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에 햄과 치즈를 끼운 무료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다. 기차역이 있는 신시가지를 둘러보고 Placedes Martyrs 공원에서 뭔가 예술적 대화를 나누는 듯한 (아마도) 커플을 보았다.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치형 석교 아돌프 다리를 건너 밤에 만났던 올드타운을 햇빛 쨍쨍한 낮에 재회했다. 각종 장르의 서적을 망라한 느낌 있는 서점과 연극배우 조각이 있는 광장을 지났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아기자기한 거리가 맘에 쏙 들어왔다.
베트남 음식 분 포로 배를 채우고 Grande Theatre of the City of Luxembourg가 있는 시가지를 돌아다녔다. 학교가 몰려 있어 그런지 학생이 많은 것 빼곤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아이들과 아이컨텍하며 벤치에서 살구 1개, 자두 1개를 먹었다. 손에서 과즙이 뚝뚝 떨어졌다.
어제 잠시 눈길 줬던 레코드 샵에 들렀다. (아마도) 뤽상부르의 유일한 레코드 샵이 아니니까 싶었다. 꽤 많은 물량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찾던 프랑스/벨기에 바이닐들은 거의 없었다. 대신 프랑스를 대표하는 팝록 뮤지션 장 자크 골드만의 신스팝 앨범 한 장과 1980년대의 뉴웨이브 밴드 소프트 셀 출신 마크 알몬드의 1988년 작 (개인적으로 너무 애정하는 앨범이라 안 고를 수 없었다)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노발리스의 1976년 작 <Sommerabend>(여름 저녁)을 샀다.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MUDAM)은 산과 요새 너머에 있기에 약간의 산행이 필요하다. 하남시 검단산으로 다져진 다린데 그 정도야 거뜬하지 않겠는가. 중세풍 요새를 넘으니 선물 같은 미술관의 형상이 드러났다. 순간적으로 목적지로 오인했던 Musée Draï Eechelen는 국립 역사박물관이다. 어쩐지 입장해보니 17세기 뤽상부르를 담은 회화, 내 키만 한 장총, 왕실 유물 등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의미 있는 장소였지만 긴 시간을 보내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몇 분 더 걸으니 모던한 흰색 건물이 나왔다. 채광을 담뿍 받아 더욱 세련된 내부. 아이들의 단체 견학 때문에 잠깐 정신없었지만 이사무 노구치와 영국의 화가 겸 작가 Lynette Yiadom-Boakye 등 다양한 작가의 전시를 보았다. 지하의 현대미술 특별전은 더욱 난해했지만 그게 현대미술의 본질이기도 하다. MUDAM의 매력에 푹 빠졌고 뤽상부르에 가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저녁엔 플렉스 좀 했다!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평점 높은 일식당 Awada Japnese Cuisine을 택했다. 우나기동(장어덮밥)이 무려 39유로. 물론 우나기동은 어디든 비싸긴 하다. 맛이 특급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뤽상부르의 일식당에서 큰 기대를 한다는 게 아이러니 같고. 한 끼 배부르게 먹었으니 된 거다.
요정이 숨어있을 듯한 숲속을 걸으며 뤽상부르의 마지막을 보냈다. 숙소에 돌아오니 어느새 새로운 친구들이 침대를 채우고 있었다. 많이 걸었는지 금방 몸이 노곤해져 샤워하고 침대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