(1987)가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다.


국내 CF에도 삽입되었던 ‘Happy Ending’과 불멸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를 젊은 세대에게 재조명한 ‘Grace Kelly’, 특목고 입시준비 학원을 오가며 MP3로 들었던 ‘Big Girl’과 ‘Love Today’까지 추억 한다발 같은 이 음반. 이 작품이 미카의 전부는 아니지만 < Life in A Cartoon Motion >이 경력의 백미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전술한 명 아티스트만큼 미카와의 첫 만남도 흥분되었다.

KakaoTalk_20251001_120901254_01.jpg
KakaoTalk_20251001_120901254.jpg
KakaoTalk_20251001_120901254_02.jpg

결론부터 말하면 조금 아쉬웠다. 공연 관람이라는게, 특히 축제 같은 경우는 경험을 결정할 경우의 수가 너무도 많다. 첫 경험, 첫 미카이기에 기대가 컸던 걸까. 가장 큰 목적은 “내가 사랑했던 그 시절 그 노래”를 듣는 것이었는데 “그 시절 음원이라는 원본”과 9월 27일 부산에서 재현한 복각품”의 괴리가 컸다.


분명 매력적인 보컬이다. 그루비하고 리드미컬하게 곡조를 타고 돈다. 랩에 가까운 박자 분쇄로 청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팔세토(가창)는 어떠한가. 시그니처이자 프린스와 프레디 머큐리, 조지 마이클을 소환했던 팔세토(남성이 자신의 음역보다 더 높은 소리를 내는 '가성') 전반적으로 좀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원 속 미카를 라이브 미카가 감당하지 못한달까. 분명 오랜 세월에 합을 맞춰왔을 투어링 멤버와도 묘하게 엇나가는 지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추억 여행은 톡톡히 했다. < Life In a Cartoon Motion > 속 상큼한 막대 사탕 ‘Lollipop’과 켈리의 우아함에 미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끼얹은 ‘Grace Kelly’, 가슴 벅차오르는 극적 구조의 ‘Happy Ending’은 타임머신 타고 중학생으로 돌아간 듯했다. “Busan You Are Beautiful”로 끝맺은 ‘Big Girl’에선 모두 하나 되어 펑키 리듬에 춤추고 몸을 흔들었다. 아리아나 그란데와의 협업으로 음원의 인지도가 꽤나 높아진 덕일까, 1집 수록곡 이상으로 뮤지컬 풍 ‘The Popular Song’ 호응도가 높았다.


준비성도 철저했다. 커다란 하늘색 날개를 달고 등장한 오프너 ‘We Are Golden / Origin of Love’ 매시업과 “Danger”라고 적힌 나무 상자를 앞에 두고 시한폭탄같이 터질 채비를 마친 펑키 넘버 ‘Big Girl’, “M”이 적힌 하트 모양의 커다란 빨간 풍선을 설치한 ‘Love Today’까지. 수차례 의상 체인지를 비롯해 페스티벌의 한 부분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구성미었다. 한국을 향한 깊은 사랑을 느꼈다.

노스탤지어 밖의 경력, 그러니까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곡들에서 실험과 변화, 도전이 관류했다. 불어로 너끈하게 노래한 ‘Elle me dit’ (미카의 예술적 이미지는 프랑스 문화와도 퍽 어울린다)과 부드럽게 진행되다가 일렉트로니카로 변모한 ‘Yo Yo’, 미래적인 신곡 ‘Spinning Out’은 음악적 지향성이 하나에 귀속되지 않음을 나타냈다.


재밌게도 동료 평론가들과 일반 친구들의 평이 갈렸다. 곳곳에서 “너무 재밌는데?” 실시간 피드백이 들려왔고, 당시엔 몰랐지만, 거의 비슷한 위치에서 공연을 관람한 영국인 친구도 “춤추고 따라 부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라며 감탄했지만 “최악의 공연이었다.” 논평을 남긴 동료 평론가도 있었다. 이들은 아무래도 가창의 아쉬움을 언급했다.


추억여행, 화려한 연출의 장점과 가창의 아쉬움이 공존했던 미카의 부락 페스티벌을 보고 나중에 조금 더 치밀한 실내 단독 공연은 어떤 느낌을 줄지 궁금해졌다. 자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친한파 음악가인 만큼 조만간 예스24나 명화 아트홀 규모에서 조금 더 잘 정돈된 퍼포먼스를 만날 수 있길 소망한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예술가인 만큼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