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남부의 휴양지는 작고 알찼다.
리에주에서 발켄부르크로 넘어가는 네덜란드 기차를 타자 냄새, 생김새가 과거를재현하듯 몸으로 빨려들어왔다. 처음 네덜란드 기차를 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역사의 차가운 공기.
이미 한 밤 이었고 Houthem-Sint Gerlach 역에 내리자 주위는 빛 하나 없이 깜깜했다. 휴대폰 손전등을 키고 밥 제임스와 얼 클루가 함께한 (재즈 퓨전 연주곡) ‘Whiplash’를 들으며 Hotel Lahaye로 향했다. 문앞엔 건장한 청년 둘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이 사람들도 핑크팝에 가나?” 궁금했다.
늦은 시간에도 주인장은 친절하게 응대했다. 결코 싼 값은 아니었지만 독방을 쓸 수 있다는 게 어딘가. 뜨거운 물이 하나도 안나와 당황했지만 냉수샤워가 피로를 말끔히 씻어줬고 깔끔한 침대에 누워 대망의 핑크팝을 고대했다.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왜 발켄부르크를 선택하셨어요?’ 핑크팝은 Landgraaf 라는 도시에서 열리는데 비하는 아니지만 정말 특별할 게 없는 도시다. 축제를 3일 내내 즐긴다면 보통 텐트에서 머물지만 난 예약하지 못했다. Landgraaf의 호텔 가격은 감당할 수 없게 높았고, Heerlen, Kerkrade 같은 근처 도시의 에어비앤비도 하늘에 별따기였다. 오죽하면 독일의 접경도시 아헨까지 고려했으나 Landgraaf에서 아헨에 가는 교통편이 문제였다. 설상가상으로 겨우 잡은 Geleen의 에어비앤비조차 주인장에게 예약 거절을 통보 받았다.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아고다에서 구한 곳이 발켄부르크의 숙소였다. 그런데 발켄부르크란 이름 왠지 좀 익숙하다. 2016년 교환 학기 때 알게 된 샬로트. 클럽에서의 풀린 눈이 인상적이었던 벨기에 걸 샬로트의 인스타그램에서 봤다. 워낙 많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친구라 어딘가 했는데 남부 네덜란드의 도시였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헤이그 등 네덜란드에도 멋진 도시가 많지만 발켄부르크는 생전 처음 들어봤고, 현지인들의 휴양지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욕심이 났다. 페스티벌은 오후 12~1시부터 시작하고 난 아침 7시쯤 일어나니 조식 먹고 준비해도 3시간 정도는 남는 셈이다. 이 아까운 시간을 여행에 써보자! 페스티벌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해외만 나오면 부지런해지는’ 내 취향과 안 맞다.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