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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동교 Dec 12. 2022

EBS 세계음악기행의 20주년을 축하하며

EBS 스페이스 공감과 EBS 세계음악기행의 콜라보한 기념 방송

올해 가장 열심히 들은 라디오 프로그램이 < EBS 세계음악기행>이다. FM 104.5에서 2시부터 4시까지 하는 이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은 적은 거의 없지만, 어느새 산책하거나 지하철에서 가장 먼저 찾는 방송이 되었다.


늘 유쾌한 가수 한태인(4인조 보컬 그룹 미라클라스 소속)이 나오는 월요일 코너 ‘뮤직 포춘쿠키’와 재즈 전문가 김광현이 매주 목요일에 멋진 재즈 음악을 소개해주는 ‘재즈 노트’, 디제이 이승열이 직접 아시아 음악을 들려주는 ‘욜디의 짜뜨짜뜨’(이름이 귀엽다) 로 하루하루가 충만하다.


무엇보다도 ‘월드뮤직’ 혹은 ‘제3세계 음악’을 잔뜩 틀어줘서 좋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프랑스와 스페인처럼 축구로 더 익숙할 법한 나라들의 음악과 친해졌다. 영미권 팝이나 가요 말고도 이처럼 매력적인 노래가 많다니,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운 좋게 세계음악기행 20주년 기념 방송을 방청하게 되었다. <EBS 스페이스 공감>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특별 방송은 <세음행> 디제이 이승열의 진행 아래 고상지와 김사월, 밴드 이날치의 무대가 펼쳐졌다. 탱고 음악을 형상화하는 반도네오니스트와 한국 청년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싱어송라이터, 동서양을 혼합한 음악 집단. 축하 게스트마저 <세음행>과 잘 어울렸다.

공연이 열린 일산 EBS

독일에서 처음 제작되었으나 아르헨티나의 탱고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반도네온. 그리고 반도네온 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고상지. ‘쇼팽의 야상곡 15번’을 편곡한 연주는 피아니스트 조영훈과의 조화가 빛났다. 워낙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카를로스 가르델을 비롯한 탱고 음악을 사랑하지만, 최근에 인천 출신 탱고 트리오 라파시온을 평론한 계기로 탱고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진 터. 고상지의 사운드스케이프를 탱고로 갈무리할 수 없으나 반도네온의 소리를 들으면 자연스레 탱고댄스와 밀롱가가 떠오른다.


최근 감상한 싱어송라이터 최고 은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에 등장했던 김사월. 김해원과 함께했던 김사월X김해원과 단독으로 발표한 앨범 모두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다. 담백한 기타 반주에 소곤소곤 얘기를 들려주는 듯한 음악은 뮤지션과 관중의 거리를 좁혔고 정규 2집 <로맨스>에 수록된 ‘누군가에게’라는 곡은 내밀한 노랫말에 이시문과의 ‘기타 대화’가 어우러졌다. 무대 중간 멘트나 이승열과의 인터뷰를 보면 참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인 것 같다.



2020년 ‘범 내려온다’의 광풍도 날 비껴갔다. 대중음악의 여러 하위 장르 중 퓨전 계열을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을 고려했을 때, 이날치에 왜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의아하지만 ‘범 내려온다’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유가 크다. 다만 단명한 신스팝 밴드 도마뱀과 요즘 배우로 활약 중인 백현진과 협업한 어어부 프로젝트 그리고 영화음악까지 경력이 다채로운 장영규는 늘 궁금했다. 


유럽 몇 국가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이날치는 시차 적응이 무색하게 강렬한 퍼포먼스를 쏟아냈다. 네 명의 소리꾼이 교차로 토해내는 판소리와 간명한 건반 리프에 두 대의 베이스와 드럼이 더해져 독특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구축했다. 퓨전, 뉴웨이브 등 수식어가 많지만 사이키델릭의 향기도 물씬 느껴졌다. 고전적인 키보드 도입부부터 비교적 차분하게 환각의 탑을 쌓는 ‘약성가’와 판소리의 개성을 극대화한 ‘신의 고향’, 아쉽게도 곡목을 까먹은 록 풍의 앙코르까지 실로 화끈했다.



<세음행>은 중간에 6년의 휴지기를 이겨내고 20년 역사를 쌓아왔다. 그리고 이승열은 5년째 <세음행>을 지켜오고 있다. 20년과 5년. 그 끝자락의 1년을 함께해서 행복했다. 생활 패턴이 급속히 변하지 않는 한 한동안 가장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덕에 많은 사람이 팝음악과 친해진 것처럼 <EBS 세계음악기행>이 월드뮤직과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계속 해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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