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시간
핑크팝 2022의 마지막 날이었다. 첫날 발켄부르크, 둘째 날 마스트리흐트를 돌아봤고 마지막 날은 축제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헤를렌(Heerlen)을 택했다. 귀국 하루 전이라 안티 선(신속항원검사) 테스트도 받을 계획이었다. 네덜란드 각지에서 PCR을 포함한 각종 테스트를 받는 통합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자신과 가까운 곳을 고르면 된다. 헤를렌에서 음성 결과를 받고 마음 편하게 축제를 즐기고 싶었다. 만약에 양성이 나온다면 땅 꺼질 듯 한숨 쉬겠지만 적어도 비행기 출발 시각 몇 시간 전에 나온 결과로 희비 교차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사실 이런 공적 절차에 여권 소지는 기본이다. 그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정신없는 페스티벌 장소에 여권을 가져가는 게 껄끄러웠다. 헤를렌 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Spoedtest 센터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고, 여권 사진과 사본도 소용없었다.
난처했다. 내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안티젠테스트를 받을 수 있지만 마음이 영 불편할 것 같았다. 다행히 선입금한 비용으로 다른 지역 센터에서 검사받을 수 있었고, 3시까지 운영하는 마스트리흐트의 센터에 가기로 했다. 동선이 무지 꼬일 예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먼저 여권을 가지러 숙소로 되돌아갔다. 한숨이 푹 나왔다.
헤를렌 자체의 볼거리가 적은 것도 있지만 맘 놓고 구경할 심적 여유가 없었다. 거리에 몇 번 눈길만 주고 곧장 역으로 되돌아갔다. 어쩌다 보니 다시 오게 된 마스트리흐트지만 역시나 멋졌고 축제만 아니었으면 더 여행하고 싶은 정도였다. 우선 얼른 PCR 센터에 방문했고 친절한 남직원이 코를 깊숙이 쑤셨다.
15분에 내 운명이 결정된다! 어차피 Turnstile을 포함 몇 팀의 공연 놓친 거 결과가 나올 때까진 여유롭게 마스트리흐트를 구경하고 싶었다. 2~30분 관광지를 둘러보다 Landgraaf 행 기차에 탑승했다. 근데, 메일이 오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해졌다. 왜 안 오지? 계속 확인을 해봐도 마찬가지였고 ‘혹시 양성인 사람들은 별도 연락을 취하나?’ 불안감이 엄습했다. 1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아 Spoedtest 콜센터로 몇 차례 전화했고 온라인 결과지를 수신했다. 문자 인증번호가 필요했는데 한국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서인지 문자를 못 받았고 다시 직원과 통화 연결해서 끝내 문자 인증이 필요 없는 결과지를 받았다.
음성. 정말 다행이었다. 이제 페스티벌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양성이 나왔으면… 눈앞이 깜깜했을 것이다. 항공권도 날리고 발켄부르크의 어느 숙소에서(그마저도 코로나 양성 환자를 받아주는 숙소여야 한다) 며칠간 묶여 숙박비, 식비를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여러모로 복잡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 한번쯤 코로나에 걸린게 아닐까 싶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걸리고 넘어갔던 걸까? 왜냐면 나는 이번 열흘간 거의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았고 특히 페스티벌장에선 아예 안 썼다. 걸리면 낭패였지만 마스크를 쓰고 축제를 즐기고 싶진 않았다. 수만명 사람들 중에서 마스크 쓴 사람은 마지막 날에 딱 둘 봤다. 수천, 수만명과 접촉했을텐데 음성이 나온거 보면 아마 올해 초쯤 걸려 항체가 생기지 않았나 짐작해보는 것이다. 물론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좌충우돌 페스티벌 마지막 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헤를렌은 기대에 못 미쳤고(물론 내가 제대로 못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여권 미지참으로 인한 좌절감은 마스트리흐트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감, 30분만에 나온다던 결과가 1시간 넘도록 안 나와 긴장감, 마침내 양성 결과를 받아 안도감으로 바뀌없다. 실로 엄청난 감정의 널뛰기. 그래도 결과가 좋으면 장땡이라는 자기합리화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